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바리데기꽃 4화_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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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 꽃(흑백 사진)

뒤늦게 저수지 뚝방으로 나간 미란이는 물에 퉁퉁 불은 채 혀를 내민 막내 고모의 시체를 붙안은 채 퍼더버리고 앉은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 옆구리께로 축 늘어져 있던 막내 고모의 오른손에는 먹다 만 옥수숫대가 바투 쥐여져 있었다. 때마침 움트는 동녘의 놀빛에 붉게 물들어 있는 할머니의 넋 나간 낯빛은 지금도 미란의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날 할머니는 저수지에 당도하자마자 막내 고모의 시신이 둥실 떠 있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발 늦게 당도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른 나오시라고 고함을 질러도 뒤 한 번 돌아보는 법 없이 허우적대며 막내 고모한테 다가갔다는 것이다. 육십을 이태 남겨둔 노인의 걸음이 어찌 그리 빠른지 마치 젊은 아낙이 떼어 두고 온 어린 것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뛰는 것만 같았다고 어머니는 회상했다. 미란은 속으로 ‘젖을 물리기 위해서’라는 어머니의 비유에 그만 실소를 머금었었다.

당골은 거북이 등처럼 밋밋한 산자락을 밟고 기우뚱 중턱에 눌러 앉아있다. 조붓한 자드락길 옆으로 조팝나무들이 보이고, 그 뒤쪽의 열 평 남짓한 채마밭에는 푸성귀들이 고랑마다 푸릇푸릇한 머리를 풀고 있다. 앞서 걷던 할머니가 잰걸음을 멈추고는 채마밭을 기웃거린다.

“오셨는 게라.”

언제 나왔는지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 쓴 잿빛 승복의 사내가 할머니를 알은체하며 넙죽 합장을 한다. 밀짚모자 밑으로 그늘져 보이는 사내의 입매가 흰 피부 탓인지 눈에 띄게 붉고 곱다.

영귀암(靈龜庵)이라고 써 붙인 나무 현판을 힐긋거리며 당골로 들어서던 어머니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겠다는 표정으로 미란을 돌아보았다.

“저이, 남정네 맞지? 그치?”

“아마, 박수무당인가 보지 뭐…”

미란은 시뜻이 대답하며 등에 잠이 든 연이를 추스른다.

당골 마당에는 이미 굿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듯하다. 너른 마당 한가운데 멍석 석 장이 잇대어 깔려있고, 그 한 가운데에 약 일 미터 남짓한 높이로 신단(神壇)이 마련되어 있다. 장삼에 흰 고무신을 신은 네댓 명의 아낙들이 분주히 오가며 병풍을 둘러치고 있었다.

미란은 밀짚모자의 박수무당을 쫓아 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그늘이 짙어 있는 툇마루 귀퉁이에 연이를 내려 눕힌다. 딸아이는 곤히 자면서도 꿈이라도 꾸는지 제풀에 놀라 깜북깜북 경련을 일으킨다. 네가 업(業)이로구나……. 입가에 침버캐가 허옇게 말라붙은 더러운 아이의 몰골을 내려다보며 미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는 깜짝 놀라 곁에 앉은 어머니를 쳐다본다. 어머니는 굿당이 차려지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너 뭐랬니? 하며 데꾼한 눈을 꿈벅거린다.

무슨 얘길 주고받았는지 흡족한 표정이 되어 나오는 할머니가 손짓으로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가 달려가 마당으로 내려서는 노인을 부축한다. 뒤따라 나온 박수무당이 좀 엄숙한 표정으로 신단에 제물을 진설(陣設) 한다. 백설기가 시루째 올라가고, 각종 과실과 고기, 촛대, 향로가 맞춤하게 자리를 잡았다. 맨 마지막으로 박수무당은 신위(神位)를 세웠다.

뜻밖에도 신위는 두 개가 올라있다. 이어 붉고, 노란 조화(造花)들이 모래와 쌀이 담긴 종두리에 열 송이씩 꽂혔다. 연꽃도 보이고, 진달래, 동백, 매화, 목단, 국화 등의 화려한 색색의 조화들로 금새 마당은 환하게 밝아지는 듯하다. 조화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미란이 한 종두리 앞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무수히 많은 잎사귀들이 톱니 같은 날을 세우고 꽃송이를 받치고 있다. 지름이 두 뼘도 넘을 듯한 흰 꽃 일곱 송이가 저마다 탐스럽게 피어 있다. 사금파리 같은 햇살 알갱이들이 분분히 날려 흰 꽃잎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살재비꽃이라요. 바리데기꽃이라고도 부르는디,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옛날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죠.”

언제 왔는지 박수무당이 미란의 곁에 서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치렁한 장삼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며 말참견을 했다. 오십이 넘었을까, 짙은 눈썹에 좁은 미간 때문인지 다소곳한 여인네같이 조쌀한 인상이다. 박수무당은 눈을 찡그리며 쨍쨍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혼잣말처럼 가늘게 중얼거린다.

“해가 곧 중천에 오르면 시작할 겁니다.”

