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자폐 차별 용어를 탐사하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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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ism awareness
▲autism awareness / 픽사베이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장애인 뒤에 ‘발달장애인’이 있고, 그 뒤에 ‘자폐 당사자’가 있다는 뼈아픈 사실은 언어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근 여성혐오 철폐 등 인권제고 노력에서 나타났듯이 장애 차별용어 또한 모니터링과 문제 제기를 통해 한국어 말글살이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하지만 자폐와 관련된 용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떠한 모니터링이나 문제제기도 없었다. 심지어 장애 차별용어를 척결하기 위해 지속해서 언론 모니터링을 반복해 나가는 단체조차 자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보도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아마 이 글을 통해 이런 차별용어를 당사자가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아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자폐 혐오용어에 무엇이 있는지 열거하고, 이에 대해 모니터링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자폐 당사자를 둘러싸고 있는 혐오의 실체를 드러내고, 앞으로 우리 말글살이가 보다 더 자폐 친화적, 아니 ‘Autistic-friendly’ 되기를(우리말 지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자폐라는 단어도 사실 차별단어에 속한다. 대안이 있다면 언제라도 제안하시길) 바란다.

자폐증

자폐에 대해서 가장 잘못된 표현이면서도 대한민국 정부마저도 사용을 승인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단어가 ‘자폐증(Autism disease)’이다. 자폐증은 한국어의 표준 규범 중 하나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 모두 등재됐다. 또 작년 8차 개정으로 올해 1월부터 사용하고 있는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KCD)’와 2020년 6월 개정한 대한의사협회 제6판 ‘보건의로용어표준’에서도 그대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자폐증이라는 단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표준어 규정 1조)’에도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적 기준에 맞춰 봤을 때 절대 용인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국제 표준인 ‘세계표준질병 사인분류(ICD)’ 제11판과 미국정신보건협회가 출간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 제5판 모두 유일한 표기로 ‘자폐성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를 공식 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마저도 자폐 당사자를 ‘Autism’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자폐친화적 단어인 ‘Autistic trait(자폐 특성)’을 채택하는 것은 아직까지 시기상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자폐성 장애’ 사용을 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자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아직도 만연하다는 방증이다.

자폐증이라는 단어는 다른 정신적 장애, 특히 신경다양적 장애들과 마찬가지로 장애를 손상이 아닌 치유 가능한 것으로 치환하여 벗어나야 마땅한 상태로 호명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어권 국가들은 사용을 중단했으며 다른 언어권에서도 문제 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 사용자들, 특히 정부가 장애 친화적 단어의 사용을 알기 어려운 이유로 저어하면서 자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대한의사협회도 인정한 단어인데, 뭐가 문제인가요?’라며 되묻는다(실제로, 특정 웹 소설에서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기도 하다).

여전히 언론도 ▲“자폐증, 여성들에게는 다른 병(?)”(연합뉴스, 4.23) ▲“타이거 우즈 ‘연장불패’ 깬 메이페어, 자폐증 투병 공개”(연합뉴스, 4.22) ▲“레고재단,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 맞아 ‘플레이인클루디드’와 파트너십 체결”(포모스, 4.1) 등 자폐를 질병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폐증이라는 단어가 용인되는 현실은 당장 당사자나 부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요법이 있는 것처럼 속여 뉴로테라피니, 유전자 치료니, 한약 치료, 대안치료니 하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에 부모들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낭비하게 만든다.

부모들은 또 자폐증이라는 단어 속에서 자폐가 치료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자폐 당사자를 일반인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당사자를 정상인으로 ‘극복’시키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자폐 당사자는 성장기에 부모로부터 받을 사랑을 빼앗기고 정서적 분노와 울분, 자아 긍정감 박탈 등 부정적 정서적 영향을 받게 되며, 이는 자폐 당사자의 사회적 고립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폐 인식을 개선하면 자폐 당사자의 삶이 제고된다’는 거짓말에 속기 일쑤다. 차라리 자폐 인식개선 캠페인을 한 번 하는 것보다 이러한 잘못된 차별단어를 척결하는 것이 가장 쉽고 큰 효과를 거두는 방안임에도 발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이런 단어가 살아 숨 쉬지 못하도록 조만간 어떠한 활동을 해 보고자 한다.

