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자폐 차별 용어를 탐사하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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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상징하는 리본 /사진=픽사베이
▲자폐를 상징하는 리본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 아스퍼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지난 기고에서 다룬 ‘자폐증’이라는 단어가 지식인 가운데서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만큼, 아스퍼거라는 단어도 논란의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스퍼거라는 이름의 유래나 그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자폐 당사자의 일부를 서술하는 단어로 사용하기 힘들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한때 자폐 특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칸너의 이름을 따라 ‘칸너 증후군’이라고 불렸다. 소아과 의사였던 한스 아스퍼거의 보고를 토대로 그의 이름을 붙여져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신 국제규정인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와 ICD-11은 이 ‘증후군’을 전면 삭제했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지게 됐을까.

첫째, 한스 아스퍼거의 나치 부역 논란이다.
한스 아스퍼거는 나치 시기 점령당한 오스트리아 내 빈 대학에서 우연히 독특한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장점과 강점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치의 당수인 히틀러는 장애에 대해 우생학적 입장을 취하면서 제3제국 전역에서 인종 청소를 시행했고, 이러한 폭력은 장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치는 건강하지 않은 모든 장애인과 어린이에게 생각하기 힘든 비인간적 요법을 써서 안락사 시켜 이들이 ‘국체’에 끼치는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히틀러의 친족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8년 〈분자 자폐〉(Molecular Autism) 지에 올라온 헤르트비히 체리(Herwig Czech)의 논문은 아스퍼거가 나치의 우생학적 입장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물론 〈뉴로트라이브〉는 아스퍼거가 게슈타포에 체포되기도 하고, 저항도 하면서 자폐당사자를 조금이나마 살리고자 노력했음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둘째, 아스퍼거 증후군의 폐지를 자폐 당사자가 추동했으며, 그 근거가 명확하게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뉴로트라이브〉는 자폐자조네트워크(ASAN) 회원들이 자폐가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자폐진단에 빠져있는 당사자를 포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DSM-5 개정 당시에 미국정신의학회에 요청하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성장애로 포함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한국어 597쪽). 또한 소위 ‘고기능’ 자폐 당사자나 ‘저기능’ 자폐 당사자 모두 아스퍼거가 발견한 자폐특성의 연속선상(Spectrum) 속에 규정된다는 점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정의에 완벽히 포함된다. 따라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 특성에서 벗어난 독립된 것으로 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이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많은 당사자나 관계자들이 자신을 아스퍼거 당사자로서 여기며, 해외에서마저 사라진 아스피라는 표현을 아무런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은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과 같은 고맥락사회에서 ‘사회성’ 맥락과 결합해 정당화되고 있다.

  • ‘스퍼거’라는 장애혐오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없애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단어의 혐오적 전용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아스퍼거’는 한국사회에서 남성 누리꾼들을 만나 혐오단어로 정착되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디시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 나무라이브 등의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스퍼거’로 검색해 보길 바란다. 원래 쓰이고 있던 철스퍼거(철도+아스퍼거), 버스퍼거(버스+아스퍼거), 밀스퍼거(밀리터리+아스퍼거)만으로 모자라 이제는 원스퍼거(〈원피스〉+스퍼거), 닌스퍼거(닌텐도+아스퍼거), 곰스퍼거(〈곰 곰 곰 베어〉+아스퍼거), 컴스퍼거(컴퓨터+아스퍼거), 역스퍼거(역사+아스퍼거), 겜스퍼거(게임+아스퍼거) 진스퍼거(〈진격의 거인〉+아스퍼거), 헬스퍼거(헬스+아스퍼거), 포스퍼거(〈포켓몬스터〉+아스퍼거), 고증퍼거(고증+아스퍼거) 등 다양한 파생 단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다른 욕설과 합쳐진 찐스퍼거(찐○+아스퍼거) 등의 용례는 그냥 그들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음은 자폐를 혐오대상으로 여기는 실제 용례이다.

