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시각장애인에게 시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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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시각장애 학생 중에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잔존시력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별다른 의문 없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전맹 친구들 중에도 사진을 찍고 모으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소풍이라도 가면 나름의 구도를 잡고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모인 사진은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컴퓨터의 폴더에 분류해서 저장한다.

중도에 실명한 나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동영상이나 몇초 간의 소리라도 함께 담기는 라이브포토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시각적 자극만을 줄 수 있는 평면의 사진들은 시각장애인인 내게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취미였다.

교사 입장에서 아이들의 그런 행동들은 사진을 본 적이 없는 선천성 장애인들의 무모한 비장애인 따라 하기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그건 아이들만의 취미가 아니었다. 어른인 시각장애 선생님들 중에도 사진을 취미로 갖고 계신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 모두가 선천성 장애인인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가 지나온 시간이 어떤 모양으로든 갈무리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같기도 했고 찍고 모은 사진들을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여전히 시각장애인의 사진 찍기는 나에겐 이해 불가능의 영역이기에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취미를 즐기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주인공들은 매우 진지했고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찰칵!’ 하는 셔터 소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고 보지 않고도 구도를 잘 맞춘다는 칭찬 때문일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오직 내 생각일 뿐 실제 그것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른 모든 시각장애인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처럼 장애라고 하는 작은 공통점으로 다른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모두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

어제는 어떤 학생이 “사람들은 시각장애가 있으면 왜 다 보고 싶을 거라고 착각을 하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시력이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다들 그렇게 하지 않을까?”라는 대답에 학생은 재차 본인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본 소리라면 난 또 내 생각대로 그 아이에게 ‘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세상을 눈으로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잘 몰라’라는 취지로 설교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짧지 않은 맹학교 교사 경력을 경험하면서 난 이런 친구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지금의 만족스러운 삶의 모양을 굳이 불확실한 다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오늘의 학생도 있었지만, 각자의 다른 이유로 보이지 않는 삶이 보는 삶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여럿을 나는 만나보았다.

사진 찍는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처럼 처음엔 어린아이들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깨어졌다. 그 중엔 중도에 실명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난 지금도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만족과 보이는 삶에 대한 거부는 그들에겐 가볍지 않은 고민으로 만들어진 확고한 신념이었다.

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직접 사진을 찍거나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만약 내게 시력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확률이 굉장이 적더라도 도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굉장히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나면서 내 생각들은 깨어지고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라는 생각조차 누군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실일 수 있다. 요즘 자문이나 강의를 마칠 때에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분명한 제 생각이지만 모든 시각장애인이 저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난 시각장애인이지만 다른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모두 알지는 못한다. 내가 남성이지만 모든 남성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더 오래 산 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아이의 생각과 삶을 모두 알 수 없고 책 몇 권 더 읽은 지식인이라도 다른 이를 자신의 생각대로 설득하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많이 닮았지만 많이 다르다. 다름 앞에서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다른 이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영영 모르게 될 수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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