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인정, ‘위자료’ 기각… 대법원, “정면 못 보는 버스 휠체어 공간은 ‘교통약자법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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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 버스의 교통약자용 좌석 설치 공간/사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해당 사건 버스의 교통약자용 좌석 설치 공간/사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교통약자용 좌석 길이・폭 측정 방법 규정 구체화 필요
  • 규정 없더라도 이를 지적하지 않은 지자체도 문제

버스의 교통약자용 전용공간 부족으로 휠체어 사용자가 버스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보게 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 A 씨는 김포운수가 운영하는 2층 저상버스 내 휠체어 공간이 협소하여 측면을 바라본 채 목적지까지 가야 했고, 2016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를 통해 버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버스회사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에서 규정하는 규격을 준수하지 못하였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은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제2조 제1항 [별표1]은 버스에 설치해야 하는 교통약자용 좌석의 규모를 ‘길이 1.3미터, 폭 0.75미터’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 길이와 폭을 측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 버스의 뒤쪽 출입문 앞에 설치한 교통약자용 좌석 규모는 버스 진행 방향으로 측정할 때 0.97미터, 출입문 방향으로 측정할 때 1.3미터인 것. 이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위 좌석에 휠체어를 고정하고 착석할 경우 버스 진행 방향이 아니라 출입문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장애인의 다리가 버스의 출입문 쪽 통로 부분에 놓이게 된다.

1심에서는 저상버스에만 교통약자용 좌석을 설치할 의무가 있으므로 저상버스가 아닌 이 사건의 2층 버스는 교통약자용 좌석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교통약자법 시행령에 따르면 저상버스가 아니더라도 휠체어 승강설비가 설치된 버스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규격에 따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김포운수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이에 따라 원고에게 30만 원의 위자료 지급과 더불어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적극적 조치’로서 휠체어 승강설비가 설치된 버스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확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일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교통사업자가 버스에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통약자용 좌석을 설치할 의무가 있고, 교통약자용 좌석 규모는 버스 진행 방향으로 1.3미터 이상, 출입문 방향으로 0.75미터 이상이어야 한다”며 원심 판단을 수긍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위반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 교통약자용 좌석의 길이와 폭을 측정하는 방법을 분명히 규정하지 않은 점, 버스회사는 지방자치단체와의 업무협약에 따라 이 사건 버스를 구입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가 피고에게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의 규모 기준에 미달한다고 지적한 바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에게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위반에 관하여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위자료 부분은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2008년 4월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적극적 조치 및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관하여 대법원이 심리·판단한 첫 사안이다.

대법원이 장애인 차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차별에 고의가 없다고 원심을 파기한 것에 문제가 제기됐다.

연구소는 “대법원이 ‘고의 또는 과실’을 부정하면서 위자료 부분을 파기 환송한 것에 유감이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의 고의·과실은 차별행위를 한 사람이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지만(제46조), 대법원은 자치단체가 지적한 바 없다는 이유로 고의·과실이 없다고 단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버스회사가 좌석수를 늘리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휠체어 전용공간을 규격과 다르게 설치하였거나 적어도 원고가 정상적으로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한 것에 과실은 인정되어야 한다”며 “대법원이 차별행위를 인정하고 적극적 조치까지 명하면서도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것은 법리적 모순이며 입증책임에 관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명문의 규정과 해당 규정의 입법 취지에도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장애차별행위 및 고의·과실의 입증 책임에 관해 파기·환송심을 통해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다른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교통약자용 좌석의 길이와 폭을 측정하는 방법을 분명히 규정하여 교통약자법 관련 시행규칙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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