[연재소설] 살아 있는 偶像 5화_마지막회

“박아!”

기억나십니꺼? 이런 벌써 술이 떨어졌구먼, 아이고 고맙심다. 역시 당신의 그 넓은 마음씨는 우리하고 뭔가 다르단 말씀이야. 이놈이 좀 취한 모냥임다. 심한 소릴 하더라도 똥 밟았다고 여기고 너그러이 용서하십쇼.

우린 처음엔 당신이 뭐라고 외쳤는지 금세 알아듣질 못해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봤을 뿐이었슴다. 당신 제법 목청을 돋우고 내뱉은 소리가 분명했지만, 무슨 지랄인지 워낙 거칠게 분 바람소리에 파묻혀 버렸던 것입죠. 한 아이의 등살에 어느 틈에 각목과 바꿔들린 물에 젖은 가죽 허리띠 자국이 벌겋게 찍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읎이 자갈을 주우려고 달려들었슴다. 저도 몇 번은 그런대로 팔만을 내뻗어서 당신의 채찍질을 용케 면할 수가 있었습죠. 하지만 점점 등허리에 붉은 화인이 찍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와는 반대로 자갈의 숫자는 줄어들자 우린 거의 머리통을 바닥에 처박다시피 결사적으로 몸을 내던져야만 했슴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어느새 우린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었죠. 눈이 뒤집힌 겁니다. 손놀림이 날렵해서 매번 먼저 자갈을 집어내는 아이는 얄미운 새끼로, 센 힘으로 손끝에 느껴지는 제 몫의 자갈을 빼앗듯 덥석 가로채는 아이는 도둑놈의 새끼로 둔갑했던 것임다. 우리 모두는 점점 눅진한 땀과 맞은 부위에서 흐르는 끈끈한 피로 뒤범벅된 채 당신의 신호와는 상관읎이 몇 개 남지 않은 자갈을 얻기 위해서 몸을 옥상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댔슴다. 그런 동안에 우리는 모두 울고 있었슴다.

이놈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양쪽 뺨을 타고 흐르고, 이 지랄 같은 짓거리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저주하면서 말입죠. 뜨거운 무언가가 치미는 것을 느끼면서도 우린 자갈에 덧씌워진 올가미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읎었슴다. 울음을 삼키느라 토해내는 허기 찬 신음이 어느덧 아이들다운 울음보로 변해 <가나안>의 칙칙한 어둠을 뚫고 울려 퍼지는 것을 느끼며 이놈이 가까스로 잡은 자갈을 옆의 새끼에게 빼앗기고는 곧 닥쳐올 채찍질을 기다릴 때였슴다. 당신의 분풀이의 도구로 쓰이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볭문이가 쓰러진 것임다. 뒤로 벌렁 나자빠져서 뒤통수가 깨진 듯 선지피를 낭자하게 쏟는 그의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비걱비걱 괴어 흐르기 시작했슴다. 두 눈은 흰자위만 드러날 만큼 흡뜬 상태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사지를 뒤틀어 꼬기까지 하면서 말임다.

볭문이의 짧은 일생 동안 그토록 지겹게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간질 발작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죠. 볭문이의 갑작스런 발작은 우릴 이젠 뭔가 끝을 내야 한다는 절박한 광란의 상태로 몰아갔슴다. 당신도 뜻밖의 상황에 몹시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구만요. 우리가 넋빠진 당신을 쓰러뜨리고 한껏 거칠어진 완력으로 오만한 머리통을 바닥에 내려찍을 때까지도 볭문이는 피거품을 계속 토해내고 있었죠. 이놈이 당신의 가슴께를 타고 앉았을 때에야 우리의 모반을 알아챈 듯 당신은 소리를 질렀으나 그때는 이미 당신의 채찍질이나 서슬 퍼런 고함소리는 우리를 통제할 힘을 상실한 후였죠. 머리가 깨지고 이놈이 목을 사정 읎이 조이자 옅은 신음을 통해내며 눈알을 뒤집는 당신은 영락읎는 한 마리의 무력한 개에 지나지 않았슴다. 당신의 벌어진 입가로 힘 읎이 흘러내리는 시뻘건 혀가 요즘도 가끔 이놈의 꿈자리를 어지럽히곤 헙니다만.

