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자폐차별 ‘인천시 발달장애인실태조사’는 증언한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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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청 전경 /사진=인천시
▲인천시청 전경 ⓒ인천시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2020년 10월 13일, 갑작스럽게 인천시로부터 ‘인천광역시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최종 성과보고회 소식이 알려졌다. 남구에서 태어나 남인천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인천 토박이’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조사 보고서를 확인해 봤다. 보고서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매우 실망스러웠다. 역시나 인천이니 나올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우선 3장 해외 사례에서 미국과 일본만이 선진사례로 다뤄지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현재 ‘발달장애’ 관련 가장 선진국은 영국이다. 무엇보다 영국에는 자폐법(Autism Act)이 있으며, 모든 국가 단위가 자폐전략(Autism Strategy)을 수립, 실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아예 내각에 정신보건 장관이 있을 정도이며, 스코틀랜드 정부와 에딘버러성에는 자폐인 긍지의 날(Autistic Pride Day)인 6월 18일에는 자폐자랑기(Autistic Pride Flag)가 내걸린다. 이런 전향적인 내용보다 자폐 특성, 무엇보다도 고인지 자폐당사자의 등록이 매우 어려운 일본을 소개하는 것은 역시 지적당사자를 우선시해 지원하는 발달장애 정책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가시적인 손상이 없다면 장애 등록에서 제외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장애에 대한 의학적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발달장애’ 정책이 미국만도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선 2000년 개정된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법은 주마다 발달장애협의회(council)를 구성하고, 협의회 의원 1/3을 장애당사자에게, 1/3을 부모나 후견인에게 배정함으로써 재정 배분을 당사자가 결정하도록 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발달장애인법에는 이른바 ‘발달장애인’이 관련 정책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러한 처사 자체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 법률을 모방해 ‘발달장애정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면 발달장애인 정책 차별이 현재같이 심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게 한다.

또한 미국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 차원에서 발달장애인을 시설에서 나오게 함으로써 가정에서 통합고용을 촉진하도록 한다. 기존의 분리고용에 메디케이드(한국의 건강보험공단) 배정을 금지해 실제 통합고용을 촉진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시설 예산은 증진하는 반면 탈시설이라는 단어 사용은 극도로 피하고 있으며, 여전히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예외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주마다 발달장애국을 설치하고 연방 행정조직을 설치해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통합된 삶을 누리도록 지원하지만, 한국의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법률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제한된 업무를 한국장애인개발원에 위탁해 수행한다는 한계가 있다.

