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10시간 활동지원 삭감됐는데 근거조차 몰라”… 정부 ‘종합조사 비공개’ 방침에 행정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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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11시, 장추련 등 4개 장애인단체는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결과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통지에 대한 행정소송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 장추련 등 4개 장애인단체는 4월 29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결과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통지에 대한 행정소송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 월 161시간 삭감하고도 근거 한 줄 없이 통지문 한 장
  • 이유 묻자 ‘정보공개법상 비공개’…‘공정성에 영향’
  • 비공개 통지는 알 권리 침해… 행정소송 청구

[더인디고 조성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서비스 시간 판정 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 관할구청과 국민연금공단(연금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이를 거부하자 행정소송 청구에 나섰다.

지난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시행 이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급여량(서비스시간) 판정 도구가 인정조사에서 ‘서비스지원종합조사(종합조사)’로 변경되면서 급여량 하락자가 무려 19.52%에 해당하는 2,473명이 됐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가 보장되기는커녕 받고 있던 서비스마저 줄어들게 된 것. 보건복지부는 이들 급여 하락자에게 최초 1회, 산정특례로 다음 갱신기간인 3년까지는 삭감된 시간을 보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련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산정특례 기간이 다가올수록 논란은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종합조사 판정 결과는 장애인 당사자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정이고, 장애인 당사자는 이 행정처분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지만, 담당구청과 연금공단은 ‘비공개 통지’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4개 단체는 29일 오전 ‘장애인 당사자의 알 권리 보장’에 대한 기자회견과 함께 서울행정법원에 비공개 통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나선 원고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소장의 경우 종합조사 결과 기존 535시간에서 110시간이 잘려 나갔다.

▲서기현 소장(사진 왼쪽) 을 대신하여 전장연 정다운 활동가가 대신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서기현 소장을 대신하여 전장연 정다운 활동가(사진 왼쪽)가 대신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서 소장은 장애정도가 심한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2016년부터 보건복지부 440시간과 서울시 95시간을 추가해 하루 평균 약 17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등급제 폐지 후 기존 수급자격 유효기간인 3년(‘19.10월)이 만료될 즈음 그는 연금공단에 갱신 신청을 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장애 정도가 달라졌다거나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것도 아닌데, 월 활동지원시간이 무려 110시간 가량 대폭 줄어들게 됐다.

장애인들의 개별적 상황과 욕구에 맞춰 평가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종합조사가 실상은 기존의 의료적 기준에 맞춘 획일적 서비스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서 소장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도봉구청과 연금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를 이유로 기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도봉구청은 ‘어차피 공개 거부될 것인데 왜 하냐’며 정보공개청구를 취하하도록 종용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대신 자신의 심정을 동료활동가를 통해 “재판정을 받은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1년 7개월 후에는 하루 평균 4시간이 활동지원서비스가 줄어든다. 이는 하루 1끼는 굶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며 “등급이 왜 하락했는지, 그 조사관이 어떻게 저의 장애를 기록했는지, 심사관들은 또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그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고 제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홍성훈 활동가가가 ‘행정편의주의 지겹다. 맞춤형 지원 제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더인디고
▲홍성훈 활동가가가 ‘행정편의주의 지겹다. 맞춤형 지원 제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비단 서 소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홍성훈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도 작년에 재심사를 통해 한 달에 161시간이 깎였다.

그는 “정부는 하루에 5시간을 줄이겠다는 이 엄청난 결정을 어떠한 이유로 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달랑 통지문 한 장 보냈다”며 “저도 역시 종로구청과 연금공단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지만, 해당 기관은 ‘점수산출 근거를 공개하면 행정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 개발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담당 구청과 연금공단이 제시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에서는 공공기관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비공개정보를 정하고 있다.

특히, 제5호에서는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대상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소송을 대리하는 정제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법률지원단 변호사는 단호하게 “장애인 당사자가 정보공개 청구한 종합조사 결과는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제형 변호가 ‘국민연금공단은 정당한 알 권리를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정제형 변호가 ‘국민연금공단은 정당한 알 권리를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정 변호사가 제시한 판례 등에 따르면 원고에 대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 점수가 비공개정보에 해당하려면 ▲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그 자체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항에 해당하여야 하고 ▲이 경우에도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비교하여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이에 정 변호사는 “원고가 정보공개 청구한 정보는 단순히 조사항목별 점수에 대한 것으로, 이미 평가가 완료되어 처분이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설령 이것이 공개되더라도 이는 원고 고유의 장애 특성과 일상생활의 제약을 이미 공개된 종합조사표의 세부항목 및 평가기준에 따라 판단한 점수에 불과하다”며 “국민연금공단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현저히 적고, 동종 업무 수행에 지장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즉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업무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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