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개소리들의 향연(饗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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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볼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 표지와 함께 개가 짖는 사진을 함께 편집했다. 사진편집 = 이용석 편집장
▲제임스 볼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 표지와 실제 개가 짖는 사진을 함께 편집했다. 사진 = 이용석 편집장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이 실로 혼란스럽다. 집권 세력과 야권의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각 정파 간의 이해관계가 혼재된 정치적 입씨름이 무더운 날씨 못지않게 짜증을 돋운다. 뭐, 어쩌겠는가, 자발적으로 정치시장에 스스로 상품이 되어 진열대에 오른 마당이니 까짓, 뭇매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견디거나 얻어터져 만신창이가 되어 낙오되거나 하는 수밖에. 어차피 정치란 게 입을 무기로 싸우는 전쟁터쯤으로 여기면 그만일 텐데, 요즘 그네들의 개소리가 자꾸 거슬린다.일주일에 120시간을 일해야 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을 먹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범죄라거나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도 없이 마구 내지르는 기본소득과 기본주택 따위 선심성 공약들은 집권 이후의 실천할 정책적 아젠다라기 보다는 일단 내지르고 보자는 ‘개소리(Bullshit)’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소리라니, 끌탕이라도 칠 일이지만 당최 내 귀에는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개소리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 거짓말이 ‘사실, 진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라면,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허구의 담론이어서 딱히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으니 뒷감당을 할 일도 없다.

문제는 이런 개소리를 생산하는 주체들이 미디어 세상에서 영향력 깨나 있는 정치인이거나 SNS, 유튜브 등 플렛폼 기업, 그리고 언론까지 꽤 다양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이 정치적 목표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무책임하고도 교묘하게 개소리를 생산하는 이유는 거짓말보다는 발뺌하기 편리하고 게다가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소리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며, 우리는 개소리를 여과 없이 소비하며 공유한다. 말하자면 언론이나 플렛폼 기업 등 미디어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개소리의 생산과 확산의 기회를 제공하면 우리는 소비하고 공유함으로써 개소리 확산에 기여한다.

기자 출신 제임스 볼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을 사례를 통해 개소리 생태계의 원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개소리 생태계의 또 다른 주요 주체는 수용자, 즉 우리들 자신이라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정규과정의 교육을 받고 무수한 정보 중에서 양질의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심리적 이유로 개소리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제임스 볼은 세 가지를 꼽았는데, ①자신의 믿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정보만을 취하는 확증편향의 태도, ②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대하면 오히려 신념체계를 확고히 하려는 역화효과, 그리고 ③동료 집단의 판단과 주장에 자신의 의견을 꿰어 맞추려는 동조성으로 인해 개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기고 늦둥이로 시작한 장애계 살이를 하면서 어지간한 개소리에는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선거철만 되면 횡행하는 헛소문과 개소리에는 뜨악하고 생경하다. 특히, 정부나 담당 공무원들이 내놓는 온갖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개소리인지 깨닫고 나서는 이제 헛꿈조차 꾸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시작된 여러 장애정책들은 임기 내내 뒤로 밀리고 뭉개지더니 이제야 개소리 같은 초안들이 담론을 주도한다.

한 예로 최근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자세한 내용 평가야 따로 할 일이지만 한 가지만은 지적해야겠다. 시설장애인의 시설입소 평균 기간이 18.9년인데 탈시설(지역사회 전환) 마무리 시기를 2041년으로 두고 있으니 한 장애인이 스무 살에 수용되었다면 18.9년을 시설에서 지내고 20년 후인 2041년에야 탈시설을 한다는 의미다. 결국 일평생을 시설에 살다 환갑이 다 되어서야 시설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한 십년쯤 지역사회에서 살다 노환이 오면 다시 노인요양시설로 입소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가? 20년 후라면 나 역시 이번 로드맵에 의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마무리를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노인요양시설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도하게 될 수도 있겠다.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최근에 근육장애인 한 분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는데, 입원할 병원이 없단다. 작년 12월에 국립재활원은 장애인 확진자 병상 확보와 활동지원이 가능한 병상을 운영하겠다며 국회의원과 사진찍고 보도자료를 뿌리는 등 호들갑을 떨고, 사회서비스원 또한 24시간 돌봄 체계를 갖추겠다더니 모두, 함께 사진을 찍은 국회의원도 국립재활원 주요 인사들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지만, 모두들 당당하다. 왜? 개소리였으니까!

이렇듯 개소리는 제법 질서정연하고 잘 정돈된 논리와 용어들로 무장한 채 현혹하고 선동한다. 목적을 위한 과정의 지난함이 아무리 험해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들의 태도가 국가의 정도(正道)일 리는 없다. ‘가짜뉴스뿐 아니라 왜곡된 뉴스, 인기몰이를 하는 허위 정보, 극당파적인 밈, 정치 캠페인이 쏟아내는 개소리 등이 모두 포함(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_341p)’되지만, 정책 또한 현실적 검증 없이 무책임한 메시지들만 있다면 당연히 개소리다.

이 혐오적이고 선정적인 용어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언론의 가치인 객관성, 균형성, 공정성 등이 어떻게 해석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인지 되새기게 하는 밈이지만, 정부 정책이 개소리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렁텅이에 처박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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