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사회 부적응 유발하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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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멈추라는 뜻의 영문
ⓒPixabay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여섯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자폐당사자가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구조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이번 글부터는 학교교육과 사회를 잇는, 정신적 당사자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적응이 과연 개인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자 한다. 소위 발달장애인의 사회 부적응은 특히 전환기 이후의 정신적 장애인의 생애주기 주요 활동, 즉 학업과 진학, 구직과 취업, 업무,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정확하게 언급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 부적응이 가장 극렬히 드러나는 현상이 집단 괴롭힘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면 학교 폭력이고, 회사에서 이뤄지면 갑질로 불리는 등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폭력의 실체는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을 괴롭히면서 그것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과 사회적 결속력, 조직 내 인정을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폭력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롭힘이 국내에서 사회 이슈화되었던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그 당시만 해도 정부나 일선 교육현장 어디에서도 극단적인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적 고발이나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 처음으로 학교 폭력이 보도되기 시작되면서 심각성을 설명하는 비슷한 사례로 들었던 것이 일본의 이지메다. 한국과 일본 모두가 유교 문화권이기도 하지만 집단 문화 또한 일제강점기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보다 심하기도 하고, 한국이 일본보다 심한 때도 있다.

이지메는 현재 일본에서 흔히 히라가나 いじめ로 표기하지만, 한자를 달아서 苛め나 虐め라고 쓸 수 있다. 이때 첫 번째 한자는 매울 가(하), 가혹할 가로 읽어서 가혹, 가렴주구, 가멸 등의 단어에 쓰이고, 두 번째는 모질 학으로 읽어서 가학, 학살, 학정 등의 단어에 쓰인다. 두 한자를 합치면 ‘가학(苛虐)’이라는 단어가 된다. 평상시에 우리가 쓰는 가학(加虐)보다도 더 심각한 의미로 읽혀서, 이지메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글자를 이지메보다 조선시대 후기의 지방 관리들의 행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수도에서 먼 곳일수록 지방 관리들의 문제는 더 심각했다. 영조실록 47년(1771년) 1월 12일(음)의 기사를 보면 사헌부에서 ‘삼수갑산과 육진 지방의 지방 수령이 무관으로만 채워져서 행정에 가혹함이 많고(政多苛酷), 인삼과 녹용을 거둬들이는 것을 옛 제도에 따라 한다’고 보고한 것이 있다. 또 정조실록 10년(1786년) 10월 12일(음)의 기사를 보면, 함경도 경성의 민경세라는 한 판관이 열 달 동안에 쌀과 콩 730석, 대구어 5700마리, 건어 1380마리나 주민들에게서 징수하고 빼돌린 것을 의금부에서 국문했다. 이를 듣고 정조가 직접 ‘학정’(虐政)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정도로, 지역 주민들에게 과다 징수한 것을 정부 관리가 빼돌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런 모습과 현재의 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가학의 주체가 국가 권력에서 기업이나 개인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학교 폭력이 조명되고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 사회에서 꽁꽁 숨겨두고 있던 일상적 폭력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사회적 영향을 끼쳤지만 사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저항을 받아온 곳이 재계이다.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그룹의 회장들이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갑질과 폭행은 이제 보도되어도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로 그 내용이 천차만별이고, 시간이 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은 찾아본 적 없는 것 같다.

또한 일상적인 폭력과 ‘부적응’이 가장 크게 드러난 곳이 스포츠계다. 이세돌 9단이 한국기원과 한국프로기사회와 지속적으로 싸웠던 것은 약과다. 한국체대 파벌의 따돌리기를 참다못해 쇼트트랙 최고의 안현수 선수가 한국 국적을 버리기까지 하고, 김연아 선수는 빙상협회의 각종 비리와 소치 올림픽에서의 편파판정으로 인해 은퇴를 선택해 버렸다.

한국 동계스포츠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경북체육회의 학정으로 인해 폭로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던 컬링 ‘팀 킴’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체육회의 무방비 행정으로 최근 가해자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기가 막힌다. 얼마 전에는 트라이애슬론 경주시청팀의 조직적인 폭력으로 인해 고 최숙현 선수가 안타깝게 숨지고,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체육계 전반에서 폭력과 학대 고발이 이어지는 등 스포츠계는 강압과 폭력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장애인 스포츠계에서도 각종 폭력과 학대가 줄을 잇는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장애인 체육선수 인권 실태조사’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체육을 이끈다는 장애인 체육계도 동일한 폭력과 학대에 젖어 있음을 나타냈다. 1554명의 장애인 등록 선수(여기서 정신적 장애당사자는 몇 %일까?) 중에서 354명이 폭력을 경험했고, 143명이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폭력 중에는 기합, 얼차려는 기본이고 협박, 폭언, 집단따돌림, 공포적인 분위기를 느낀 경우가 많았다. 더군다나 지도진의 기분에 따라 경기 출전이나 훈련에서 제외되거나, 무리한 훈련을 강요받았다.

더군다나 여성 선수들은 생리 중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훈련과 출전을 요구받는 등 폭력적인 분위기가 건강권에도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실태조사에서 제대로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는 점과, 다른 체육계와 달리 체육선수 활동을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과보다 실제는 더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감각-지체, 정신과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었을 때 정신적 장애를 가진 ‘경증’의 당사자가 높은(45.5%) 폭력 비율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정신 ‘중증’의 피해 호소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도 아마 장애당사자가 비슷한 일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일을 보고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폭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해 봐야 한다. 우리가 받는 폭력이 가하지 않아도 되거나 받지 않아도 되는데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폭력이 사회 발전에 필요하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 한 사이비 교주가 교회 공간 안에서 신도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사용한 서로를 때린다는 이름으로 붙여진 타작마당이었다. 타작마당 이외에도 과거에 한 사람이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매일 따귀를 때리는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인민재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성화 과정, 사회화 과정 등으로 정당화된 폭력이 인간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끼치는 동시에,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 사회 속에 폭력이 얼마나 뿌리박혀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 같다. [더인디고 The 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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