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 교사가 한 방송프로그램(세바시)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사진 =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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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의 다름알기] 말 잘하는 방법

By 안승준

February 01, 2021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내가 어릴 적 유명했던 한 개그맨이 만들어 낸 유행어는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였다. 진짜인지 아니면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그분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국민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나라에서 TV 출연을 금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인기 개그맨이 된 뒤 토크쇼에 나와서 말하던 그의 스토리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스로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절대적으로 못생긴 외모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방송 출연에 지장이 있을 만큼 비호감의 얼굴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파격적으로 웃기지 않으면 작은 기회도 얻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몇 배로 고민하고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그 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최고의 개그맨이 된 그는 약점이었던 생김새마저도 유행어의 소재로 만들어 버리는 기적을 이뤄냈다.

요즘 좋은 기회로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잘하세요?”이다. 난 말을 잘하고 싶어 하긴 하지만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정도로 달변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몇몇 사람들이 칭찬을 건넬 때도 의례적으로 던지는 립서비스 정도라고 여겼다. 요즘 출연이 늘어나고 방송 노출 횟수가 증가하면서 함께 늘어난 댓글들을 보면서 나도 내 영상들을 꼼꼼히 다시 보았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참으로 민망하지만, 동영상 속의 나는 꽤나 말을 잘하고 있었다. 설득력도 있고 유머 감각도 있었다. 순발력도 있지만 차분하기도 했다. 흐뭇했다. 뿌듯했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다른 이를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눈 안 보이는 내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언제나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구애할 때에도 난 다른 남성들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설득의 전략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세상의 수많은 멀쩡한 다른 동성들과의 경쟁에서 나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확률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지만 난 그기에 더 노력해야 하고 그 결과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다듬어 나간다.

취업할 때도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도전할 때도 난 내가 가진 능력들이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만나는 면접관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매력을 상승시키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 누구에게나 부여된 임무이지만 난 그 이후에도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을 끊임없이 겪는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것은 힘들고 불편한 일이고 시각에 장애가 있으면 일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다수를 이해시키는 일은 그 경험의 횟수가 반복되더라도 매번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난 적지 않은 연애를 했고 평균 이상의 성공 횟수도 경험했다.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하고 음악 밴드도 하고 강연도 다닌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한 정도의 삶을 누리는 것이 내겐 모두 커다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어진 값진 결과물들과 같다.

장애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어떤 불편한 질문이 들어와도 순간적으로 대답해 내는 것도 살면서 끊임없이 경험한 것들이기에 내겐 가능하다.

“장애인의 연애는 어떨까?”, “안 보이는 사람이 직장생활을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와 같은 주제는 사람들에게는 풀 수 없는 난제에 가까운 과제이지만 내겐 수십 년의 연구와 경험이 동반된 쉬운 문제들일 뿐이다. 소수가 가지는 약자성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할 방법들에 관해서 미리 답안을 본 듯 술술 풀어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말을 잘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삶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외모가 약점이었던 한 개그맨은 그런 상황에서도 불편하지 않게 웃길 수 있는 콘텐츠를 생각하면서 대형스타가 되었다. 평범한 외모 가진 사람들에겐 부여되지 않은 깊은 고민의 기회가 그에게 부여되었다. 난 보이지 않는 눈은 틀림이나 실패가 아닌 다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말하는 달란트를 얻었다. 그 역시 내가 눈이 보였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귀한 훈련의 과정이었다.

소수를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다수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웃길 수 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 수 있을까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 고민해 주었다면 그들도 인기 개그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다른 이들이 함께 고민했다면 그들도 나 정도의 언변 능력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다수에게 어떻게든 설명해야 하는 수많은 소수가 존재한다. 말을 잘하고 싶다면 특별한 성장을 꿈꾼다면 그런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 당신이 진정한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게 될 때 당신은 엄청난 달변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30여 년의 시각장애 경험이 동반된 내 방송들이 이를 보증한다.

[더인디고 THE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