자폐적

지난 1월 15일, 조선일보 중진급 기자의 칼럼에 믿기 힘든 표현이 나왔다. 문재인 정권이 ‘운동권 정권’이라면서 ‘자폐 DNA’와 ‘자폐적 세계관’이라는 표현이 첫머리 소제목을 크게 장식했다. 일단 해당 기자의 발언에 대한 사견은 차치하더라도, 권력자를 장애인과 연계시키면 높은 조회 수를 얻는 우리 언론 현실과 ‘애국’ 세력의 현실을 더는 간과할 수 없어 이야기를 공유했다.

논의 끝에 1월 19일 저자가 소속되어 있는 에스타스(estas, 성인자폐 당사자 자조모임)는 이 부분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 한국 사회에 자폐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비하, 혐오 표현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자폐적’이라는 단어가 사회를 적실 때, 자랑스러워해야 할 자폐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언어폭력을 참으며 속에서 흘러나오는 분노를 삼켜야만 한다. …” 이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자폐적’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써 온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시점이었다.

성명서 발표 이후 해당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해당 기사 수정 조치와 사과를 전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사과도 무색해졌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외부 기고를 통해 ‘자폐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생명 바쳐 옹위해야 할 ‘달님’이 되고 한국은 세계가 우러르는 ‘문재인 보유국’으로 추앙된다. 가짜 뉴스의 바벨탑 위에 세운 자폐적 착란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윤평중 교수 기고, 1.29) ▲“자폐적 고립주의, 반인류적 종족주의, 비실용적 독자노선, 감상적 평등주의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한다.”(송재윤 교수 기고, 4.19)
이들은 ‘자폐적’인 대상을 ‘사회의 적’으로 호칭한다. 한국 사회 전체가 자폐 당사자를 이제는 ‘적’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물론 ‘자폐적’이라는 단어는 언론에서, 심지어 지식인조차도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해 오고 있다. ▲“대구·경북은 사회적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차적 관계의 연줄로 자폐적 경향을 보이는 사회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김태일 교수, 중앙일보 인터뷰, 2.5) ▲“고립되고 폐쇄적인 내파와 자폐적 과거 소비에만 매몰되어 소모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김용삼, 펜앤드마이크, 4.6) ▲“첫 소설집은 아내가 방에 숨어 있는 등 자폐적인 인물들이 많았어요.”(세계일보, 3.25) ▲“작금의 한·일 관계는 세계사를 도외시한 자폐적 역사관, 자기중심의 민족해방 서사를 외교 현장에 밀어붙인 결과다.”(스카이데일리, 1.11) ▲“사실상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잠재적 감염자라는 불안감 속에서 이미 코로나바이러스보다도 더 높은 데이터라는 벽을 공고히 쌓고 스스로 자폐적 자가격리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불교신문, ‘20.12.17)

‘자폐적’은 최근 장애 혐오 발언에 경종을 울리는 정치계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수식어다.

▲“도대체 대깨문들은 자폐적 진영논리에 갇혀 ‘이니’가 신성시되고 우상화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냐.”(김근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1.19) ▲“일종의 자폐적 증세를 과감히 벗어나 야당의 투쟁력을 보여야 한다.”(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1.27) ▲“자폐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원희룡 지사, 3.1)

그러나 우리는 최근 장애 혐오 발언을 자세히 다룬 언론 브리핑조차 이러한 언행을 문제 삼은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장애 차별단어로 선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해당 발언을 특정 정치 성향을 지닌 관계자나 언론들이 마치 짠 듯이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보면 ‘자폐적’이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그들의 주술 주문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거룩한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국어에서 ‘자폐적’인 굿판을 걷어치울 때다. (계속)

[더인디고 THE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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