“일베에는 중산층에서 자란 자폐아가 너무 많더라.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 애들이 거의 아스퍼거 성향이 강한 애들인데… 한국은 애초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개체가 많기 때문에 고속성장 과정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문화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술 마시고 성매매하고 도박하고 쌈박질하고 게임으로 PK하고 그냥 인신공격이나 더러운 짓을 해서 푸는 경우가 많다.”(일간베스트. 2021년 4월 16일)

“근첩네덕플베충닌스퍼거 분들 제발 꺼져주세요”(디시인사이드, 2021년 5월 19일)

“아니 스퍼거새끼들 진짜 다 개패고싶다 ㅋㅋ”(디시인사이드, 2021년 3월 29일)

“리제로>>소아온>>>좆격의거인 ㅋㅋㅋㅋㅋ 반박시 저능아진스퍼거 ㅋㅋㅋㅋㅋ”(디시인사이드, 2021년 2월 8일)

“근육빵빵 헬창형들 모인 팀에 밀스퍼거나 틀딱 오면 볼만하겠노 ㅋㅋ”(나무라이브, 2021년 5월 24일)

“개추 저 개똥 싸는 아스퍼거들 저런 새끼들 그냥 격리시키면 안되나?”(나무라이브, 2021년 5월 25일)

이러한 단어의 홍수 속에서 자폐성 장애인은 점차 한국 사회에서 격리의 대상, 폭력의 대상, 거부의 대상으로 깊게 인식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는 일본 혐한세력의 문제점을 체감한 한국 사회에서조차 최근 잘못된 승리 경험을 통해 강화돼가고 있다. 유교 문화권이라는 비자폐친화적 문화 속에서 낮은 자존감을 가지며 거절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을 막아야 할 시점에 합당하지 않은 혐오를 마주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마주할 이 땅의 많은 자폐 당사자들을 위해서라도, ‘아스퍼거’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 표준차별용어

이외에도 자폐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이러한 시각을 극단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우리말샘에 올라온 올림말들이 있다. 물론 ‘자폐증’과 ‘자폐적’이라는 단어 또한 이 올림말에 들어가 있으며, 전반적으로 자폐 당사자를 ‘자기 속에 파묻혀’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현실에서 도피’해 ‘내면세계’에 틀어박힌, 치료가 필요한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일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번트^신드롬 「001」 지적 장애나 자폐증 따위의 뇌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상.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소아기^자폐증(小兒期自閉症) 「001」 『의학』 유아가 부모 형제까지 포함하여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정신 장애. 정신적으로 고립 상태가 되어 어떤 행위를 고집하고, 부모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증상을 나타낸다.

▲자폐증^환자(自閉症患者) 「001」 『의학』 심리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히는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

▲자폐성^경향(自閉性傾向) 「001」 『심리』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자기 가운데에 파묻혀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경향.

▲자폐-화(自閉化) 「001」 「명사」 현실과 동떨어져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히게 됨. 또는 그렇게 함.

▲현실^도피^경향 「001」 현실을 직시하고 인식하여 자아의 정체감을 지니기 어렵게 될 때, 강한 좌절이나 갈등이 개입하는 자기 개념과 현실과 부적합한 상황에서 생기는 도피 경향. 예를 들면, 등교를 거부하거나 자폐적인 행동, 공상에 몰입하는 행위, 백일몽이나 망상으로 도피하는 행위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은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해 가면서까지 한국어의 또 다른 언어규범을 지향하고 있는 언어사전으로서, 이러한 단어들을 국가기관에서 표준어로서 공표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고 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자폐 차별용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형성되고, 국립국어원에서도 장애 관련 항목을 대폭 수정해 ‘자폐^특성’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적’ ‘신경^규범성’ ‘자폐인 긍지의 날’ 등의 자폐 친화적, 또는 신경다양적 올림말을 많이 실어주기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더인디고 THE 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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