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그래도 당신, 아무튼 당신!

1
750
영화 '아무튼, 아담'의 한 장면
영화 '아무튼, 아담'의 한 장면/ 유튜브캡처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다음 영화들 중 성격이 다른 영화와 그 주인공은?
1) 영화 ‘스트롱거’(Stronger, 2017)의 제프 바우만
2) 영화 ‘돈 워리’(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 2018)의 존 캘러핸
3) 영화 ‘아무튼 아담’(Adam, 2020)의 아담
4)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의 매기 피츠제랄드

“참 쉽죠, 잉!!”
이 영화들을 모두 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탄성이 나올 만큼 쉬운 문제였겠다. 정답은? 4번,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 피츠제랄드가 답이다.

보기에서 제시한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러나 제프 바우만, 존 캘러핸, 아담 이 세 사람과 매기 피츠제랄드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장애가 있는 삶을 선택한 주인공들

영화 ‘스트롱거’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탄 테러 사건으로 두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모두 그날의 테러 현장을 뉴스로 보았던 기억이 생생한 바로 그 사건, 압력솥이 그토록 무서운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몰라도 될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사건 말이다.
압력솥으로 폭탄을 만들다니,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다니…이런 짧은 탄식을 하고 또 그렇게 무디게 잊었을 그날이 한 생존자의 실화를 통해 생생해진다. 거기 사랑에 설레던 건강한 한 남자가 있었고 그 한 남자의 모든 일상이 무너져내린 역사적인 그날로…

우리가 잊었던 그 현장에 있던 한 사람, 제프 바우만. 그는 대형마켓에서 치킨을 팔고 엄마와 함께 살며 여자친구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풋사랑에 애를 태우는 그저 평범했던 남자일 뿐이다. 그날 하필 그 테러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그런 그가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여자친구 에린을 응원하러 갔다가 그만 테러의 목격자이며 생존자가 되었다. 폭탄이 터진 현장에 있다가 두 다리가 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한 남자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은 무려 ‘제이크 질렌할’이다!-내가 좋아하는 배우라 ‘무려’라는 표현을 쓴다- 제목이 말하듯 장애 여부를 떠나 진짜로 ‘강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영화다.
주인공 제프는 테러의 생존자이면서 목격자로서 대대적으로 뉴스에 보도되며 보스턴의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중상을 입은 가운데서도 자신이 목격한 테러범에 대해 용기 있게 증언한 그를 온 국민이 영웅으로 칭송하고 아들의 장애를 인정할 수 없던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여된 그 영웅이란 허상을 즐기고 이용한다. 그러나 결국 제프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성장해 가는 평범한 남자…

영화 ‘돈 워리’의 주인공 존 캘러한은 어떤가. 이 영화 역시 미국의 유명한 카투니스트였던 존 캘러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우리의 조커, 호아킨 피닉스가 존 캘러한을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 존의 문제는 장애를 입게 된 몸에 있지 않았다. 존은 사고로 장애를 갖기 전부터 이미 알코올에 심하게 의존하는 알코올중독자였고 마약과 술에 빠져 늘 휘청이고 있었다. 사고도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 술에 만취한 친구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그 역시 만취 상태로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존이 장애를 ‘극복’하고 재활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미 그가 알코올중독일 수밖에 없었던 불행했던 상황,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어머니와 스스로 불행 속으로 이끌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자유로워지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그를 옭아매고 있던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그의 육체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었다. 육체에 갇히지 않는 인간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다소 종교적이고 철학적으로 다루었다. 이 영화에서 존 캘러한은 육체를 넘어 자신을 내려놓는 자유를 누리는 한 사람으로서 장애를 받아들인다.

세 번째 주인공은 아담이다. 가장 최근 개봉작이기도 한 ‘아무튼 아담’의 주인공이다.
건강하고 승진을 눈앞에 둘 만큼 능력으로도 인정받은 소위 잘나가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를 입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라는 인생의 대격변을 맞으며 삶의 모든 방식이 달라지지만 어쨌든 변함없이 가치 있는 존재 그대로 ‘아무튼 아담’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남자의 인생 적응기다.