일본 사례에서는 최근 장애인권리위원회 일반논평 8호 의견수렴 과정에서 전 세계적 비판의 대상이 된 자회사 고용이 우수 사례로 소개되었다. 또한 최근 전 세계 자폐당사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는 세계자폐인의 날을 장애인식 개선 사례로 (그것도 ‘자폐증’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내 사례에서는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던 서울시와 광주시, 본 연구의 핵심이 되었던 인천시 모두 등록 자폐당사자의 수가 10~19세 나이대가 가장 많았고, 30대 이상 장애인의 수는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앞으로 많아질 성인자폐당사자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미등록 자폐당사자 정책 수립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장 인천시 현황에서 매우 아쉬운 점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는 것이다. 인천시에는 자폐당사자를 위한 대안학교로 참빛문화예술학교가 있지만, 운동장 시설이 없어서 미인가로 운영되고 있다. 참빛문화예술학교는 인가 장애어린이집과 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시설만큼은 학교법의 과다 규제로 인해 등록을 못하다 보니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물론 인천시에서 인풋과 아웃풋 모두 통제했을 수 있겠으나, 연구진이 현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편 2019년 10월 기준 10,459명의 등록 지적당사자 중 4,764명(45.5%)이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고 있지만, 1,496명의 등록 자폐당사자 중 1,318명(88.1%)이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고 있어 등록 자폐당사자의 장애인복지관 의존율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황을 볼 때 인천시 자폐당사자 대다수는 장애인복지관에 매여있으며, 따라서 필자와 같이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지 않는 등록자폐당사자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힘든 구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인천시와 인천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복지체계 바깥의 ‘자폐성 장애인’들의 현황을 파악하기를 촉구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핵심은 바로 5장 ‘생활실태 및 욕구조사 결과분석’이었다. 분석은 설문조사와 인터뷰 조사로 이뤄졌는데, 이 중 핵심은 설문조사 부분이었다. 보고서 전반적으로 참가대상자 표집방법 및 대리응답 여부 설명이 부족하고, 설문에 응답한 자폐당사자의 수가 n=54이며, 응답 자폐당사자의 나이대 분포를 알 수 없으며, 지적·자폐 중복당사자가 제대로 측정되지 못하는 등 여러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폐당사자’들의 응답내용을 얼핏 살펴봐도 인천시에 거주하는 자폐당사자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사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독립생활지원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응답자 중 한 명을 제외한 자폐당사자의 절대다수가 시설이 아닌 가정에 거주하고 있고, 응답자 중 독립생활자가 한 명도 없었다. 자폐당사자 다수가 부모와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성인 독립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삶은 양육 스트레스를 겪어온 부모에게도, 신경다양성을 통해 일반인과 다른 소통방식을 지닌 자폐당사자들에게도 부정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탈시설지원법안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지적당사자의 경우 탈시설 상황이나 자립생활(IL)센터를 통해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만, 자폐당사자의 경우 가족을 벗어나는 경우가 매우 적어 독립생활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사회적 소통 및 접촉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탈시설을 겪지 않는 자폐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주거지원의 필요성이 확인되었다.

둘째로, 자폐당사자의 돌봄 요구가 명확히 드러났다. 주요 돌봄자를 묻는 질문에 두 명을 빼고는 부모로 답했고, 평균일 돌봄시간이 지적당사자(7.0시간)에 비해 상당히 높게(10.6시간) 나타난 데다 돌봄비용 또한 50만원 이상을 뛰어 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지적당사자(27.1%)와 달리 자폐당사자의 과반(57.4%)이 도전적 행동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 89.6%가 ‘생활 전반의 부담도가 (매우) 높다’고 응답해 자폐당사자 가정의 양육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할 것으로 측정되었다.

가정의 양육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폐당사자들의 부모들은 주간보호시설과 활동지원 돌봄 및 인력 확대를 요구하였으며, 이는 직업재활서비스 확대를 제1 요구사항으로 내세운 지적당사자 부모보다도 돌봄지원 요구가 더욱 급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제2요구사항에서 자폐당사자 부모는 시설 확충을 가장 많이 요구하였는데, 역설적으로 자폐당사자 부모들이 양육 부담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드러낸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폐쇄적인 일상이 이어지는 지금 자폐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우선적 지원이 필요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셋째로, 자폐당사자들은 일상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그 강도가 지적당사자보다 매우 높았다. 자폐당사자 부모들이 보고한 차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생활과 보육 및 교육, 여가 및 문화생활 영역에서 절반이 넘는 차별 보고가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설문항목 이외의 기타 차별 보고가 76.7%에 달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마저도 정규화되지 못한 부분에서조차 세밀한 차별을 느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지닌 자폐혐오의 정도가 심대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주요 기타 응답 내용을 당연히 공포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보고서에서 제외된 점은 문제가 있다 하겠다.

자폐당사자의 일상적 폭력 경험을 확인한 결과, 10명이 언어적,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하였고, 특히 지적당사자보다 더 빈번하게 강한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3분의 2는 받은 폭력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아, 자폐당사자들이 받는 폭력에 대한 상담 필요성이 지적당사자보다 더 많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가해자의 경우 장애인 복지 시설 직원의 폭력이 33.3%로 높게 나타나 자폐당사자가 장애인 시설에 들어갈 경우 관리자로부터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는 시설 폐지를 강조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9조가 자폐당사자들에게 끼치는 긍정적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 또한 확인해 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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