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키위 ①_키오스크와 두 개의 세계

무인 매장에서 한 학생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계산하고 있다
▲무인 매장에서 한 학생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계산하고 있다./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조은산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3학년]

조은산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키오스크에 관한 글을 쓰려고 이래저래 따져보다가 문득 영화 기생충에서 보았던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비극적인 유혈 사태가 되어버린 그 운명의 생일파티가 있기 전날 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너무도 선명히 대비되는 기택 가족과 동익 가족의 모습 말이다.

파란만장했던 이틀간의 ‘부자 놀이’를 끝내고 폭우 속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택 가족을 맞이한 것은 정든 동네와 하나뿐인 보금자리에 펼쳐진 거대한 물바다였다. 이 때문에 기택 가족은 졸지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쉼터에서 밤을 보내는 신세가 되고 만다. 반면, 동익 가족에게 비는 캠핑을 못 가게 막은 여름 불청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다송의 장난감 텐트조차도 잠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온 덕분에 공기가 맑아졌다’며 기분 좋게 다송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기도 한다. 비 때문에 앞으로의 생존을 위한 방책을 계획하는 처지에 내몰리는 ‘못 가진 자들의 세계’와 비 덕분에 파티할 기분을 내는 ‘가진 자들의 세계’. 잔인하리만치 다른 두 세계는 마치 영화 속 끝없는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층의 차이였다.

이쯤 되면 ‘키오스크 얘기를 한다면서 왜 생뚱맞게 계층 타령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 이야기가 정말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현대 사회에서 특정 기술,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새로운 계층을 만들고, 다른 세상에 살게 한다. 개발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 많은 정보를 가진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세계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중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 또 앞으로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필자는 아주 기본적인 일상에서조차 두 세계 사이에 놓인 벽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이 세련된 첨단 터치스크린과 고도의 효율성으로 차려입은 키오스크를 반길 때마다 맥이 빠지고 난감해진다. 키오스크 때문에 더 저렴하게 먹고 싶은 식당을 놔두고 굳이 비싼 밥을 사 먹고,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 텅 빈 카운터 앞을 한참이나 서성여야 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될수록 어느 때보다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가끔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키오스크가 만들어낸 일상이야말로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개발 과정에서 고려 받지 못한 이들이 사는 세계의 단면이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3년 전, 학생식당에서 키오스크를 처음 만났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스스로 선택할 수도, 스스로 결제를 할 수도 없는 시스템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을.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그것은 나에게는 사실상 유리벽이나 다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내 별것 아닌 일로 넘겼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 정도 불편쯤이야 내가 예전보다 조금 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적당히 적응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막 말을 튼 친구들에게 내 약점을 설명하면서 주문과 음식 받아오는 것을 부탁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혼자 밥을 먹게 되었을 때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열 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친구들이 저렴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키오스크가 없는 곳을 찾아 늘 두 배는 더 비싼 곳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가던 학교 앞 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 불현듯 지금껏 느낀 적 없던 불편함을 느꼈다. 학식으로 나오는 라면이나 지금 먹고 있는 라면이나 퀄리티는 비슷함에도 왜 난 늘 두 배 이상 비싼 라면을 먹어야 하나. 왜 학생식당을 이용하면서 친구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안함과 난감함을 겪어야 하나.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 내 책임은 아닌데 그로 인한 대가는 다 내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공평하고 서글펐다. 그때가 키오스크 문제를, 나아가 기술 접근성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느끼게 된 계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다가오면서 우리의 일상도 아주 빠르게 원격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키오스크도 이전보다 더 급격하게 보급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키오스크가 만들어낸 불평등 역시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이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름에 일상적으로 내리는 장맛비가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반지하 주민들의 현실이 영화를 통해 조명되었다. 또 연쇄적으로 주거환경과 불평등 문제가 함께 조명되었듯이, 키오스크를 환영할 수 없는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 마치 최근 떠오른 이슈인 양 주목받는 정보 불평등 문제를 오래전부터 일상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보화의 물결이 더 거세지기 전에, 그래서 우리가 그 물결에 정말로 휩쓸리기 전에.

조은산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대학생으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와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온라인강의 접근성 TF에서 일했다. 현재는 장애인의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 ‘키위(KiWe)’에서 일하고 있다.
모두(WE)가 함께 하는 키오스크(KIOSK)라는 의미인 키위(Ki-WE, Kiosk WE)는 시각장애인 및 휠체어 사용 지체장애인의 키오스크 사용 문제를 개선하고자 모인 연합동아리이다. 현재는 누구나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웹서비스 ‘키위’를 개발 중에 있다.

▲키위로고와 개발 중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채팅형 주문 서비스, 키위’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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