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맞아 성명
- 코로나19는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차별적으로 발생
- “서울시·경기도의 ‘외국인노동자 코로나검사 행정명령’, 인권침해 여부 판단할 것”
[더인디고 조성민] 아시아계 사람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의 혐오 댓글, 언어폭력, 서비스 거부 및 침을 뱉는 등의 모욕적 행위와 범죄행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뉴욕에서도 한 남성이 쇼핑가를 방문한 83세 한국계 여성에게 침을 뱉고 주먹질을 하여 피해자가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해 인종 차별에 기반한 ‘혐오범죄’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노동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위원회)가 인권침해 조사 계획을 밝혔다.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나 차별 조장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19일 인권위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인종차별은 단순히 인종, 출신국가, 피부색 등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 문화적 차이와 결부되어 복잡한 추세로 흘러가고 있고,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인종차별은 혐오범죄로까지 번졌다”며 “소외되고 취약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즉 우리 모두 인종차별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로 인해 심화한 인종차별 문제는 2020년 4월 ‘COVID-19와 인권, 유엔 사무총장 정책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유엔은 전 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차별적으로 발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포용적이고 공평하면서 보편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또 인권위가 작년 6월 ‘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상황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공적 마스크·재난지원금 등의 정책에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코로나19에 대해 이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보를 받지 못하거나, 이주민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우리나라에 대해 “유효한 허가 없이 당사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지칭하기 위해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는 불법 체류자와 같은 비하적인 용어들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악화시킨다”며 관련 용어 사용을 철폐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여전히 지자체 행정명령서는 ‘불법고용 외국인’, ‘불법체류 외국인’ 등을 반복하여 명시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올해 3월 일부 지자체에서 모든 노동자가 아닌 외국인만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는 행정명령으로 인해 외국인은 ‘코로나19 진단검사가 필요한 ‘감염병 의심자’ 또는 ‘불법을 행한 범죄자’로 인식, 실제 관련 뉴스에 외국인에 대한 혐오 댓글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17일 서울시와 경기도 등은 감염이 의심되는 사업장 내 밀접 접촉자 또는 노동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만을 분리‧구별하여 진단검사를 강제로 받도록 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시행했다. 서울시 행정명령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를 1명이라도 고용한 사람과 외국인 근로자는 모두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 지자체가 내세운 법적 근거는 ‘감염병 의심자’에 대해 진단검사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제42조 제2항 제3호이다. 하지만 감염병 의심자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2조 제15조의2호에서 접촉, ‘검역법’상 관리지역 체류‧경유, 병원체 노출 등으로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외국 국적을 이유로 모두를 검사하는 것은 법적으로 적절치 않은 이유다. 결국 주한 외국 대사관의 ‘차별적 행정명령’이라는 항의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9일, 차별적 요소와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에 행정명령 철회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검사 의무화를 권고로 변경했고, 경기도 역시 진단검사 결과 음성이 확인된 외국인 노동자만 고용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했다가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관련 행정명령이 혐오와 인종차별처럼 느껴진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고, 이에 인권위는 신속하게 차별과 침해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주민을 배제·분리하는 정책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야기할 수 있고, 사회통합 및 연대와 신뢰의 기반을 흔드는 등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주민을 의사소통 통로에 적극 포함해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이주민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쳐나감에 있어 차별적인 관념과 태도가 생산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행법(Pass Law)’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며,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1966년 유엔이 제정한 날이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통행법’을 시행, 유색인종이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때 신상명세가 기록된 통행권을 소지, 백인이 통행권을 요구하면 반드시 제시토록 했다. 1960년 3월 21일 이 법에 반대하여 평화적 집회를 하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9명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인종차별철폐의 날이 제정됨에 따라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인권의 기본 원칙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은 없는지에 대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더인디고 THE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