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내가 계단으로 걷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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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오르는 사람
ⓒPixabay
  • 시선을 바꾸면 불편이 선물이 된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작년 어느 여름날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 적이 있었다. 고장이 나서였는지 아니면 부품 교체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며칠 동안 꽤나 투덜거렸던 것만은 확실하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서도 잠시 아래층에 내려갔다 계단으로 걸어오면 땀이 줄줄 나는 상황이 영 좋지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쯤 같은 상황이 반복되던 날 샤워를 하다가 우연히 만져진 내 다리가 왠지 튼튼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변화가 있었으면 얼마나 있었겠냐마는 뭔가 이상한 성취감이 들었다. 10층 가까이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한 걸음 한 걸음 건강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같은 높이, 같은 시간을 오르내리고 있었고 땀이 나는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투덜거림은 상쾌한 성취감으로 바뀌었다. 어느 틈엔가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했지만 난 여전히 계단을 이용했다. 컨디션이 좋은 어떤 날에는 집이 좀 더 높은 층이면 좋겠다는 이상한 욕심마저 생겼다.

생각해 보면 난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서도 기구가 있으면 짬을 내서라도 운동을 하고 특별한 일 없으면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계단 오르기는 그런 이유에서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운동 시간이었고 처음부터 나에게는 선물 같은 기회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았던 불편함이라는 첫 느낌 때문에 며칠 동안 불평과 원망의 대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1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매일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출퇴근 시간은 또 하나의 기쁜 일상이 되었다. 그 시간이 처음의 날들보다 가뿐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보너스로 체력을 보상 받은 것 같다. 분명히 같은 상황의 반복인데 생각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었다. 직장에서, 친구 집에서, 약속 장소에서 계단을 만나는 시간이 즐거워지고 또 다른 계단을 찾는 취미가 생겼다. 세상의 변화는 나의 시선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한다.

친구의 생일은 어떤 이에게는 선물 값을 지출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겠지만 그날이야말로 친구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일터의 고단함은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선물 값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면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수학교사이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보다 책이나 노트 없이 암산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 또 어쩐 일인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한산하던 비상계단이 붐비고 있었다. 언젠가의 나처럼 투덜거리는 이도 있었고 또 다른 나처럼 웃으면서 지나가는 이도 있었다. 나의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것은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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