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이웃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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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버튼 /사진=언스플래쉬
▲엘리베이터 /사진=언스플래쉬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분주한 아침, 나는 머리로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인간이라기보다 짜인 순서대로 동작하는 자동로봇에 가깝다. 알람을 끄고 씻고 밥을 차려 먹고 옷을 챙겨 입고 화장실을 들러서 문을 나가는 일련의 동작들은 수년간 반복돼 온 루틴이라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인다.

현관문을 나와서 엘리베이터의 예약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면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더라도 정확하게 1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차례로 누른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

“1층”이라는 버튼음이 들려야 하는데 그것보다 좀 말의 길이가 길다. 그렇다. 난 누군가 눌러 놓은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취소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내 귀에 들린 버튼음은 “1층” 이 아니라 “1층 취소였다. 황급히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르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지만 들리는 대답은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 공기를 탐색해 보면 분명히 누군가 있는 것은 느껴지는데 그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것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면 그는 분명 시력도 청력도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거짓말한 게 아니라면 내 인상이 말 붙이기 어려울 만큼 험상궂게 생긴 것도 아니다. ‘그는 왜 나에게 묵비권을 행사한 것일까?’ 온갖 이유를 상상하며 출근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며칠 전엔 “1층 취소”라는 버튼음을 듣고 다시 버튼을 누르려던 윗집 아가씨와 손을 잡기도 했고, 언젠가 아침엔 취소 버튼을 누른지도 모른 채 낯선 누군가와 짧지 않은 시간을 멍하니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던 적도 있다. ‘치한으로 오해받는 것은 아닐까?’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침묵인 경우가 많다.

아주 가끔 환히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시는 이웃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있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드물다. 내가 어릴 적 살던 5층짜리 아파트의 같은 입구를 이용하던 10가구는 정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살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고 할 정도로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약간 덜 친하거나 더 친한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어느 집이라도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십시일반으로 도왔다.

윗집 아저씨가 낚시터에서 유난히 고기를 많이 잡은 날엔 온 동네가 생선 부자가 되었고 아랫집 형이 시골에 다녀온 날엔 여기저기서 고구마와 옥수수 찌는 구수한 향기가 진동했다. 갑자기 밥솥이 고장 나도 쌀이 떨어져도 매우 놀라거나 걱정하지도 않았다. 쌀도 밥솥도 어려운 이웃 앞에서 굳이 내것 네것을 따지지는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의 동생 걱정을 덜어준 것도 이웃이었고 나의 학교생활에서 큰 힘이 되어 준 것도 동네 형들이었다. 우체국에 다니는 아저씨도 있었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새로 결혼한 새댁도 있었다. 요리를 잘하는 어머니. 최신게임기를 가진 친구, 야구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있는 동생과 운동 잘하는 형들도 모두 이런저런 모양으로 돕고 도움받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였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함께 할 수 있었고 다른 점이 많아서 서로 도울 수 있었다. 이웃은 어린 나에게 그런 것이었고 함께 산다는 건 그래서 좋은 것이었다. 옆집 식구들이 이사 가는 날엔 손 꼭 잡고 아쉬워하고 새로 이사 온 가족들은 진심으로 환영하고 맞아주었다. 정말 큰 대가족이 사는 느낌! 나에게 아파트는 그런 곳이었다.

지금의 난 같은 아파트에서 5년 넘게 살고 있지만, 벽을 마주하는 양쪽 옆집도 천장과 바닥을 공유하는 윗집 아랫집도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은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꼭 그런 것이 삭막한 이웃관계의 전부는 아니다. 지나다 마주쳐도 여러 번 보아도 인사하지 않고 아는 척 하지 않는 것이 이제는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느끼는 듯하다.

개인주의도 프라이버시 보호도 다 좋지만, 우리의 삶이 콘크리트나 철근처럼 각박하게 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는 높아지고 같은 입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 더 많아졌다. 열 가족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 때도 든든했는데 수십 가족이 이웃사촌으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신문이나 뉴스엔 층간소음 등으로 이웃 간의 다툼이 벌어졌다는 식의 끔찍한 사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우리가 정말 이웃이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다툼은 오해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 다른 우리가 조금만 더 가까이 지내면 아파트는 참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 없이 바쁘게만 출근하는 아침! 내일 아침 나부터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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