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무심이 유심이었음을

2
260
▲교실 ⓒ픽사베이
▲교실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실업고 3학년 교실 분위기는 10대 끄트머리 청춘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취업 게시판은 연일 새로운 근무처가 올라왔다. 자신의 취업등수(고1~2학년의 성적으로 1등부터 600등까지 순위를 매겼음)로 원서라도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맞춰야 했기에 다들 분주했다. 1학년 때 전교 석차가 한 자리였던 나는, 세상을 알아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한 2학년 때는 세 자리였다. 그나마 금융권에는 갈 수 있어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도 취업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기회만 선점할 뿐 성사 여부는 자신의 운에 달렸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취업에 무신경한 분이었다. 취업 성공한 학생 숫자가 자신의 급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아 보였다. 여름방학부터 바로 수습직원으로 출근했던 나는 우리 반 분위기를 잘 몰랐다. 졸업 때 보니 60명 거의 다 직장인이었던 걸 보면 선생님 나름의 방식이 있었던 것 같다.

계절의 여왕 5월 어느 날, 종례시간에 들어 온 선생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선생님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분단 사이를 거닐고 있다는 것만 느끼게 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요기가 연봉이 쎄다. 투자회사니까 저축을 해도 마이 유리할 끼다. 내일 면접 보러 온다카네. 한 명 뽑는데 지원자를 세 명 보내달란다. 다른 반 학생 둘은 니보다 성적이 안 좋으니까 니가 제일 유리할 거 같다. 교복 단정하게 입고 등교 하거래이.”

생애 처음 나의 취업 관문이었다. 혼자 면접관의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내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했다. 뭐라도 다른 점을 찾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다. 하지만 사투리가 그렇게 애교스럽다는 걸 그 날 처음 알았다. 밝은 표정의 한 친구는 얇은 톤으로 면접관의 질문에 살살 웃으며 대답을 잘하고 있었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고 듣기 편한 목소리라는 것만 느꼈다. 내가 듣기 좋으면 면접관들도 그랬을 거란 생각에 기가 죽었다. 그래도 나의 억양이 다른 것에 대해 면접관은 고향을 물었다.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입니다. 제가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왔지만 1남7녀의 가족들과 살다보니 제 억양이 지방불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어체로 말하다보니 내 안에선 이게 아닌데 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면접관 3인 중 누군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형제가 억수로 많네, 성격은 모나지 않고 좋겠구마. 아버지는 머하시노?”

내가 일 할 곳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게 생뚱맞았지만 나는 대답했다.

“건축업 하십니다.”

사실은 목수였다. 언니들이 어차피 우리 아버지는 집을 짓는 분이니 목수보다 건축업이라고 하면 더 있어 보인다는 말을 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그렇게 말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면접관은 내게만 질문을 더 했고 희망적인 말을 남기고 학교를 빠져 나갔다.

“같이 일하먼 억수로 유쾌할 거 같네. 또 보재이.”

또 보자는 말이 내게는 합격으로 들렸다. 두 친구는 시무룩했고 나는 들떠 있었다.
다음 날 결과가 나왔다. 두 친구는 합격, 나만 탈락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한 명 뽑고 다른 학교에서 한 명 뽑으려 했는데 우리 학교 학생 두 명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에 나는 눈물이 나왔다. 두 친구는 나보다 키도 크고 예뻤다. 날씬하기까지 하니 퉁퉁한 나는 더 작아 보여서 처음부터 외모에서 밀리겠단 생각을 안 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면접 내내 다들 내게 관심을 보였고 또 보자는 말이 내겐 희망고문이었음을 알았다. 선생님은 내 등을 다독이며 그랬다.

“서비스업이니까 외모가 중요했는갑다. 니도 살 좀 빼면 좋겠다.”

위로라고 한 말인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건지 나는 더 기분이 나빴다.
사흘 후 선생님은 내게 또 면접의 기회를 주었다. 일반 업무를 하면서도 명칭이 ‘외환’이라는 매력에 더 좋게 느껴졌던 은행이었다. 1차 면접, 2차 필기 시험과 자기 소개서 제출, 3차 최종 면접의 관문을 뚫고 나는 은행원이 되었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동네 어귀 공중전화로 학교에 전화를 했다.

“어, 안 그래도 내일 학교에 오면 말할라 했는데 전화 잘했다. 니 합격이다. 내가 기분이 좋아서 느그 아부지하고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광안리 00횟집 그리고 모시고 온나.”

병중인 아버지 대신 오빠가 나갔다. 나는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오빠는 나의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다. 술이 거하게 취한 선생님은 비스듬히 누워 나의 취업 성공이 당신 공이라고 떠벌리며 기뻐했다.

“내가 우리 반 학생들 주욱 둘러보니까 다 고만고만한데 둥글넙적 허연 얼굴에 편해 보이는 인상이 딱 눈에 띄더마는. 니 잘 될 줄 내는 알았다 아이가.”

그 때는 몰랐다, 그게 선생님의 애정어린 표현이었음을.
그 분을 생각하면 살 빼라고 한 것만 기억하는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였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유독 더 진하게 생각나는 선생님이 고3담임이다. 아울러 취업에 신경 곤두섰던 그 때의 면접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을 추억하려는데 나의 면접 상황이 더 장황하게 써지는 걸 보면 나는 타인과의 기억보다 내 자신에게 더 집착하는 사람인가 보다. 무심한 듯 보였어도 자신의 소임을 다 한 선생님을 다시 한 번 추억하며 모든 선생님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승인
알림
6622817ee1212@example.com'

2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lem72@naver.com'
이은미
2 years ago

취업의 관문을 뚫기가 어지간히 힘든 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거겠죠? 고3이라는 상황이 지나면 성인이 되는 인생 첫 시기이며, 직장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는 시작이니 그 긴장감을 으찌 헤쳐나왔나 싶네요.

선생님께서 애 써주시고 작가님의 성실함이 결실을 맺어 기분 좋으네요.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 천지인 삶에서 첫 줄발이 희망참은 뚜벅뚜벅 새로운 곳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니까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cooksyk@gmail.com'
김서영
2 years ago

진솔한 선생님 글은 언제나 기.승.전.미소.입니다 나이 들수록 외모는 인상이 다라는걸 깨닫게 되요
담임선생님께서도 하얗고 귀여운 미영이를 콕 찍은 이유가 있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