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권고’ 내린 인권위 결정… 표준사업장 장애인 인권침해는 숙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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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판교에 소재한 장애인 표준사업장 사내카페 실내 전경 ⓒ더인디고
경기도 판교에 소재한 장애인 표준사업장 사내카페 실내 전경 ⓒ더인디고
  • 인권위, SNS 대화방에서 반말, 모욕은 장차법상 ‘괴롭힘’… 근무시간 휴대폰 사용 제한도 ‘자기결정권 침해’
  • 하지만 연차휴가 사용과 근무 시간 외 통제 등은 ‘기각’
  • 고용공단에도 “표준사업장 관리·감독 철저”만 권고

[더인디고 조성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성남의 한 게임회사가 운영하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에서 발달장애인 직원에 대한 괴롭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교육 강화 등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위는 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동부지사(공단 경기동부지사)에는 해당 사례를 관내 장애인표준사업장에 전파하고, 향후 표준사업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해당 사실은 표준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A씨의 아버지가 최근 본지(더인디고)에 인권위의 결정문(사건번호: 20-진정-0636500)을 보내옴에 따라 확인하게 됐다. 더인디고는 작년 8월 관련 제보를 받고 두 차례 보도한 바 있다.

– 본지 20.9.29 기사(직장 내 괴롭힘당하는 2·30대 발달장애인… 장애인 사업장 인권침해 심각) 참조
– 본지 20.10.5 기사(장애인 고용이 홍보수단? 발달장애인들 괴롭힌 표준사업장’ … 인권위 진정) 참조

A씨를 비롯한 9명의 발달장애인은 2019년 2월, 피진정회사 ‘웹젠’이 설립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웹젠드림(사내카페)’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하면서부터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웹젠드림 관리팀장과 매니저들은 ‘레시피 테스트’를 한다는 이유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주5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시험문제를 내고 시간 내에 풀도록 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제대로 답을 쓰지 못하는 경우 대화방이나 조회 시간에 고압적인 말투로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연차를 쓰려고 할 때도 모욕적인 표현을 하거나 근무 시간 이외도 어디를 가는지 보고토록 했다. 또 근무 중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했다.

이 같은 사실은 A씨의 아버지가 작년 7월 건넨 녹음과 대화방의 내용 그리고 회사 관계자들이 인권위에 제출한 진술에서도 사실로 드러났다.

관리팀장과 매니저가 A씨와의 통화내용뿐 아니라 전 직원대상 조회시간에 했던 말들이 녹음된 휴대폰 사진
관리팀장과 매니저가 A씨와의 통화내용뿐 아니라 전 직원대상 조회시간에 했던 말들이 휴대폰에 녹음되어 있다 /사진=더인디고

웹젠드림 관리팀장은 발달장애인 직원에게 “너 어디서 뭐 하니?. 맨날 왜 제대로 안 한다는 소리가 들려. 내가 문제 풀이가 힘들면 주 1회씩 (연차휴가 내고) 쉬라고 했어, 안 했어? 왜 다른 사람 힘들게 하니? 넌 왜 이기적이니, 어? 맨날 정신 놓고 있니, 한 번 더 이런 소리 들리면 가만 안 둬. 똑바로 좀 해라”고 말하는 등 2·30대 성인발달장애인에게 고압적 말투뿐 아니라 연차휴가 사용을 강요했다.

또 다른 매니저도 “야, 하루 목표가 나를 열받게 하는 거니, 어제 이것 때문에 혼나지 않았어? 뭐 하는 짓이야. (아이스 초코의) ‘달게’와 ‘덜 달게’를 구분 못 해? 말로는 (커피 제조) 순서를 잘 알면서 왜 쓰지를 못하니?, 문제 풀기 싫고 컨디션 안 좋으면 연차 쓰고 쉬어. 제대로 정신 차리고 보세요. 너, 내일 두고 볼 거야”라고 말하는 등 모욕적인 표현을 일삼았다.

