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배제하는 ‘장애인복지법 15조’… 차별 진정에 인권위 판단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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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한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등과 관련하여 인권이 진정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입원과 약물만이 살 길인가?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4일 오전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한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등과 관련하여 인권이 진정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입원과 약물만이 살 길인가?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 장애인복지법 15조, 정신장애인에게 과도한 배제 기능
  • 정신건강복지법도 ‘유명무실, 예산 반영 없어”
  • “15조 폐지 등 인권위가 나서 달라”

[더인디고 조성민]

# 진정인 A씨는 미등록 정신질환자로 정신재활시설을 이용하고자 했으나, 정원이 초과되어 대기 회원으로 등록했다. 종일 집에서 게임에 의존하다 보면 가족 눈치도 보이고,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과 2차 정신적 어려움마저 겪고 있다.

# B씨 또한 정신병원 퇴원 후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정신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복지기관이나 프로그램도 턱없이 부족해 정신질환이 재발할지 몰라 정신재활시설 재입소만 기다리고 있다.

# 정신장애인 C씨는 최근 주민센터의 안내로 해당 장애인복지관을 찾아갔지만, 지체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만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은커녕 프로그램조차 배제했기 때문이다.

# 정신장애인이 시설과 지역사회에서 겪는 배제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애정도가 심해 20대 대부분을 정신병원과 정신재활시설을 오가며 지낸 D씨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환시와 환청 증세로 혼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고, 손 떨림과 불안 증세로 집안일도 쉽지 않아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세 차례에 걸쳐 담당구청에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했지만 수급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 장애인복지법 15조, 정신장애인 배제·차별 정당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인복지법으로 인해 오히려 복지 서비스에서의 배제와 차별을 받고 있다며 정부와 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정신장애인 또한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이지만 동법 15조는 타 장애유형과 동등한 서비스 이용에서의 거부를 정당화하거나 과도한 배제의 근거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법 제15조(다른 법률과의 관계)는 장애인 중 ‘정신건강복지법(구 정신보건법)’이나 ‘국가유공자법’ 등에 적용받는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제한했다. 장애인복지 서비스의 중복을 방지하고자 규정했다지만, 현실은 법률 취지보다 과도하게 해석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공익인권법재단공감 등 11개 시민사회 및 공익변호사 단체들은 4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복지법 15조에 의한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등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더인디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공익인권법재단공감 등 11개 시민사회 및 공익변호사 단체들은 4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복지법 15조에 의한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등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더인디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11개 시민사회 및 공익변호사 단체들은 4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한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등’의 문제를 지적한 데 이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자치단체, 복지관 등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인 대리인을 맡은 정제형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동법 제15조로 인한 정신장애인 서비스 차별은 정신재활시설 이용의 제한, 장애인복지관 이용의 거부, 공동생활가정 거주기간 제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며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다른 장애유형과 동등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설 이용과 활동지원서비스 제한 등 배제와 차별 다양하게 나타나

일례로 정 변호사는 “동법 15조는 정신장애인들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기 때문에, 결국 정신질환자 직업재활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 비해 예산과 인력 규모 등이 현저히 적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고용법에 따른 각종 서비스에서도 장애인 복지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된다”며 “특히,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해 기업체와의 거래가 힘들고, ‘직업재활시설 근로자 전환지원사업’에도 배제되어 고용현장으로 연계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진정인 D씨의 경우처럼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격 조차 인정받지 못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인정되더라도 신체장애인 중심의 활동지원 종합조사표의 설계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정 변호사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정신장애인은 2.2%에 불과해 지적장애 등에 비해도 상당히 적은 수”라며 “복지부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 조사항목 및 종합점수 산정방법에 따르면, 일상생활동작(ADL)과 수단적 일생활동작(IADL)의 문항 수가 21문항, 문항별 점수가 438점인데 비해, 정신적 장애인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 인지행동특성의 문항 수는 8문항, 문항별 점수는 94점밖에 되지 않는다. 즉, 정신장애인이 중복장애를 갖지 않는 한 현행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체계에서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후 인권위와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종합조사표를 만들 당시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현행 종합조사표를 개선하든가 아니면 발달, 정신장애은 별도로 분리한 표를 만들지 않으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며 인권위 진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 장애인복지법 15조폐지만의 문제 아냐…. 정신건강복지법도 한계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배제 또는 인권 침해 등으로 정부와 인권위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또 단순히 동법 15조 폐지만이 해법은 아니다. 정신건강복지법조차도 정신장애인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자회견에서 강욱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사진 왼쪽)와 김재완 동대문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기자회견에서 강욱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사진 왼쪽)와 김재완 동대문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강욱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제빵사의 꿈을 꿨지만, 정신과 담당 주치의의 ‘위험하다. 실수로 다칠 수도 있다’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다. 또 운전면허를 취득해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지만, 의사과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말에 도전할 수 없었다”며 “취업이나 취미활동조차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되며 포기하고 있는데, 정작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복지서비스, 혹은 제도조차 보이지 않거나, 있어도 유명무실하다”고 비판했다.

김재완 동대문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도 “동법 15조로 인해 다른 장애인과 동등하게 보편적 복지 서비스를 받지도 못하고, 복지관 이용이나 취업도안돼 관련 조항 폐지를 위해 수년째 활동했지만,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신재활시설 중심의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하면서, 제4장에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한다고는 해놓고 실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뿐 아니라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해서도 권리를 배제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장은 ▲정신질환자에게 맞는 적합한 서비스 개발 ▲고용 및 직업재활 지원 ▲평생교육 지원 ▲지역사회 거주·치료·재활 등 통합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지원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토록 했다. 하지만 예산반영이 전혀 안 된 빈껍데기에 불과한 규정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 인권위 시정 권고? 정부·자자체 수용여부 떠나 관련 법 제·개정의 동력

이에 인권위도 국내 정신장애인들이 겪는 고용·주거 등 일상생활과 정신의료기관의 입·퇴원 과정, 치료 상황 및 사회적 인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한 ‘정신장애인인권보고서’를 지난 4월, 발간했다. 또 이를 근거로 국무총리 및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범정부적인 정책 수립 및 이행을 권고한 바 있다.
특히 인권위는 보고서를 통해 “정신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라며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위험하거나 무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과, 그에 기반한 자격증 취득과 취업제한 법률 등은 정신장애인의 자립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염형국 변호사가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하고 정신장애인 서비스 차별 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도 있다. ⓒ더인디고
▲염형국 변호사가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하고 정신장애인 서비스 차별 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도 있다. ⓒ더인디고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과 장애인단체의 노력, 그리고 인권위의 정책권고 등에도 장애인 차별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10만4천명의 정신장애인 중 이유도 근거도 없이 6만명이 병원에 감금되거나 1만명 이상이 정신장애인요양시설에 수십 년간 수용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복귀와 재활을 돕는 정신재활시설은 고작 349개소에 불과하고 입소시설 기준 2,005명, 이용시설 기준 4,617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염 변호사는 “정신시설을 나오더라도 지역사회 복지기관이나 프로그램 등으로부터 배제되는 등 갈 곳이 없어 계속 시설에 머무르게 된다”며 “차별을 시정하는 데 있어 인권위가 그 선두에 서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정신장애인 당사자 등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더인디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정신장애인 당사자 등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더인디고

한편 인권위 권고가 있어도 정부와 지자체가 쉽게 정책을 변화 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참석자는 “장애인복지법 15조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인권위 권고가 의미가 있다”며 “우선 인권위 판단을 근거로 정부와 지자체 등의 정책 변화 유도와 21대 국회에서 장애인복지법 15조 개정과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 등에 탄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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