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키위 ②_우리 시대의 두 무인화(無人化)

한 학생이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있다.
▲한 학생이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있다./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여동민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

여동민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여동민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올해 초, 저시력 시각장애인 대학생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키오스크(KIOSK, 무인결제기기)가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어서 자신이 직접 바꾸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시각장애가 있지만 한쪽 눈이 사실상의 정안인 나는, K의 입장에 동의는 해도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필요가 되는 일 자체에서 보람을 찾아왔으므로, 키오스크 장애인 접근성 개선 프로그램 ‘KI-WE’의 홍보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K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을 때였다. 메뉴 주문의 전 과정이 기계화된 그곳에서 K는 멋쩍다는 태도로 내게 햄버거 주문을 대신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내가 장애인의 무인화 상황에서 철저한 외부인임을 깨달았다. 즉 ‘나와 성격이 닮아 타인에게 부탁을 잘 하지 못하는 K가, 화면에 전시된 메뉴를 선택하는 간단한 손놀림을 나에게 부탁해야만 했다’는 경험을 목격했을 때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젔다.

그 부끄러움이란, K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이유로 곁에 있으면서 정작 그 고통에는 공감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이라는 잔인한 이름으로, 이해(利害)를 공유하지 않는 당사자 아닌 집단의 무감각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여기서 보통이란, 다음과 같은 질문(‘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환경 개선이 필요한가?’)에 전혀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글쎄?’).

보통의 사람들은 보통처럼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무인화 시대에 장애인의 존재를 지워내는 또 하나의 무인화에 기여한다. 존재를 지워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양. 국회입법조사처에서 2018년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제고 방안> 연구를 발표하기 이전에도 관련 이슈는 조금씩이나마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관심이 곧 자원인 현대 사회에서 소수인 장애인의 불편은 다른 의제들에 손쉽게 가려져 왔고, 그 결과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변에 어찌하기 힘든 장벽이 생겨났다.

물론 최근에 정부에서 장애인 접근 키오스크의 단계적 의무화를 공식 발표하고, 민간에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개발을 알리는 등 좋은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지만, 이미 장애인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키오스크가 시장을 잠식했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은 암담하기만 하다. 예로서 KI-WE에서 올해 초 시각장애인 대학생 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에 85.6%의 압도적인 비율로 ‘매우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 점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장애인을 지워내는 무인화’는 노동 시장에서 인간을 지워내는 본래적 의미의 무인화와 동시적으로,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해당사자인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진열되는 시대의 흐름을 지켜봐야만 했다. 기술은 단지 보통의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선택되지 못한 장애인에게 자연스럽게 차별을 가했다. 보통의 사람인 수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무인화에 민감하게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잔인한 말 혹은 마음으로 답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동민
고려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에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장애인의 키오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 ‘키위(KiWe)’에 집중하고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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