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군가를 위해 기록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 받은 중증장애인의 7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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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자신의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기록을 하고 있다./사진=정영만 씨
정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자신의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기록을 하고 있다. 사진=정영만씨
  • 중증장애인 확진자에 적합한 병상 부족… 신변처리도 문제
  • 활동지원사 없이 12시간 방치, 결국 아내가 5일간 대신 나서
  • 접근 불가능한 생활치료센터, 휠체어 실을 수 없는 119 구급차도 문제
  •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 위해 개선할 것 수두룩”

– 진행성 근이영양증(근육병)으로 장애정도가 심한 79년생, 82킬로그램의 장애인
– 전신의 근력 소실로 전적으로 타인에게 신체보조를 받아야 하고, 누워서 자세 변경 불가, 상지 및 손에 잔존 근력이 남아 간단한 동작만 가능
– 당뇨병,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등의 기저질환 있음
– 사용 보조기기는 전동휠체어, 전동침대, 거치형 전동리프트이며, 그 밖의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개조차량 이용
– 직장 출퇴근 문제로 가족을 떠나 현재 서울에서 혼자 거주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 정영만 씨가 자가격리와 병원 입·퇴원 등 7일간을 기록하며 맨 앞 장에 자신을 소개한 내용이다.

정 씨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감염병 시대, 자신과 같은 다른 누군가나 방역 당국, 생활치료센터 및 병원 관계자 등을 위해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본인 소개에서처럼 지난해 12월 16일, 혼자 물 한 모금 마시기조차 어려운 정 씨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서도 홀로 방치된 채 사투를 벌여야 했다. 긴급 입원을 해야 했지만 서울에는 그에게 적합한 병상이 없었다. 당시 3차 대유행의 한 복판인 상황에서 병상 자체가 부족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본지는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보도한 바 있다. 그때 집에서 혼자 견뎌야 했던 정영만 씨를 다른 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당시 상황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확진 판정을 받은 16일부터 병원에서 퇴원한 22일까지, 7일간의 경험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관련 자료는 지난 1월 모 의원 주최로 열린 감염병 대책 토론에서도 잠깐 소개된 적이 있었다.

본지 12월 17일 기사 ‘코로나19 확진 받은 중증장애인, 방치된 채 홀로 사투’ 참조

“그 누군가를 위해 기록했다”는 그의 바람에 따라 이달 20일 정 씨로부터 사진과 함께 관련 자료를 전달받았다. 기록에는 당시 기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접근성과 방역 당국 간의 소통 문제 등도 포함됐다.

감염병 시대, 장애인의 불평등은 앞으로도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확진 당사자의 7일간의 기록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 정 씨의 동의하에 추가 기사로 발행하게 됐다.

정 씨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긴급돌봄 서비스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 였다. 결국 12시간 이상을 홀로 지낸 후에야 아내가 활동지원사의 역할을 대신했다.

정씨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그의 아내가 24시간 활동지원사 역할을 대신했다. 사진은 정씨를 침대로 옮기기 위해서 거치형 전동리프를 작동하고 있다./사진=정영만 씨
정 씨가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그의 아내가 24시간 활동지원사 역할을 대신했다. 사진은 정씨를 침대로 옮기기 위해서 거치형 전동리프를 작동하고 있다. 사진=정영만씨

확인 결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확진자와 접촉했으나 음성판정을 받은 장애인에 한해 2주간 긴급서비스를 제공할 뿐이었다. 정작 확진 판정을 받은 장애인에게는 어떠한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중증장애인 등 민간기관이 기피하거나 코로나 같은 상황에서 정작 역할을 다해야 할 사회서비스원이 손을 놓자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6월에 마련한 매뉴얼조차도 음성판정을 받은 ‘자가 격리자’로만 규정했다. 매뉴얼 여부를 떠나 코로나 발생 1년이 다 되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촘촘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결국 정 씨는 자가격리 5일 만인 12월 20일에야 입원할 수 있었다. 정 씨와 방역 당국, 그리고 병상을 보유한 병원 간 매일 수차례 논의 끝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정 씨에게는 활동지원인 이외에도 몇 가지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쳤다.

병상이 쉽게 나지도 않았지만 설사 있더라도 병원 측의 허락 없이는 신변처리 등 신체보조를 해줄 수 있는 활동지원인은 물론이고 아내조차 함께 입원이 불가능했다. 결국 기저귀를 차고 견뎌야 했다.

정 씨는 자가 격리 중 한 차례 태릉선수촌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된 적도 있다. 3일째인 18일 오전 10시, 정 씨를 이송하기 위해 119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정 씨에게는 다리와도 같은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없었다. 결국 아내가 개인 차량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송했다.

