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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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 될 허름한 집들
사진 제공=조미영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서울 근교에 일이 있어 가게 됐다. 재개발 현수막이 세워진 허름한 집들의 모습에서 기억의 저 편에 앉아 있던 우울한 나를 발견했다.

가난이 몸에 밴 나는 내 가난이 남에게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던 아이였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가난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에게 큰 상을 주는 게 있었다. 그 상을 받는 학생의 집에 방문하여 얼마나 가난한지를 사진으로 남겨야 했다.

또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걸 본받으라고, 국어 선생님이 글과 사진을 제출하여 교육청에서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다고 했다. 국어 선생님의 ”판자촌에 살면서도 항상 밝은 표정으로 학교생활에 모범이 되는…”이란 대목은 사춘기의 나를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회식을 하는 날이면 여직원들을 택시에 태워 귀가하게 하거나, 차가 있는 직원과 방향이 같으면 몇몇 직원들을 태워서 바래다주곤 했다. 나는 우리 동네가 창피해서 절대 집 근처까지 가지 않았다. 버스로 두 정거장 앞의 동네는 이층집도 있었고 맨손으로 들어가 산다던 맨션아파트도 있었다. 나는 거기에 내려 차가 이동하는 걸 숨어서 지켜본 다음 우리 집으로 냅다 뛰어갔다. 남들은 회식 날 예쁜 옷에 신경 썼지만 나는 잘 달릴 수 있는 단화를 챙겨 신는 게 필수였다.

창피해하던 그 동네를 뜰 수 있었던 건 남편과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온 덕분이었다.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이 만나 맞벌이로 출발해 아이까지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열심히 살았다. 그나마 환갑 바라보는 이제야 비로소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땐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일한 만큼 내 삶이 윤택해지는 시절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재개발되는 지역에 살았어도 가진 돈이 없으면 어디론가 떠나서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가진 자의 부는 세월을 먹고 더 크게 자라다 보니 삶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버거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서로 연대하여 농성과 투쟁의 현장에서 모진 일상을 보내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장애에 매달려 일상이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 그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리라 기대를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약자들의 삶을 고달프게 한다.

자물쇠로 굳게 잠겨진 쓰러져가는 집을 보면서, 적어도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시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그 대가만큼은 누리고 살 수 있도록 복지 시스템이 제공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꿈꾸는 게 약자들의 자연스러운 희망이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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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choiini@yahoo.co.kr'
최덕훈
3 years ago

전 초가집에 셋방으로 산 적도 있었습니다.
고교때는 월세 3천원.ㅎㅎ
이제는 그런 곳이 더 이상 없는 줄만 알았었는데.
감사합니다.추억 소환

cooksyk@naver.com'
김서영
3 years ago

역사를 함께 메워온 같은 세대로서 진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famina@naver.com'
famina
3 years ago

두번째 ~~글~~
잘읽었습니다

우리자녀가 가족이랑 같이 살며 생활하던곳에서 나이든 부모가 이세상 떠나도 살던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미영
3 years ago
Reply to  famina

제가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장애인이든 가진게 없는 사람이든 타의에 의해 쫒겨가야하는 현실은 아니어야겠지요.

msbk21@hanmail.net'
장명숙
3 years ago

작가님의 세상을 향한 마음은 늘 따뜻하고 추운겨울 한줌 햇살 같아요. 응원합니다‼️‼️‼️

brenda68@hanmail.net'
김선미
3 years ago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