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삶에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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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어라/사진=픽사베이
자신을 믿어라/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갑자기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어떤 물건을 가지고 갈 것인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면 교실의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한두 명씩 “식량을 최대한 가지고 가야 해요”, “열매를 따거나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도구를 가져가야 해요”, “굶어 죽더라도 예쁜 옷과 화장품은 가지고 가야 해요”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적인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익숙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다 공부를 잘 하거나 말재주 좀 있는 녀석이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하기라도 하면 다른 친구들은 그것이 정답인 양 더욱 위축된다.

갑자기 무인도에 간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만큼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애초부터 없다. 먹을 것을 잔뜩 가져간다는 친구에게 근시안적인 판단이라고 비판하며 도구를 가져가겠다고 주장하는 녀석이 있지만, 그곳엔 과일나무도 어족자원도 당장 없을 수도 있다.

당장 죽더라도 패션은 챙겨야 한다는 친구에게 어리석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의 화려한 차림 덕분에 구조대에 더 일찍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통신장비와 발전기를 챙기고 농사를 짓는 방법이 적힌 책들을 가져가겠다고 그럴듯하게 말하는 아이의 발언도 주장일뿐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면 누군가는 조금 더 편리한 방법으로 삶을 만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금 더 원시적으로 사는 삶이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빌딩 숲으로 가득한 최첨단 도시에 사는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의 섬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휴가를 떠나기도 하고 또 그곳의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닮고 싶어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왁자지껄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교실의 아이들은 정답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의견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이지 않는 눈과 함께 사는 내가 자신 있게 사는 것도 내 삶은 갑작스러운 무인도를 마주할 때와 같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실명’은 예고 없이 던져진 무인도의 삶처럼 막막하고 암담하기 그지없는 불안 그 자체였기에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해야 할지에 대한 것은 자신 없이 쭈뼛거리던 학생들보다도 확신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인생의 정답은 100점짜리 시험지처럼 흠결없는 것이어야 하고 목표는 언제나 최선 아닌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믿던 내게 장애를 마주한 그 순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부하는 친구들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던 나는 그들의 모양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했다.

겨우 점자를 배웠지만, 느릿느릿 더듬더듬 겨우겨우 한 글자씩 읽을 뿐이었고 지팡이 보행이라는 걸 훈련받긴 했지만,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때로는 아주 많이 다른 모양들로 살아야 했다. 정답이라고 믿던 길을 가던 친구들과는 점점 동떨어진 것들로 삶이 채워졌다.

보는 대신 만져야 하고 들어야 했다. 던지고 받아내는 공놀이 대신 굴리고 소리 내는 공놀이를 해야 했다. 내 힘으로 해내는 것보다 예의 바르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했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10여 년 동안 적응하고 만들어 놓은 삶의 루틴은 그 틀부터 통째로 변해갔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나름 살만했다. 아니 매우 즐거웠다.

10여 년을 남들처럼 살았지만 이제 30여 년을 또 다른 모양으로 살았다. 이전의 삶도 지금의 생활도 다르지만 특별히 옳지 않거나 틀리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또 다른 불편함이 있는 이들도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삶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만 원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100만 원이 있는 사람은 또 그만큼의 돈으로 계획하고 살면 된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각자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면 된다. 보이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은 또 그것대로 각자 살면 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닌 것처럼 어떤 것도 오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어떤 물건들을 가지고 갈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자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된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하면 된다.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또한 각자의 생각대로 모양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자신 있게 각자의 삶을 즐기자! 아무도 우리의 삶을 정답지로 채점하지 않는다.

정답이 없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난 자신 있게 하루를 시작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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