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Young의 쏘Diverse] CRPD 선택의정서가 약속하는 미래의 세상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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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 CRPD와 사회이슈 ⑥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12년 전,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 보장, 증진하기 위한 국제인권조약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을 비준했다. CRPD는 전문(preamble)과, 본문 조항, 그리고 선택의정서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은 모두 25개의 각 호로 구성되어 기본원칙 등을 집약해 놓았고, 본문 조항은 협약의 목적, 정의, 원칙, 그리고 장애인의 구체적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협약의 마지막인 선택의정서는 18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사국의 CRPD 이행 강화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선택의정서는 CRPD를 비준한 당사국이 CRPD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장애인이 차별받았을 경우, 피해자 또는 대리인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권리 구제 진정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담고 있다. 진정이 접수되면 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한 뒤, 보상과 차별시정을 권고한다. 또한 침해받은 당사자가 직접 진정을 하지 않아도 위원회가 ‘중대하고 체계적인 협약의 위반’을 발견했을 경우 당사국에 직접 방문해 조사하고 권고를 내릴 수 있는 절차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권리침해를 받은 장애인이 국가를 상대로 국제사회에 구제를 요청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최근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점자 선거공보물의 면수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과 선거방송 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같은 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였다. 황당하게도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CRPD 제9조, 제21조)과 투표권(CRPD 제29조)의 박탈을 정당화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원은 지하철 운영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승하차 안전발판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하였다. 말하자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결은 CRPD가 규정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이 국가가 지켜야 할 권리가 아닌 선의(善意)에 불과하다고 단순 해석한 결과이다. 결국, 국내법은 장애인을 한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으로, 또 그 도움마저 주는 대로 받으면 되는 대상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CRPD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국가였고 두 사건에 대해 진정을 제출했다면CRPD 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어떤 견해와 권고를 내리게 될까?

상상해본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 정보에 접근하고, 스스로 원하는 정보 매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자립적으로 대중교통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없다면 이는 차별에 해당한다.”

선택의정서를 통한 CRPD 위원회의 권고는 보호와 시혜의 후진적 복지에서 권익옹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당사국이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한다. 더는 장애인단체의 비준 촉구를 위한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소망한다.

선택의정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국가를 향해 휘두르는 칼날이 아니다. 장애인과 국가가 함께 차별 인식을 끊어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내는 잘 벼린 칼날일 뿐이다. 그 칼끝으로 짚어가는 세상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 사회도 늦었지만 인정할 때가 되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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