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혼걷이굿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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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도로 위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unsplash
어두운 도로 위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unsplash

어린아이의 아갈질처럼 자지러질 듯한 목청으로 공수를 읊조리던 무녀(巫女)는 작두를 타는 대신 횃불을 집어 들었다. 불덩이를 휘두르며 겅중거리는 무녀의 금빛 협수(夾袖)의 소매 깃이 날개처럼 푸드덕거렸다. 자신의 메마른 팔뚝을 지져 대며 뜸베질하듯 전립(戰笠)을 흔들어 대는 무녀의 흡뜬 눈은 산 자의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짙은 거먕빛이다. 어둠 탓일까, 하얗게 분칠한 무녀의 얼굴은 표정마저 지워져 퇴락한 게이샤 같다. 살갗이 타는 듯 역겨운 노린내가 는개처럼 사위로 자욱하게 퍼지자, 욕지기를 느낀 여자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퍼뜩 눈을 뜬 여자는 어리마리 사위를 휘둘러본다. 여전히 부장의 자동차 안이다. 노루잠에 끼어든 어수선한 꿈자리 탓인지 아릿한 편두통이 일었다. 부장의 구형 그랜저는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두터운 어둠은 전조등이 스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묽어져 해일처럼 우우, 비명을 지르며 여자의 눈앞을 덮쳐 온다. 성에로 뿌옇게 흐린 차창만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부장의 미렷한 뺨이 파르르 떨린다.

어머니, 그 여자가 내림굿을 받고 동자신(童子神)을 모시는 무당(巫堂)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여자는 믿지 않았다.

집에 굿당을 차리고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내림굿을 받았어. 처음에는 구경거리 났다고 재미있어 하던 동네 사람들도 이틀이나 밤잠을 설치자 무당 패거리들을 쫓아내자고 죄 몰려갔었지. 근데 그 여자 아니, 니네 엄마가 대문 앞을 지키고 서서 굿을 방해하면 온 동네에 불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야. 그 표정이 얼마나 사납던지.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나 소식을 전해준 여고 동창은 말끝을 흐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날 여자는 한 달 전부터 맘먹었던 쇼핑을 포기한 채 서둘러 집으로 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한때 엄마였던 그 여자의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지독한 허기증이 일었던 것이다. 목구멍으로 연신 시큼한 물이 올라오고 옆구리가 뻐근하도록 헛헛해서 발걸음을 떼놓기조차 힘겨웠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개수대 앞에 선 채 물에 밥을 말아 볼이 미어져라 숟가락질을 하던 그녀는 칙칙하고 습한 부엌 부뚜막에 앉아 밥을 퍼먹는 그 여자의 모습을 기어이 기억해내고 말았다. 문지방에 오두마니 서서 기다리다 식구들이 밥상을 물린 후에야 자신의 끼니를 챙기던 여자, 입매가 선연히 붉은 그 여자를.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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