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유죄’ 뒤집고 ‘장애아동 학대에 면죄부’ 준 대법원… ‘가해자 내면의 고의까지 입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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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대법원 전경 ⓒ더인디고
  • 대법, 피해자 고통 인정했지만 ‘고의성 없다’ 판결한 2심 손들어
  • 교육 목적이면 학대해도 된다? 반인권적 판결에 “분노”
  • 엄격한 고의성 잣대… 교육 현장과 시설 잘못된 메시지 우려

[더인디고 조성민] 자폐성 발달장애아동(당시 4살)에게 강제적으로 식사와 양치질 등을 시킨 특수교사에게 대법원은 ‘무죄’를 판결했다.
그동안 어느 정도 묵인됐던 부모에 의한 체벌행위조차 학대로 인정하는 시대를 맞아 진보에 역행하는 반인권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대법원 제1부(재판장 김선수 대법관)는 15일 오전 10시경 ‘아동학대처벌법’으로 기소된 유치원 특수교사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 대법원, 장애아동에게 강제로 음식 먹이고 양치질 시킨 특수교사에 ‘무죄’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대법원이 ‘교육적 목적이나 의도가 있다면’ 혹은 ‘학대에 고의성이 없다면’ 교육 현장이나 장애인시설에서 벌어지는 학대는 무죄라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날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 참석하려고 모였던 피해 아동의 아버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원,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판결이 나오자 분노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과 피해 아동 부모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더인디고
▲15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과 피해 아동 부모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더인디고

“매우 나쁜 선례” “장애아동을 어디로 보내야 하나?” “우리나라에 정의가 있는가?” “한 줌의 희망마저 사라졌다”는 탄식과 우려가 쏟아졌다.

앞서 1심에서 법원은 가해 교사 A씨가 피해 아동에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음을 인정, 벌금 300만원과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다만 2심에서 피고인(가해교사)의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바 있지만 최근까지 대법원은 ‘교육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학대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해 왔기에 오늘 판결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상황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라 함은 현실적으로 아동의 정신건강과 그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발생한 경우도 포함되며, 반드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의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있음을 미필적으로 인식하면 충분하다고 판시(대법원 ‘15.12.23 선고, 2015도13488 판결), 미필적 고의에 따라 아동학대죄의 고의 여부를 판단했다.

교육 목적’ ‘고의성 없다면 학대 아니라는 잘못된 메시지에 우려와 분노

▲나동환 변호사 ⓒ더인디고
▲나동환 변호사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번 사건 소송대리를 맡은 나동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근 변호사는 “이번 상고심 판결문을 살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후 “대법원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미필적 고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법리를 스스로 변경하기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법원이 ‘A씨가 아동학대에 대한 고의가 없으니 무죄’라는 항소심(원심) 판결이 옳다’고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제는 검찰이 가해자가 ‘나 괴롭힐 거야, 학대할거야’라는 내면을 들여다보며 입증까지 해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앞으로 체벌이나 학대가 벌어져도 가해자의 악의적 감정을 검사가 입증하지 못하면 수많은 학대 사건들이 구성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게 될 수 있다”며 “일선 교육 현장에서 장애아동을 강압적으로 대해도 ‘학대 아니다. 처벌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피해 아동 아버지가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더인디고
▲피해 아동 아버지가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더인디고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대법원이 학교현장과 교육자들의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학대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며, 학대의 의미가 무색해진 재판”이라면서 “특히 이번 사건은 동료 교사들의 내부고발로 밝혀졌는데, 어느 누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질지, 신고의무자 규정 위반은 신경이라도 쓰겠냐”며 허탈해했다.

강지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동지회장은 “작년 11월 2심에서 교육적 목적이라는 이유로 가해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때,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지 망연자실했었다. 사업부가 정의로운 판결로 바로 잡아 주길 기대하며 대법원을 찾았는데, 그 대법원이 사회정의를 끌어내는 최고 기관인지 정말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매년 장애인 인권과 차별금지 교육을 받는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결국 공개된 장소에서의 학대행위는 고의성이 없다고 받아들일 것 아니냐”며 “지난 5년간, 학대로 인해 괴로움을 안고 살아온 아이와 부모는 이제 마음을 다스릴 겨를 도 없이 다시 그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도 “사법부는 오늘 판결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판결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학교와 시설에서 맞고 염전에서 노예 생활을 하더라도 이 나라의 인권이 한 걸음 나아갈 것 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젠 그 한 줌의 희망마저 송두리째 무너진 날”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발언 도중 울분을 삭이지 못하면서도 “장애인의 인권을 국가가 보호해주겠다는 믿음을 사업부가 빼앗으니, 앞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1심 학대 인정 유죄2심 고의성 없다 무죄’… 4년 만에 원심 확정

해당 사건은 지난 2017년 5월 서울 모 유치원에 재직 중인 특수교사 A씨가 자폐성 발달장애 아동(4세)에게 식사와 양치 교육을 한다며 정서적 학대를 가하면서 발생했다.

*본지 기사(“교육적 의도, 학대 아니다”…무죄 선고한 법원 ‘규탄’) 참조

A씨는 울면서 격렬히 거부하는 아동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은 채, 숟가락을 입에 밀어 넣고 뱉지 못하도록 한 손으로 입을 막아 깍두기를 강압적으로 먹이는 일이 있었다. 또 칫솔도 입안으로 억지로 집어넣어 양치질을 시켰다.

이 유치원은 CCTV가 없는 곳이었지만, 특수교육실무사의 내부 고발에 의해 아동학대 신고가 이루어졌고 A씨는 2018년 12월, 벌금 300만 원의 약식 명령을 받았다.

이에 피고인 A씨는 이에 불복, 2019년 1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으나 11월 1심 법원 역시 ‘약식명령의 벌금액이 과하지 않고 감액의 이유가 없다’며 벌금 300만원과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다시 항소했고, 2020년 11월 6일 항소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형사부(나)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주된 이유는 “피고인(특수교사)의 행위는 교육적 의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로지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피고인에게 학대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판결문(대법원 2020도16552)은 다음 주 공개되면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재판장이 노동인권 변호사이자 전 민변 회장을 역임한 김선수 대법관이라는 점에서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심이 없는 상황에서 김 재판장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 밖에 박정화, 이기택, 이흥구 재판관이 참여했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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