또 다른 선택

자, 그럼 이제 서두에서 냈던 문제의 정답인 다른 주인공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 핏츠제랄드를 만나 보자.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배우이면서 거장 감독으로도 인정받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 감독하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이후로 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매기는 복서다. 남들보다 너무 늦은 서른한 살에 권투를 시작하는 그녀를 권투 매니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처음엔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식당 서빙을 하면서 어렵게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권투의 꿈을 놓지 않는 매기의 근성과 열정에 마음을 열고 결국 그녀의 매니저가 된다.

강력한 신인 복서로서 승승장구하던 매기. 그러나 한 체급을 올려 챔피언에 도전하는 대망의 경기에서 상대의 반칙으로 그만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경추 손상으로 목 아래로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게 돼 버린 매기. 그녀 역시 앞에서 만난 다른 주인공들처럼 뜻밖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앞의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바로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삶 대신 죽음으로써 운명을 거부하는 것. ‘록키’ 같은 권투 영화를 예상했다가 ‘장애’ 앞에서 죽음을 갈구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이르면 순간 이게 뭐지? 당황하게 하는 반전이라면 반전인 영화다.

매기가 부상을 입기 전, 프랭키에게 자신의 가족이 키우던 강아지 엑셀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복선처럼 나온다. 두 다리를 잃은 엑셀이 네 발로 걷지 못하고 두 다리로 바닥을 쓸고 다닐 때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웃었다고, 그리고 어느 날 엑셀을 데리고 나간 아버지가 나중에 혼자 돌아올 때는 한 손에 흙 묻은 삽이 들려 있었다고…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매기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매기는 키우던 강아지 엑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랭키에게 아버지가 엑셀에게 했듯 자기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한다. 자신의 혀를 몇 번이고 깨물어서라도 죽음을 갈구했던 매기의 고통을 차마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프랭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매기의 안락사를 결행하고 매기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왜 이 영화의 제목을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했을까?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느 B-24 폭격기의 노즈 아트(Nose Art)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대전료 1백만 달러짜리 빅매치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말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 할 만한 빅매치는 바로 매기가 홀로 맞닥뜨린 삶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프랭키의 친구인 에디(모건 프리먼)가 말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질 때도 있는 거야.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야 진정한 챔피언이 되지.”…

매기는 자신이 만난 최고의 빅매치에서 운명을 거부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것, 즉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기는 것인지, 차라리 죽음으로써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 이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당신, 아무튼 당신

영화 ‘아무튼, 아담’에서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힘겨워하는 아담에게 그의 간병인 예브지나는 너무나 가난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던 개를 잡아먹어야만 했던 참혹한 시절을 얘기하며 그렇게 덧붙인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순간이 있어요.
우리는 매일 눈을 뜨고 선택을 해요.
(중략)
전 희생자일까요, 생존자일까요? 답은 간단해요.
전 선택을 했고, 살아남았어요.”

아담은 결국 인생의 끔찍한 순간에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의 삶을 선택하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장애로 인해 그의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가치 있고 의미있는 존재임을, 아무튼 아담임을 그 자신으로써 증명한다.

자, 그럼 아담은 운명과의 빅매치에서 이긴 것인가? 진 것인가?
장애를 떠나 강인한 한 남자로서 성장하며 살아남은 제프 바우만은 승자인가? 패자인가?
또 육체를 넘어 마음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을 선택한 존 캘러한은 승자인가? 패자인가?

어쩌면 매 순간이 선택이고 전 생애에 걸쳐 ‘밀리언 달러 베이비급’ 빅매치의 링 위에 서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생의 빅매치에서 어떤 선택을 한 주인공을 응원하겠는가.

여담으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는 매기에게 게일어로 ‘모쿠슐라(Mo Cuishle)’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그 의미를 궁금해 하는 매기에게 그 뜻을 내내 알려주지 않다가 죽음을 맞는 매기의 귀에 대고 비로소 속삭여 준다. 모쿠슐라는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라고… 프랭키가 매기를 딸처럼 사랑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모쿠슐라라는 이름이 영화 ‘아무튼 아담’에도 나온다. 타이틀에 제작사의 이름으로… 이런 우연이 있나! 나는 그것을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대한 또 다른 반론 제기로 읽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승인
알림
66227f8ed0ae0@example.com'

1 Comment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suter700@hanmail.net'
문경희
3 years ago

영화 다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