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눈이 챙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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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쓴 여인/사진=픽사베이
안경을 쓴 여인/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황반원공’이랬다. 생전 처음 듣는 안과 질환에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에게 물었다.

“네? 황반… 뭐라구요?”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친절한 의사의 설명과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내 몸은 마비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뇌신경으로 전달하는 망막에 구멍이 생겼단다. 가스를 주입하여 그 구멍을 메꿔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내 눈을 어쨌기에 망막에 구멍이 났냐고 물었다. 노화 현상이란다. 당뇨나 가족력도 있지만 내게 해당이 안 되니 나는 노화로 인한 발병이었다.

10년 이상 쓰던 안경을 바꿨다. 새 안경으로 맑고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길 기대했지만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안경이 잘못됐나 혼자 투덜거렸다.

한 달쯤 지나 안경점으로 갔다. 안경사가 다시 시력 측정부터 해보재서 기구 앞에 앉았다. 기구 속 빨간 풍선이 오른쪽 눈에는 선명한데 왼쪽 눈에는 옅은 녹색으로 뭉쳐서 흐릿해 보였다. 왼쪽 시력이 측정 불가라며 병원에 가보라 했다.

안과 전문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기 전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며칠 약 먹고 안약 넣으면 낫겠지 가볍게 생각했다.

검사를 하면서 두 눈의 차이가 극명한 걸 알았다. 한쪽 눈이 흐릿해도 다른 쪽 눈이 기능했기에 그런 지경까지 나빠진 걸 모르고 살았다. 왼쪽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흐릿한 전체적인 것일 뿐 중심부는 뿌옇기만 했다. 곡선이 휘어 보이고 글자가 뭉개져 보였다. 두 시간여 동안 검사한 결과 ‘황반원공’이었다.

수술 날짜는 2주 후에나 잡혔다. 담당 의사의 연이은 수술 스케줄은 눈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서 혼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괜찮을 거라 다독이다가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수술 후 주입한 가스가 빠져나오지 않게 하려면 2주 정도 고개를 푹 숙이고 생활해야 한다는 거였다. 잠도 엎드려서 자야 하고 밥 먹을 때와 화장실 출입할 때만 고개를 들도록 주의를 단단히 들었다. 엎드려서 자다가 무의식중에 바로 누우면 주입한 가스가 새어 나와 재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더 겁이 났고 긴장도는 높아만 갔다.

수술하는 날, 1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느낌은 그리 길지 않았다. 눈 아래 마취 주사가 들어올 때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냈을 뿐 친절한 의사의 설명은 나의 불안감을 거둬갔다.

오른쪽 눈은 가려졌고 왼쪽 눈으로 보이는 높은 천장은 여러 형태의 빛으로 아른거렸다. 금속성 물질이 내 눈을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은 이렇게 치료가 되게 하는 의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경탄이었다. 그저 잘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분별과 집착을 떠난 뛰어난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의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되뇌었다. 불교 신자가 아님에도 이것을 외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수술은 잘 끝났다. 고개를 숙이고 한 눈으로 바닥만 보고 있자니 단 하루도 만만치 않았다. 첫날 올바른 자세가 90% 성공한다는 말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샜다. 선잠에 노루잠에 쪽잠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엎드려서 이마를 대고 졸다 보니 이마가 아팠다. 턱을 괴고 잠이 들면 턱에 감각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엎드리고 있자니 양쪽 볼이 얼얼했다.

사흘 후 옆으로 누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옆으로 누우니 귀가 아팠다. 평소에는 잠자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는데 똑바로 누우면 절대 안 된다는 긴장감은 자면서도 작용했다. 바로 누우려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때마다 모로 누운 몸은 침대에 들러붙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수술한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한동안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시간이 흐르니 그 물이 동전만 한 크기의 원으로 바뀌었다. 몇 밤 더 자고 나니 동전은 사라지고 손톱만 한 까만 점이 떠다녔다. 그것까지 없어지는데 3주가 걸렸다. 더 좋아지려면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얼마나 희망적인가. 끝이 보이는 힘겨움은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듦은 적정선을 찾아 타협하면 된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란 말이 내게 힘을 주는 이유다.

안과 질환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신체 어느 부위든 평소엔 별생각 없이 살다가 그것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내가 아플 때 가족이 든든한 힘이 되어 나의 일상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가족의 귀함을 느끼게 한다.

왼쪽 눈이 나빠도 오른쪽 눈이 역할을 해 주었기에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다만 조금 불편했을 뿐. 그 불편을 오른쪽 눈이 덜어 준 셈이었다.

내 몸의 약한 부분을 조금 더 건강한 몸의 부위가 챙겨 주듯 우리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라도 그걸 필요로 하는 다른 이와 나누고 챙기는 사회, 그런 사회를 이루는 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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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com'
김서영
2 years ago

고생하셨어요 훌륭하십니다
끝이 보이는 힘겨움은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끝이 보이지 않는 힘듦은 적정선을 찾아 타협하면 된다니!
위로해야하는 제가 위로를 받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