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무엇이 먼저?… 속도와 방법 놓고 이해관계 첨예하게 부딪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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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한국장총은 이룸센터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현재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올해 첫 ‘리더스 포럼’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5월 31일 한국장총은 이룸센터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현재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올해 첫 ‘리더스 포럼’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 “법 제정 vs 지역사회 인프라”, 우선순위 놓고 갈등 표면화
  • CRPD 원칙에 따른 운영방식과 점진적 기능 전환에 무게 실려

[더인디고 조성민]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장애인 탈시설법)이 발의 된 지 반년이 됐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가운데, 법 제정을 주도하는 국회의원과 다양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은 지난 5월 31일 오후 2시 이룸센터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현재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올해 첫 ‘리더스 포럼’을 개최했다.

‘탈시설’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적 기준과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운 의제인 점에서는 논의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날 참석자들은 물론 그동안 장애인 부모나 시설 및 단체 관계자조차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탈시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 등을 두고는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법 제정이 먼저냐 지역사회 인프라가 먼저냐’다. 또 법 제정으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더라도 탈시설 혹은 탈가족한 장애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줄 수 있는지, 특히 장애 정도가 심한 최중증 장애인의 경우 국가에 대한 신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 “시설, 사유지 아냐”… “국가책무는 자립생활 전환 지원, 법적 근거 먼저

최혜영 의원은 “국가는 과거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을 보호하는 책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있기에 법을 발의했고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탈시설 반대 세력도 있고, 정부 부처는 의욕이 없는 데다 장애인단체 조차도 한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며 “특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단체는 찬성한다면서도 단서를 붙이거나 ‘(전달체계 등을) 해당 단체에서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냈다”고 아쉬워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한국장총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한국장총

이어 법 제정을 둘러싼 쟁점이나 일부 반대 논리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최 의원은 “시설을 당장 폐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고,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시설은 일부에 불과한 만큼 잘하는 시설은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하지만 동법은 시설을 단계적 축소·폐지하거나 정원을 감축하는 식이다. 또 ‘좋은 시설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선택권이나 개인의 욕구조차 표출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족이 시설거주를 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제는 가족이 아닌 국가책무가 중요하기에 탈시설 지원부터 정착까지의 주거, 보건, 의료 등에 이르기까지 기본법 형태로 법에 담되 이후 법령 등에서 구체화하면 된다”며 “가족이 보호자라 하더라도 장애인을 시설에서 살게 할 권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의원은 “‘지역사회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IL 센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보건소 등이 있지 않나, 이를 잘 연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재차 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시설 폐쇄는 사유지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설은 공공성을 목적으로 보조금도 주고 세제 해택도 주는 만큼 사유지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나를 대신? vs 국가가 할 수 있다”…. 속도와 방법 더 논의해야

하지만 이날 포럼에서는 10년 내 시설의 단계적 축소, 폐지 혹은 정원감축이라고는 하지만 ‘국가책임’에 대한 공방과 함께 그동안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왼쪽)과 김재익 해남복지회 이사장(오른쪽) ⓒ한국장총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왼쪽)과 김재익 해남복지회 이사장(오른쪽) ⓒ한국장총

한국장애인부모회 고선순 회장은 “보거나 듣지도 의사소통도 어려운 마흔 넘은 자식이라도 시설에 보내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나. 심지어 부모는 아들이 군대 갈 때도 울기 마련이다. 자식이 부모를 때려도 내 새끼이기 때문에 밥을 먹인다. 국가가 밥을 먹인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그러다가 부모가 죽을 때가 되면 시설을 알아보는 것이지 좋아서 맡기는 것이 아니다. 탈시설 해서 지역사회에서 산다고 치자. 우리 아이가 밥을 굶을 때, 누가 밥을 먹이나. 가족이 탈시설 막지 말라? 무책임한 말들이나 하지 말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해냄복지회 김재익 이사장은 “국가가 하면 되지 않나”라고 응수했지만 고 회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국가가 지금 하고 있나? 국가는 나를 대신하지 못한다!”였다.

▲김동범 한국장총 사무총장 ⓒ한국장총
▲김동범 한국장총 사무총장 ⓒ한국장총

반면 한국장총 김동범 사무총장은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마찬가지로 ‘탈시설’도 정치 구호로는 선명할 수 있으나 등급제 폐지 후 중증 경증으로만 나뉘고, 이 중 경증은 또 소외되는 것처럼 탈시설 정책도 구체성이 결여된 채 최근 ‘시설유지냐 아니냐’는 본질만 논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시설에서 나온 이후 주거나 인적서비스 등을 보면 결국 가족이 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서로가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한국장총
▲정의당 장혜영 의원 ⓒ한국장총

또 “해외도 3~40년 걸리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설 기능 전환이나 우리 사회의 자원 활용 등 구체적인 방법론을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탈시설지원법을 공동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지역사회 자원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적정한 시기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문제이고, 또 부모나 가족의 굴레를 이제는 국가에 지우기 위해서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장 의원은 이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생 시설에서 학대받는 사람이고, 이제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것”이라며 최 의원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 탈시설, 구호보다는 기능전환과 촘촘한 지원체계 논의해야

앞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의 과제와 쟁점’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오욱찬 부연구위원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및 일반논평에서의 ‘탈시설’ 개념과 서구의 사례를 소개했다.

오 위원은 “해외 사례의 경우 ▲미국은 사법부가 불법으로 간주한 시설 서비스에 대한 점진적 축소 ▲캐나다는 행정적 강제력에 의한 감축․폐쇄, ▲스웨덴은 시설폐쇄를 강제하는 법률 시행 등 다양하게 전개됐다”며 “기간 또한 국가가 탈시설화 정책을 본격화한 이후 최소 30년 이상 걸렸음에도 여전히 스웨덴도 이름만 달리했을 뿐 다양한 주거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시설화 정도 및 해소 기간 (자료=오욱찬 부연구위원)
▲국가별 시설화 정도 및 해소 기간 (자료=오욱찬 부연구위원)
주: 거주인은 국공립 시설의 발달장애인으로 한정함. 단, 한국은 공동생활가정 및 단기거주시설을 제외한 거주인 수를 기준으로 함.
▲오욱찬 보사연 부연구위원 ⓒ한국장총
▲오욱찬 보사연 부연구위원 ⓒ한국장총

이어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시설화 정점시기’ 거주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국공립 거주시설 중심이었던 서구와 달리 한국은 민간 거주시설 중심이라는 점에서, 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일반논평에서 점진적 탈시설화를 제시하는 만큼 ‘시설’ 자체의 감축․폐쇄보다는 ‘시설 서비스’의 축소․종식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언급했다.

오 위원은 “기능 전환이 되더라도 ▲신규 거주시설 설치 제한 ▲탈시설 서비스 신청 및 지원에 대한 거주시설의 부적절한 개입 금지 ▲신규 입소 중단 등 기준 강화 ▲거주시설 기능보강 예산의 점진적 축소뿐 아니라 운영 자체도 장애인권리협약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럼을 마친 후 장애인단체 한 관계자는 더인디고와 인터뷰에서 “장애인 탈시설은 더 이상 논쟁거리는 아니며, 지금은 법적 근거를 마련해 촘촘한 방식의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오랜 세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 관계자는 “장애인의 시설생활은 그리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설 자체를 마냥 죄악 시 하는 것보다는 시설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을 준비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등 국회의원 68명은 작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발의했다. 동법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 할 수 있도록 탈시설을 지원하고 10년 내 시설 등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쇄하며, 인권침해시설을 조사해 제재하는 등 장애인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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