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이해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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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손을 내밀어 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여러 사람이 손을 내밀어 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내 동생이 어릴 적 받아 오던 상장은 내가 주로 받던 ‘우등상’ 이나 ‘학업 우수상’과는 종류가 달랐다. ‘우정상’ 혹은 ‘봉사상’ 등으로 이름 붙인 그 상장들을 보면서 난 솔직히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나 나눠주는 위로의 상쯤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거나 뭔가 특출난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환경미화원 아저씨들과 폐지 줍는 할머니들에게 집에 있는 먹을 것을 가져다 나누는 동생의 행동들은 어려서 뭘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은 가려서 만나야 하고 관계를 나눔에도 손익의 계산은 분명해야 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두루두루 사람 가리지 않고 친구나 선후배를 사귀는 동창들을 보면 단지 인기를 끌거나 사람 좋아 보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간관계가 그리 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관계를 맺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냉정하게 나누고 있었다. 진짜 친구, 도와줘야 하는 친구,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동료…

겉모습이나 말로는 아무 차이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것 같았지만 속마음마저 그렇지는 않았던 듯하다.

시각장애가 생긴 이후에도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난 다르다고 생각했고 장애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후에도 시각장애 아닌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을 겨우 벗어난 정도였다.

다른 이들의 소수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온몸으로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소수성을 다른 이에게 이해시키는 순간에도 그랬다. 나는 존중 받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을 존중하지 못했다.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후 윤여정 선생님의 작품들을 하나씩 감상하는 중이다. 어릴 적 인기드라마에서 도도한 역할로만 보아왔던 그녀의 최근 출연 작품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쉽게 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치매에 걸린 힘없는 노인이었고 나이 든 어르신에게 몸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였다. 그녀의 가족들 또한 이혼을 밥 먹듯 하는 딸, 자기 잘난 것만 아는 폭삭 망한 영화감독,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건달이었고 그마저도 아버지 어머니가 이리저리 다른 복잡한 가정사를 품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내 생각과 시선으로 보면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배울 것 하나 없는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 영화의 초반은 그런 감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그들이 가진 각자의 마이너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면 그렇지. 저런 사람들이 어쩔 수 있나?” 하는 혼잣말을 내뱉도록 유도한다.

그렇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깊게 보이는 그들의 내면은 이해받아야만 하는 각자의 사연들로 가득 차 있다. 나와 그들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고 같은 고민과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은 목표를 품고 살아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몇 번의 굴곡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껍데기를 가지게 된다.

처음부터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이가 없는 것처럼 누구도 스스로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 믿었거나 의도적 방향성을 가졌던 이는 없을 것이다. 밑바닥이라는 선고도 다수가 부여한 낙인일 뿐 그들은 여전히 우리와 조금 다르게 사는 이웃이다.

극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든지 최악의 슬픔이든지와 관련 없이 결국 극 안의 등장인물들은 불신하던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함께하게 된다. 그것이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우정상’ 받아 오던 내 동생은 여전히 친구가 많다. 여전히 공부는 내가 조금 더 잘하는 것 같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사람 안 가리고 두루 사귀던 친구는 여전히 다이어리의 빈칸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 힘들 때 술 한 잔 기울여줄 친구도 기쁠 때 축하해 줄 친구도 그들에겐 언제나 넘치도록 많다.

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입고 크고 작은 약점을 가지게 된다. 이해받고 싶어하고 위로받기를 원한다. 이해받고 싶으면 이해해야 한다. 위로받고 싶다면 위로해야 한다. 내가 가진 이해의 폭과 포용할 수 있는 품의 크기만큼 나도 이해받고 품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품을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모두에게 존중받을 수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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