정영만씨가 생활치료센터 이송을 위해 이동 들것에 옮겨지고 있다./사진=정영만
정영만 씨가 생활치료센터 이송을 위해 이동 들것에 옮겨지고 있다. 사진=정영만씨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일 생활치료센터는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등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객실이 없었다. 방역 당국의 세심하지 못한 대응으로 몇 시간을 차 안에서만 머물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견딘 5일, 드디어 20일 오전 10시 중랑구에 소재한 서울의료원으로 이송통보를 받았다. 역시 119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휠체어를 실을 수 없었다. 국내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구급차가 없어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대비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동휠체어 사용자가 탑승 가능한 119 구급차가 없어 정 씨가 타고 내릴 때 세 명의 구급대원이 옮기는 장면을 그의 아내가 영상으로 촬영했다./사진=정영만
전동휠체어 사용자가 탑승 가능한 119 구급차가 없어 정 씨가 타고 내릴 때 세 명의 구급대원이 옮기는 장면을 그의 아내가 영상으로 촬영했다. 사진=정영만씨

정 씨는 입원과 동시에 병원에서 코로나19 1차 검사를 받은 후 양성 환자들과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21일 오전, 병원 내 신체보조 서비스 범위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병원 측에서는 식사 준비, 양치질 준비 및 처리, 소변통 처리 등 간단한 신체보조는 가능하지만, 화장실 이동 및 샤워 등은 지원이 어렵다고 했다. 또한, 전날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음성’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정 씨는 즉시 1인실로 분리 조치된 후 다시 2차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22일 2차 검사도 음성 판정이 나와 퇴원을 하게 됐다.

하지만 정 씨는 퇴원 후에도 활동지원사 없이 7일간 다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퇴원 후 일상생활이 바로 가능했지만, 갑작스런 퇴원으로 당장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자가격리 중인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야 했다. 당시 퇴원하면서도 집까지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자가격리 중인 아내가 와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장애인콜택시는 코로나19 완치 증빙서류를 제출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데, 병원에서 퇴원 조치를 받은 그 순간에는 한시가 급하게 내보내니 딱히 방법이 없었다.

기록에는 자신과 같은 증증장애인에게 필요한 병원 내외 필수 환경적 측면을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예들 들면 샤워 휠체어나 이동형 리프트, 휠체어 사용자 객실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전국 대부분의 구급차량도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인데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차량 교체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급차에 전동휠체어 탑승 설비장착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씨는 지하 입구가 낮은 곳에는 단점이긴 하지만 쏠라티 차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하 정 씨의 기록을 간략히 재정리한 내용이다.

▲12월 16일(수)
– 09시. 거주시(서울 도붕구) 보건소에서 ‘양성’ 유선 통보
오후 병원 이송 예정에 따라 동선 및 개인정보 활용 동의 진행
– 11시, 가족(아내, 자녀2, 장모) 코로나19 검사 진행 (활동보조인 음성 통보) / 활동보조인은 병원이송 전까지는 같이 있겠다고 했으나 가족 반대로 퇴근
– 오후, (지난 3월) 대구사회서비스원에서 확진자에게 신체보조서비스 제공 사례 확인 후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문의, 서비스 불가 안내 받음
– 18시, 금일 병상 부족으로 이송 불가(익일도 장담 못 함) 통보 받음
오전부터 물, 식사, 신변처리를 할 수 없어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 고립
– 20시, 자가격리 상태인 아내가 도봉구 보건소로부터 활동지원 허락을 받음
– 22시, 아내가 방호복(보건소 지원)을 입고 도착, 당일 처음 식사, 신변처리 해결, 이후 별도 분리공간 없는 원룸, 아내는 방호복 24시간 착복 후 생활
▲12월 17일(목)
– 종일 방역당국 및 외부 지인들과 통화, 아내의 활동지원으로 자가 격리 중
▲12월 18(금)
– 10시, 생활치료센터(태릉선수촌) 이송 통보, 119 구급차량에 휠체어 채 탑승 불가, 아내가 개인차량으로 운송
– 12시, 센터 도착, 하지만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생활 불가
– 13시, 타 입소 가능한 센터 파악 중 차 안 대기
– 14시 귀가 결정
▲12월 19일(토)
병원 소식 기다리며 종일 자가격리
▲12월 20(일)
– 10시 서울의료원(중랑구)으로 이송 통보, 신체보조 서비스는 병원 제공하기로 함
– 11시, 서울의료원 이송, 역시 구급차량에 휠체어 상차 불가, 아내가 별도 운송, 아내는 병원 입장 불가로 재검사 후 자가 격리 조치(2주 연장)/
입원과 동시에 코로나19 1차 검사 진행
▲12월 21(월)
– 병원 내 신체보조서비스 한계로 서비스 범위 협의 / 간단한 신체보조, 화장실 이동 등은 지원 불가
– 12시, 1차 검사 결과 음성 통보, 1인실로 분리 조치 후 2차 검사 시행
▲12월 22(화)
– 12시, 음성 판정으로 퇴원, 29일까지 7일간 자가격리 안내받음
– 활동지원사 없이 자가격리 시작
* 27(일) 21시부터 3일간 서울사회서비스원의 활동지원사 파견으로 일상생활 복귀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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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2f21aa6f5e@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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