징, 꽹과리, 아쟁, 장구, 제금이 일시에 울려 퍼졌다. 덩더리, 덩더꿍. 질서정연한 타악기의 지저귐이 점점 높아지자 거먕빛 쾌자(快子)에 개나리색 협수(夾袖)를 받쳐 입은 박수무당이 겅중거리기 시작했다. 둥두르르르……. 할머니와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양손을 비벼대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바리데기꽃? 왕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나 버림받았다가 후에 병든 아비를 위해 불사약을 구하려고 지옥문을 들어가 무장신선과 결혼해 일곱 아들을 낳았다던 바리공주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로 들었던가? 아니 어머니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후에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 아, 그래. 불사약을 구해 죽은 부모를 구하고 지아비인 무장신선을 주신으로 삼아 영험한 무당이 되었다고 했다. 굿이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미란은 그 생각에서 좀체 놓여나지 못한다. 버림받은 사람을 다시 제자리에 되돌린다는 뜻이 담긴 꽃이 있다니, 흰색의 살재비꽃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 세상 나온 사람 뉘덕으로 나왔더냐 불분살님에 은덕분에 나오실 적 아버님 전에 움을 빌고 어머님 전에 배를 빌고 인생 탄생하니……. 박수무당의 처량한 구송이 꽹과리 소리에 맞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한두 살에 철을 몰라 부모님 공 다 못 갚고 초세살이 당진하니 홍두역 닷두역 다 지나고 열다섯 청춘이 당진하니……. 이 대목에 이르자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던 할머니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미란은 막내 고모가 열다섯 살에 죽었던 기억에 수꿀한 기분에 사로잡혀 금방이라도 썩은 둥치처럼 풀썩 쓰러질 것만 같은 할머니에게로 다가간다. 비틀대는 할머니를 부축하는 어머니와 미란의 손을 박수무당이 무서운 눈빛으로 제지했다.

“얘야… 내, 잘못했다. 이 늙은 것 용서하고 불쌍한 어린 것한테 하는 해코지 인제 그만 거두거라. 얼릉…, 얼릉 노기 풀고 극락 왕생하거라. 이 죄 많은 늙은 것이 곧 너 따라가서 이승에서 못한 어미 노릇 저승에서나마 해주꾸마….”

그 자리에 맥살을 풀고 털썩 주저앉은 할머니가 꺼욱꺼욱 울음을 토해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곁에 서 있던 어머니도 쿨쩍쿨쩍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박수무당의 입을 빌은 막내 고모가 흐느끼며 할머니 손을 부여잡는다.

“에고, 에고 불쌍허신 우리 엄니 그런 말씀하지 마소. 어머님이 옷을 지어 아버님이 과관 입히시고 성관 위에 갓 씌었으니 한량없는 은혜보다 하늘인들 더 높을까 바다인들 더 넓으랴…….”

꽹과리의 울부짖음에 박수무당이 신명이 붙었는지 도무(逃舞)가 점점 빨라진다. 할머니는 울다가 지쳤는지 까무룩하게 잦아드는 흐리멍텅한 낯으로 멍석 위를 펄펄 나는 박수무당을 물끄러미 올라다보고 앉아 있다.

한껏 춤을 추던 박수무당이 툇마루에 잠이 든 연이를 안아 제단 밑에 눕힌다. 미란은 제단 밑에 누워있는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며 입술이 바싹 마른다. 제단 위에서 흰 백지가 묶여있는 소나무 가지를 집어든 박수무당이 미란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미란을 맞바라보는 박수무당의 두 눈이 붉었다. 불쑥 내미는 소나무 가지를 엉겁결에 집어든 미란은 난감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미란의 앞에 쌀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이 놓이자 박수무당은 나뭇가지를 그릇에 세워 잡으라는 시늉을 한다. 미란이 머뭇거리자 어느 틈에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할머니가 낮고 카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새끼를 위허는 일이여.”

미란이 할머니의 단호한 말에 주눅이 들어 나뭇가지를 쌀그릇에 꽂은 채 단단히 붙들었다. 이어 제금이 처량하게 울었다.

“어서 설설히 내리십시오.”

박수무당이 연신 그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는 빌고 또 빌었다. 미란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될 대로 대라는 심정이 되어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그때 소나무 가지를 붙들고 있던 미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미란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보며 무섬증이 일었다. 떨지 않으려고 손끝에 힘을 바싹 조였으나 그 떨림은 점점 더 심해진다. 어서 설설히 내리십시오 하는 박수무당의 목소리가 아스라하게 이명처럼 멀어지고 제금소리가 격하게 귀청을 파고든다.

어느새 미란은 멍석 위를 미친 듯이 펄펄 뛰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눈을 뜨자 세상이 온통 자맥질을 하고 있다. 아니다, 세상이 자맥질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제풀에 지쳐 허우적대고 있다고 미란은 고쳐 생각한다. 세상은 잠잠히 흐르는데 그녀 혼자 허방을 짚고 쓰러져 고역스럽다고 엄살떨고 있었다는 자책감이 가슴 깊이 뼈아프게 파고든다. 옆에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는 어머니의 강파른 얼굴이 얼찐거린다. 무구소리에 잠이 깬 듯 아이가 겅중거리는 제어미를 올려다보더니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는다. 미란은 그런 아이를 보자 저도 모르게 속엣말로 중얼거린다.

듣고 있니? 나의 바리데기야. 너의 가녀린 팔과 다리가 바람에 허청거리는 꽃대궁이라면 이 어미는 지지대가 될꺼야. 네 비틀린 입에서 흐르는 어눌한 목소리 대신에 이 못난 어미의 쇠진 목청을 쓰렴. 더 이상 너로 인해 슬퍼하지 않을게. 너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한탄하지 않을게. 자궁에 숨어있던 너를 행복해하던 예전의 어미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뼈를 부수어 네 뼈를 만들고 살을 저며 네 살을 만들꺼야. 그러니 나의 어여쁜 바리데기야. 두려워 말고 세상에 나와 살제비꽃이 되거라. 눈이 시리게 하얀 꽃이 되거라.

어느덧 미란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에 젖어 번들거린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잡은 손아귀를 더욱 힘껏 사려쥔다. 한 여름 땡볕은 뜨거웠고, 멀리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슴아슴 들려온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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