심지어 알파벳 숫자에 약한 직원 B씨에게 “너 이제 몇 살이야? 서른 살이 그렇게 해도 되냐, 어린 애들도 같이 있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식의 비하와 괴롭힘을 당하자 직장을 그만둔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진정인 측은 작년 10월, 인권위에 괴롭힘과 차별을 가한 웹젠드림 관계자들과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웹젠 대표뿐 아니라 장애인표준사업장을 관리·감독하는 공단 경기동부지사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 조사가 시작되자 웹젠 측은 이해관계자들과의 면담 결과를 토대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음을 인정했으며, 해당 팀장은 정직 3개월, 다른 매니저들에게는 감봉 3개월 처분을 내렸다. 다만 연차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못 쓰게 한 것이 아니라 근무 시간에 외부활동(병원진료, 가족 식사 등) 시 보고하도록 요청한 것이고 휴대폰은 뜨거운 물을 사용하다보니 업무집중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정당한 편의제공이나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레시피 테스트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 등을 한 웹젠드림 관계자들의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에서 규정하는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발달장애가 있더라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게임을 한다거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편견에 불과하다”며 “휴대전화 소지로 인한 업무에 대한 막대한 지장이나 안전상의 위험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고, 또 설령 위험이 존재하더라도 예방교육 실시 등을 취하지도 않은 채 당사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한 것은 편견에 기초한 것이자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피해자 A씨가 매주 금요일마다 연차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회사 측이 같은 날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한 것은 연차사용 자체를 거부했다고 볼 수 없고 또 근로기준법 위반도 아니라는 점에서 기각했다. 또 근무시간 이외 활동을 간섭한 것 또한 이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피해자 A씨의 아버지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연차휴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작년 5월 회사 관계자들이 걸핏하면 모욕적 표현을 사용하며 종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특히 당시 해당 팀장뿐 아니라 모회사인 웹젠 관계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려 했지만, 두 회사 모두 논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절된 운영방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작년 7월부터는 아들이 회사로부터 문자나 전화 등을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증상을 보여 그다음 달인 8월부터 주 2회 심리치료와 약물 치료 등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남은 연차를 신청한 것”이라면서 “인권위가 당시 정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한 번도 관련 사항을 묻지도 않은 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발달장애인 A씨의 아버지가 진정서에도 제출했다는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웹젠드림 관계자가 ‘근무시간 이후에 미용실을 가더라도 보고하라’는 내용의 메시시가 있다.
▲발달장애인 A씨의 아버지가 진정서에도 제출했다는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웹젠드림 관계자가 ‘근무시간 이후에 미용실을 가더라도 보고하라’는 내용의 메시시가 있다.

또 “진정서에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방을 살펴보면 관리 팀장이 ‘퇴근시간 이후에 미용실을 가더라도 항상 보고하고 가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밖에도 개인 통화기록 등을 살펴보면 근무시간 외 연락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 직원들을 통제한 증거가 있음에도 인권위가 이를 기각한 것은 인권위 스스로 조사조차 안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표준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인권위가 공단 경기동부지사에 내린 권고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공단 경기동부지사에 ▲본 사례를 전체 표준 사업장이 아닌 ‘관내’로 한정해서 전파토록 했고, 또 ▲향후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라고만 했지 ‘어떻게’라는 구체성은 없었다.

다만 결정문에 따르면 공단 경기동부지사 측은 관내 장애인 표준사업장 일반 17개소, 자회사 5개소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장애인 근로자 지원 강화를 위해 ▲장애인근로자 지원센터 운영(현재 서울, 부산, 광주, 경기, 대전, 대구 6개소) ▲인권침해 관련 문자안내 실시(인권침해 발생 시 문의처 등) ▲직무지도원을 통한 인권침해 신고체계 구축 ▲민간훈련 기관 훈련생 인권교육 신규 편성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실시 점검 ▲인권지킴이 지정 및 실시(소속기관 내 장애인 인권침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한 담당자 지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인권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은 고용 장려금 지원을, 모회사는 의무고용부담금 등 이중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장애인 당사자 혹은 보호자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 구성이나 전문 인력배치, 외부 감사 의무가 없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발달장애인지원법 제15조 및 장애인복지법 59조에 따라 표준사업장은 학대나 성범죄 신고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결국 해당 사안도 A씨의 아버지가 사회에 알리지 않았으면 전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인권위가 표준사업장을 운영하는 회사 측이나 이를 관리감독하는 공단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권고를 했으면 좋았을 사안”이라고 말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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