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신념과 맹신 사이

간절히 두손 모아 기도하는 장면
ⓒPixabay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처음부터 연인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남편과 나는 직장 동료로 만나 긴 시간을 함께했다. 아들의 오랜 교제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했던 시어머니는, 당신 삶의 지주였던 이웃 보살을 찾아가 좋은 날을 잡아 달라고 하셨다. 보살은 내 사주가 남편의 명을 끊는 팔자라며 절대 결혼시키지 말라고 했다.

30대에 홀몸이 되신 시어머니는 아들 여섯을 키우느라 모진 고생을 하셨다. 우연히 이웃의 보살과 친해져 무슨 결정이든 이분에게 물어보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다 하셨다. 하물며 막내아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니, 시어머니는 우리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셨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어머니를 설득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도 있었다. 남편이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일에만 매진하는 사이, 시어머니는 아들이 안타까워 다른 점집을 찾아다니며 단 한 군데라도 결혼시키라는 말을 하면 승낙하리라 다짐하셨다. 12군데를 다녔으나 죄다 고개를 가로저었고 13번째 집에서 겨우,

“야들은 결혼 안 하몬 좋겠고 마는, 절대 헤어지지는 않을 팔자네. 고마 결혼시키고 액땜은 따로 하소!”

시어머니의 부름이 있어 찾아갔더니 당신 다니는 작은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이천 배를 백일동안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자신이 없어 싫다고 했다. 그걸 해서 내 팔자가 바뀔 거라는 믿음이 없으니 차라리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무언가라도 해서 당신 아들을 예전의 착한 아들로 두고 싶은데 내가 싫다고 하니 다른 방법을 제시하셨다. 특별 주문한 불교 책자를 절에 예불 드리러 오는 불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었다. 내 월급 한 달 치를 들여 100여 권의 작은 책자를 마련하여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나눠 주었다.

그렇게 만난 지 9년 만에 우리는 결혼을 했고 딸을 낳고 6년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넉넉하진 않아도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친정 가족 모임에서 아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형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혹시 귀가 안 들리나 싶어 보면, TV 광고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거로 봐선 청각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안아주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면서도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너무 산만한데 다른 별난 사내아이가 보이는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쏴 한 느낌으로 서울에 오자마자 바로 병원 예약을 했고 그사이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다가 ‘자폐’라는 단어에 숨이 멎었다. 자폐 증상을 진단하는 체크리스트의 항목 30가지 중 20개 이상이면 자폐를 의심해 보라는데 21개였다.

17개월 된 아이가 의미 없는 소리는 내지만 엄마 아빠 정도의 말도 못 했고, 장난감을 일렬로 줄 세우고, 바퀴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자동차 바퀴 옆에 앉아 떠날 줄을 몰랐으며, 불러도 대답은 없지만, TV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마치 아들의 행동을 누군가 바라보고 열거해 놓은 것 같은 항목에 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들은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사실을 시어머니가 아시고는 나를 원망하셨다.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그렇다느니 액땜으로 이천 배를 안 해서 그렇다느니, 나중에는 아이 낳았던 병원에 가서 혹시 아이가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누가 봐도 아들은 남편과 붕어빵이니 나를 닮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당신 손주가 자폐라니 평소 의지해 왔던 보살과 함께 손주의 장애를 없애기 위해 시어머니의 맹신은 도를 넘었다. 굿을 해야 한다기에 어머니 다니는 절에 가서 하시라고 비용을 드렸더니 정성이 닿으려면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건 할 수 없다고 잘랐다. 어머니 하시고 싶은 거 가능하면 하셔도 되지만 이웃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손주를 보실 때마다 이런저런 걸 며느리가 하면 좋겠는데 안 하니 답답하신 시어머니는 결국 마지막이라고 애원하시며, 이건 손주가 열 살이 넘으면 소용없는 거니 열 살 되기 전까지 어미가 천일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반야심경을 외며 108배를 하고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 1만 번을 염불하라고 하셨다. 안 한다고 몇 년을 버티다가 결국 아들이 7세 되던 해부터 나는 그것을 실행했다.

특수교육을 받으면 아들이 좋아질 거로 생각했지만 더딘 아들의 변화에 우리 모자와 가족들도 지쳐갔다. ‘뭐라도 해서 아들이 좋아진다면 뭔들 못하랴’ 하는 간절함이 어머니께 염주와 불전을 받아와 기도에 임하게 했다. 기도하면서 아이가 좋아질 거라는 믿음보다는 며느리가 뭔가 하길 바라셨던 시어머니의 권유를 하나쯤 한다는 것이 나를 편하게 했다.

시어머니는 천일기도를 마친 내게 애썼다며 등을 두드려 주셨는데 울컥했다. 어머니를 이해하기로 마음을 바꾸니 손주가 애달파서 내게 이런저런 미신을 권유하셨던 게 다 받아들여졌다. 어머니는 당신 믿음으로 아들이 그나마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기뻐하시는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저놈이 말만 하면 되는데 말을 안 하네…”를 입에 달고 계셨지만, 말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님을 설명해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기도 중에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손이나 다리를 달라는 게 아니고, 뇌 속의 어떤 회로가 일자 모양인 것이 15도 정도 굽어 있어 그게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시어머니의 믿음으로 이런저런 액땜을 권유받으며 짜증 날 때도 있었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아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을 하고 안 하고는 내 의지와 선택의 문제였다.

시어머니의 믿음이 과학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누군가의 삶에 악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요즘 사태를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잘못된 믿음이 온 나라를 감염병으로 도배하는 걸 보면서 지금은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오만에 빠져,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자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보면, 오직 아들과 손주만을 위해 뭐라도 해보려던, 연약한 여인이었던 시어머니가 그립다.

감염의 위험을 애원하는 질병관리본부의 간절한 외침에는 귀를 닫고, 자신이 믿는 누군가를 따르며 확진자 숫자를 줄이지 않는 사람들, 마스크 없이 화투를 치다 감염된 사람들, 검사 피하려고 병원에서 도망가는 사람과 도로에 벌거벗고 누운 사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사람들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자신의 믿음이 제발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불편도 감수하면서 더불어 사는 게 우리 인생인데, 지켜야 할 규범들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믿음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도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햇수로 7년째 병원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의 믿음이 신념인지 맹신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낯선 이들 속에서 하루를 살아 내고 계신 시어머니. 신념이든 맹신이든 그 믿음 꼭 붙잡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꼭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험한 세월 잘 살아내셨다고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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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famina
5 days ago

아들 증상 부분이 매우 공감이 가는군요~~^^;;
지난온세월의 동지여~~홧팅~~^^

bokttine@naver.com'
김은똥
5 days ago

삶의 내공은 시간이라 했던가요~ 작가님! 응원합니다!♡

cooksyk@naver.com'
김서영
4 days ago

우리 이쁜 조샘 착하고 넉넉한 맘밭에 이른 아침부터 눈물 촉촉.. 사랑합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