만약 온전한 정신을 되찾은 볭문이가 미치광이로 돌변한 우리를 당신에게서 밀어내고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아니 이놈의 손아귀에 죽임을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임다.

이런 젠장맞을, 울지 마십죠. 당신을 그날 밤 우리에게 슬퍼할 권한조차 목숨과 함께 박탈당한 사람임다. 그때의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던 성미란이 급기야는 실성을 해서 <가나안>의 남루한 사랑마저 도둑맞은 채 어느 기도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볭문이에게 보인 따뜻한 미소와 손짓은 이놈을 지긋지긋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먼 이국의 눈물겨운 적선으로 주린 배를 근근이 채워야만 하는 탁란의 둥지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으로 몰아넣었던 것입죠. 결국 당신은 <가나안>의 여호수아로 키워야만 한다는 민원장의 눈먼 욕심이 빚어낸 그날의 부당한 사건 수습으로 이놈은 어이읎게도 ‘살인미수’란 죄명으로 쫓겨났지만 말임다.

그 후 당신이 국립대학에 수석 합격이 되자 온 나라의 방송과 신문들은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어냈고 그 영웅의 영특한 두뇌와 <가나안>시절의 건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상이 마치 잘 포장된 상품처럼 전파상 진열대 위를 진열하고 있을 때, 이놈은 어두컴컴한 지하 작업장에서 팔뚝에 알이 배도록 어느 부유한 여자가 주문했을 금반지에 광택을 내고 있었응께. 헌데 이놈의 속마음엔 엉뚱하게도 당신이 제발 성공하길 속으로 절실하게 빌고 있었지 뭡니까. 아니, 뭐 그렇다고 해서 고마워하실 것까진 읎슴다. 이놈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었을 테니께요. 어쩌면 성미란과 차볭문이까지도 말임다.

이런 엉뚱한 심사는 그나마 당신이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인 탓이지라. <가나안>의 영원한 여호수아라는, 당신에게 주어진 커다란 허명(虛名)이 우리 가슴팍에 어느덧 맹종에 가까운 믿음으로 자리 잡아 있었등가 봅디다. 그렇기에 당신이 보잘 것 읎는 성욕쯤을 못 이겨 성미란을 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죠. 뭐랄까, 좀 더 그럴듯한 이유가 읎을랑가. 긍께 거 뭐시냐 성미란의 젖가슴에서 부정했던 어머니를 연상했으리란 짐작은 무식한 이놈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죠. 그렇다고 혀서 당신의 죄가 면죄된 것은 결코 아님다.

어쩔 수 읎이 이미 우리의 우상이 되어버린 당신을 우리가 애써 이해하려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쯤은 당신이 모를 리가 있겄니꺼? 만약 ‘덮치기’ 따위의 힘이나 요령으로 사는 편법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워뜨케 버텨나갔을 수 있겄니껴? 그리고 쌩고니, 반고니 하는 호칭으로 암암리에 우리의 의식 속에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 형태로든 층층이 계급으로 나눠진다고 허는 지랄 같은 사실을 당신이 미리 세뇌시키지 않았다면 워뜨케 되었을지 불 보듯 뻔합죠. 당신은 참으로 대단하심다. 그때에 이 시대의 가장 적절한 삶의 방식을 알고 우리에게 가르쳤는지…….

‘절대로 낙오되지 마십시오. 어떤 권모와 술수를 써서라도 더 높은 곳으로 걸음을 재촉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또 다른 우상이 이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당신은 우리의 살아 있는 우상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차볭문이가 당신 앞으로 남긴 부탁임다. 이제 당신은 <가나안>이 택한 가장 효과적인 단죄가 뭤인가를 깨달아야만 험다. 우리 모두의 우상이란 십자가에 못 박힌 조건으로 면죄된 것이겠구요.

아, 제발 이러지 마십쇼. 저도 밥술은 먹고 삼다. 이런 봉투는 좀 더 그럴듯하게 쓰셔얍죠. 이를테면 불우이웃 돕기라든가 하는 데 말임다. 그래야 우리가 당신 덕에 목에 힘주고 살 수 있는 거 아입니꺼? 안녕히 계십쇼. 이놈은 그만 물러감다. 그러나 수많은 이놈과 같은 미천한 것들이 당신을 언제까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 할낍니더.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