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인생 집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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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쓰고 있다
원고를 쓰고 있다./사진=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교사로서 연차가 조금씩 늘어가면서 교과서나 교재를 집필하는 기회가 종종 있다. 참고문헌과 사전연구를 샅샅이 살피고 조사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고 완성된 원고를 보고 또 보는 작업은 지루하고 힘들고 고되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제 보았던 것 같은 부분을 오늘 다시 보고 지난번에 고쳤던 부분을 또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많아질수록 최종 원고를 마주하는 기분은 무엇과 비길 수 없을 만큼 뿌듯하다.

논리의 오류는 물론이고 오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제출하지만 연구진과 심의진의 검토를 받아보면 구석구석 흠결투성이다.

대문짝처럼 보이는 오타도 말도 안되는 비문도 나에겐 보이지 않던 것이 그들에겐 어떻게 그리 쉽게 보이는지 얄미울 정도로 깐깐한 지적들이 이어진다.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나의 실수임이 분명하기에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심한 검토에 감사하고 얼른 원고를 수정하는 일뿐이다.

교재를 만드는 작업을 여러 번 하면서 그런 나의 오류를 특별히 두려워하거나 마음에 오래 두지 않게 된 것은 심의진 역할을 맡았을 때 보게 된 다른 이들의 원고도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이다.

나보다 경력이나 지식이 훨씬 훌륭한 선생님들의 원고에서 내가 과연 어떤 오류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페이지를 넘기지만 그분들의 교재에도 실수와 오류는 적지 않게 존재했다.

‘너무 성의 없이 작업 하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만 내 원고를 심의하셨던 분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꼼꼼히 집필에 임했었다.

그 선생님들도 분명 그러셨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실수를 직접 알아차리지 못하는 전인류공통의 인간미를 함께 갖고 계셨을 뿐이다. 다만 그분들이 나와 확연히 달랐던 것은 까마득한 후배 교사의 지적에도 큰 웃음으로 감사해하며 진심 담은 인사를 건네셨다는 것이다. 한 조각의 의심도 품지 못할 만큼 쿨한 인정과 받아들임은 선생님들의 원고가 그동안 성장하고 완벽에 가까워진 최고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선생님들께서 소중히 여기고 집중하는 방향은 당장의 부끄러움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최종의 원고를 향하고 있었다.

요즘 코로나 전파가 심하고 날씨도 더워지면서 주변에서 불평과 짜증의 소리가 늘어간다. 내 짜증의 원인은 오롯이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과 온 인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모두가 심의의 대상인 집필진의 원고인 것처럼 하나하나의 단점을 낱낱이 캐내어서 지적하고 끄집어낸다.

“이 사람은 일이 너무 느려“

“저 사람은 말이 잘 통하지를 않아!“

평가하고 지적하는 당사자의 머릿속은 나는 완전무결하다는 착각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자신도 본인의 오류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짜증을 많이 내는지 몰라?”고 하면서 고농축의 짜증을 내뱉는 이를 볼 때는 나도 모르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조금은 부족한 우리의 단점들을 인간미라고 하며 서로 위로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처한 불편한 상황의 원인을 타자에게서 찾으려고 하고 평가하려 하지만 나 자신도 끊임없이 다른 이들로부터 심의받고 있다. 다른 이의 실수가 내게 보이는 것은 그의 인격을 채점하고 지적하기 위함보다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내가 다른 선생님들의 오타는 쉽게 봤으면서도 내 것은 보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실수들은 내게 존재하는 더 큰 단점들을 보완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원고의 실수를 기쁘게 인정한 선생님들의 원고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하고 완성되어 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도 오늘 누가 조금 더 실수하지 않고 있는가가 아닌 조금 더 성숙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오늘 나의 부족함을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인생의 심의진이기 이전에 본인 인생의 집필진이다.

다른 인생 원고들에서 오류가 보인다면 내 삶의 원고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보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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