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일의 접근성 브런치] 시각장애인은 시계를 어떻게 확인할까?

한 남자가 스마트와치를 보고 있다.
ⓒPixabay

[더인디고=김혜일 집필위원]

김혜일 더인디고 집필위원

문명이 발달해 가면서 인류의 생활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문명을 유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이용했던 해시계부터 분초를 다투는 현대사회의 전자시계에 이르기까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시간을 관리하는 노력이 이어진다. 시간 관리의 필수 도구인 시계가 과거에는 권력자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화되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루에 시계를 몇 번 정도 보는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출근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잠들기까지 셀 수 없이 여러 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본다. 늦잠을 자지 않기 위해,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때로는 너무 지루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고 싶어서,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등등 아주 다양한 목적으로 시계를 사용하고 있다. 또 거리의 간판, 손목시계,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벽시계 등 다양하게 시계를 활용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계를 눈으로 보며 시각적인 형태로 정보를 인식하고 있지만 시각 정보를 습득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시계를 어떻게 사용할까?

중증 시각장애인이 시계를 사용하는 방법

중증 시각장애인은 시각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이때는 시계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촉각 또는 청각을 활용한다.

▲음성 손목시계와 음성 탁상시계/ⓒwww.maxiaids.com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는 음성시계다. 시계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오전 9시 10분입니다’와 같이 음성으로 시각을 확인할 수 있고, 알람 또는 시간마다 정시 알림 등을 설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은 청각을 활용하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음성시계로 시간 관리를 하고 있다. 시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PC, 점자정보 단말기 등에 설치된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음성으로 시간을 확인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시계는 바늘을 유리로 덮고 눈으로 바늘의 위치를 확인하지만 시각장애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유리 뚜껑을 열고 바늘을 직접 만지고 바늘의 위치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시마다 돌기가 있고 바늘에도 돌기가 있어서 바늘과 시의 돌기를 비교해서 만져보고 현재의 시각을 확인한다. 시각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촉각을 활용하는 점자시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뚜껑 점자시계/사진=김혜일

간혹 음성으로 시간을 안내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왜 점자시계 같은 것을 사용하느냐고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음성시계만으로 충분하지만 학교, 회사, 대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듣기 때문에 음성시계를 사용하기 어렵다.

강의실에서 수업 중이거나 회사에서 회의가 진행될 때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음성시계를 눌렀을 뿐인데, 모두에게 들리도록 “10시 30분”과 같은 음성이 나온다면 민망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해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촉각을 활용한 시계 또는 이어폰 등으로 시계의 음성을 나만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음성시계, 점자시계 외에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기도 했다. 자석 방식의 구슬을 사용해서 시, 분을 표시하는 시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점자가 직접 표시되도록 한 스마트 점자시계도 있다. 이 또한 촉각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기술의 발달과 사람들의 관심에 힘입어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계가 선을 보이기도 했다.

▲(좌)브래들리타임피스/ⓒeone-time.kr, (우)닷워치/ⓒwww.dotincorp.com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것이 최선이다” 또는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개인의 취향, 사용되는 환경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보다 편리하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아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경증 시각장애인이 시계를 사용하는 방법

경증 시각장애인은 시각적으로 정보를 습득할 수는 있으나, 비장애인에 비해 시각 정보의 인식이 어렵거나 오래 걸리며, 돋보기 등을 사용해야 하는 시력을 가지고 있다. 시야 범위, 불투명도, 빛에 대한 민감도 등 아주 다양한 특성을 보이며, 시각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색상의 범위도 차이가 있다. 경증 시각장애인은 저시력 또는 약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정보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잔존 시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서 촉각, 청각을 활용하기보다 높은 시인성을 가진 형태의 시계를 활용한다. 물론 경증이라 하더라도 피로도, 시각의 손상 정도 등 각각의 특성에 따라 촉각, 청각을 활용한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경증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시계는 페이스의 색상에 큰 차이가 있다. 배경 색상과 바늘 색상의 차이를 크게 고대비로 제공함으로써 바늘의 위치를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바늘의 면적이 좁으면 바늘의 위치를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바늘의 굵기를 매우 굵게 제공한다.

오래전부터 사용된 흑백 액정의 경우 기본 밝기가 낮고 배경과 글자 색상의 차이가 크지 않아 경증 시각장애인이 시계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LED가 보편화되면서 밝은 빛을 내는 LED 시계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자체적으로 밝은 빛을 내기 때문에 경증 시각장애인이라도 시계 정보를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좌)밝은 LED 시계/ⓒ김혜일, (우)저시력용 손목시계/ⓒwww.maxaids.com

경증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시력이 저하된 어르신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필자의 부모님 댁에 LED 시계를 놓아드리니 숫자가 잘 보인다며 매우 좋아하셨다. 부모님 댁에 놔드려야 할 것은 보일러뿐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시계

시각장애인이 시력의 정도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시계들이 있지만 안타까운 점은 시계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비장애인의 경우 시계를 선택하는 기준 중 중요한 부분이 디자인과 브랜드다. 천년에 0.1초의 오차만 있고, 수심 1000미터 방수가 되는 고성능의 시계라 하더라도 디자인이 멋지지 않거나 듣보잡 브랜드라면 비장애인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왜냐면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어떤 기준으로 시계를 선택할까? 유명 브랜드의 멋진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몇 종류 되지 않는 ‘사용할 수 있는’ 시계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계 중 나의 취향, 선호하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점자시계를 생산하는 브랜드가 적고, 음성시계는 알 수 없는 브랜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마트워치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지가 매우 적다. 이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 개인의 취향에 맞는 멋진 시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때 시각장애인이 모인 곳에 가보면 거의 동일한 시계 음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멋진 디자인은 중요한 가치다. 시간 확인 목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에 맞는 패션 아이템으로서 시계를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비장애인이 흔히 선택하는 시계 브랜드는 물론 에르메스, 구찌, 롤렉스 같은 유명 브랜드에서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시계를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지금까지 장애인 관련 도구의 목표는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 보니 개인의 선호도에 맞는 멋진 디자인의 선택권은 고려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디자인 면에서도 보다 높은 만족을 누릴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언제 어디에 꺼내놔도 나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보접근성 전문가로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표준 개발, 앱과 웹사이트 접근성 평가를 진행했으며, 「웹접근성과 품질인증」의 공동저자이다.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강연 등을 통해 정보접근성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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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ok03@hanmail.net'
박민영
1 month ago

시계라는 한 주제로도 시각장애인의 선택과 유용성. 활용성. 욕구성을 다양하게 표현해 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Editor
조 성민
1 month ago
Reply to  박민영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miiya4u@gmail.com'
정현화
1 month ago

시각장애인의 시계 사용법, 한계, 선택권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 잘 보았습니다.
부모님댁에 LED시계 놔드려야 겠네요. ^^

Editor
조 성민
1 month ago
Reply to  정현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