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혼걷이굿 11화_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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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사진=픽사베이
침대/사진=픽사베이

잠에 든 여자가 깨어난 것은 이른 새벽녘이다. 속을 뒤집을 듯 진한 향내가 온 방 안에 가득했다. 툇마루로 나간 여자는 잠이 확 달아날 만큼 모골이 송연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온 집안을 휩싸고 있는 듯 무섬증이 왈칵 일었던 것이다. 삐주름히 열린 종석의 방 문틈으로 후끈한 열기와 기이한 방안 풍경에 그만 아연해졌다. 촛불이 까무룩히 밝혀진 방안에는 정갈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부자리 머리맡에 놓인 향로에서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헌데 비어있어야 할 요 위에 누군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있다. 이불도 처음 보는 화려한 금침(衾枕)이었다. 아마도 또 여자가 종석을 그리워하다 잠이 든 모양이라고 여자는 짐작하고는 무심결에 이불을 스륵, 거뒀다. 여자는 이불 안을 보고는 숨이 멎을 듯 소스라치게 놀랬다. 들춰진 이불 안에는 종석의 형상을 한 짚세기 인형이 검은 막대 성기를 달고 누워있고, 그 옆에는 속옷까지 갖춰 입은 여자 인형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부엌으로 달려간 여자는 그만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대야가 텅 비어 있었다.

욕탕으로 들어간 여자는 뜨거운 물을 온몸에 와락 끼얹는다. 샤워 꼭지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더운 기운에 얼었던 살갗 밑으로 피가 돌며 가려움증이 일었다. 입고 있는 털스웨터가 물에 젖어 온몸을 칭칭 휘감는다. 그런데도 여자는 자신이 옷을 입은 채로 샤워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듯 탁한 눈동자로 희뿌옇게 천장으로 날아가는 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침실로 들어온 여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모조리 벗어버리고는 혼절하듯 침대에 쓰러져 잠에 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가 침대에서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몸을 일으킨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눈동자 역시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초점이 흐려있다. 그녀는 장롱문을 열어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한다. 반듯하게 빨아 개켜둔 여름 옷가지들이 방안에 흩어진다. 그녀가 꺼내든 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지푸라기를 엮어 짠 허제비다. 베개만한 허제비는 히죽 웃고 있는 듯하다. 여자는 허제비를 와락 껴안는다. 그들의 그림자가 하나로 뭉쳐져 벽에 커다랗게 부풀어 일렁거린다. 그녀가 침대에 허제비를 눕히자 어느 틈에 허제비는 사내의 모습으로 화(化)해 웅숭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맞바라본다. 알몸을 눕히고 눈을 감은 그녀는 비로소 한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허제비의 부드러운 손길이 막 더워지기 시작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익숙한 몸짓으로 쓰다듬고 핥고 깨문다. 그때 밖에서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고함소리, 다급한 발자국 소리들이 어수선하게 들려온다. 그녀는 자신의 몸 안으로 뜨거운 불이 들어왔다고 느끼며 신들린 듯 춤을 추며 밤하늘로 날아오른 소년을 본다. 점점 수렁 같은 잠의 나락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그녀의 귀에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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