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경우의 수: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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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무선 이어폰
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대부분의 발명품들이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시각장애인인 내게 있어 유독 고마운 것들이 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그랬고 다양한 배달 서비스들도 그랬다. 최근에 또 하나의 감사한 제품이 생겼는데 완전무선 이어폰이다.

책을 읽을 때도 정보를 검색할 때도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듣는 것에 의존하는 삶의 특성상 이어폰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지팡이만큼이나 필수품이다. 일을 할 때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는 중에도 중요한 메시지가 오면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는다.

그런데 줄이 있는 이어폰은 매번 꼬여있기 십상이어서 어떤 때는 이어폰을 사용하는 시간보다 줄을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선 이어폰은 나를 위한 발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사한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소음 차단 기능을 이용하면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작은 소리까지 정확히 들을 수 있고 반대로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을 이용하면 이어폰을 매번 꽂았다 뺐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귀에는 하루 중 적지 않은 시간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런데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이 녀석도 치명적 단점이 있다. 어쩌다 실수로 케이스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이어폰 두 개와 케이스가 완벽히 분리가 되는데 작기도 작은 데다가 선이 없으니 혼자서 찾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도움이라도 받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정말 난감하다.

게다가 가격도 비싼 것이 튼튼하거나 단단하지도 않아서 여기저기 찾으면서도 발걸음 떼어 놓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제도 그랬다. 혼자 있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에 오르려다 떨어뜨린 그 녀석은 순식간에 세 군데로 흩어져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지만 인기척이라고는 들리지 않았다. 살짝 손을 뻗으면서 그 자리 그대로 있기를 기대해 봤지만 그런 요행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집이라면 이것저것 들어 옮기면서 찾아봤겠지만 무거운 기구들을 혼자서 옮길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난 이어폰을 찾아야 했으므로 그런 상황들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얼른 머릿속에 전체 구역을 좌표로 설정하고 한 부분씩 손으로 조심스럽게 훑어갔다.

다행히 케이스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커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한쪽씩 경우의 수를 줄여가면서 오래되지 않아서 한쪽 이어폰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고 이러다가 못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땀이 흘렀다. 당황하니 계속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더듬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좌표를 설정하고 한 군데씩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았지만 마지막 조각은 손에 만져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러닝머신 사이에 작은 틈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살며시 손을 뻗었다. 그토록 찾던 마지막 퍼즐은 비로소 내 손끝에 응답 신호를 보냈다. 시간을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저절로 감사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잠깐 동안의 시간을 되돌아 생각해 봤다. 처음 떨어뜨렸을 때는 당황스럽긴 했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씩 조각을 찾을 때는 이상한 자신감 같은 것도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조각이 찾아지지 않을 때는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공간은 정해져 있고 내가 모든 곳을 더듬어 보기만 하면 시간이 문제이지 물건을 찾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살면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들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답을 허락하지만 많은 것들은 이어폰의 마지막 조각처럼 쉽사리 손끝에 닿지 않는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아직 만져지지 않았을 뿐 정해진 공간 안에서 가만히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는 건 경우의 수를 좁혀가는 일의 연속이다. 해결되지 않는 오늘의 문제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경우의 수가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 오늘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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