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유전자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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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사진=픽사베이
▲유전자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성형수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난 엉뚱한 상상들을 하곤 했다. ‘도둑 아저씨가 우리 엄마랑 똑같이 변신하고 집에 들어오면 어떡하지?’에서 출발한 공상은 사람들이 예뻐지고 멋져지고 싶어 하다가 결국 모두 똑같은 얼굴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에 이르기도 했다.
쌍꺼풀 수술한 어른들 한두 명을 봤을 때쯤 실명을 경험한 난 아직도 그 수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본래의 얼굴이나 몸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쌍둥이 같다고 이야기하는 성형미인들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걸 보면 나의 어릴 적 걱정들은 뭘 몰라서 했던 쓸데없는 망상이었던 것 같다.

10여 년 전 기사에서 처음 봤던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요즘 다시 화제로 등장하는 것 같다. 좋은 종자를 만들기 위한 식물 유전자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 이 기술은 동물을 거쳐서 이젠 사람의 유전자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병충해에 강한 토마토를 만드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나쁠 것 전혀 없는 절대선의 기술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식물이 벌레들의 공격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다른 면에서 보면 먹거리를 잃어버린 벌레들의 멸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강하고 예쁜 반려동물이나 가축을 개발하는 것도 단순히 생각하기엔 비판 없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 가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들이 초래할 또 다른 문제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무엇보다 난 모든 토마토가 같은 모양, 같은 맛을 갖는 것이 가장 두렵다. 파란 토마토가 있을 때 빨간 토마토가 의미가 있고, 달지 않은 토마토가 있을 때 달콤한 토마토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동물들의 모습도 서로 다르기에 그 각각의 존재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눈물과 웃음도 건강과 아픔마저도 서로가 함께 존재해야만 존재하는 공존의 의미가 있다. ‘유전자 가위’가 사람에게 닿게 될 때 많은 이들은 비슷한 모양의 유전자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원할 것이다. 강한 신체와 똑똑한 머리를 갖고 싶어 할 것이다. 매력적인 외모와 훌륭한 유전자를 원할 것이다. 장애는 없어지고 질병도 약함도 세상에서 모두 사라지기를 원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만 난 그것이 가장 두렵다. 모두 똑같은 사람들 속에서 나의 존재는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수많은 여러 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건강에 감사할 리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강한 신체만을 경험한 사람들이 약한 이의 처지를 이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만을 먹는 삶은 결국 더 맛있는 것도 덜 맛있는 것도 없는 매일매일을 똑같은 삶으로 만들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토마토가 있어야 한다면 토마토를 먹는 벌레도 있어야 한다. 운동선수도 장애인도 삶도 죽음도 그 자체로 모두 가치 있다. 언젠가 어릴 적 성형수술의 미래를 상상하던 내 생각들은 다행히 엉뚱한 공상으로 결론이 났다.

‘유전자 가위’에 대한 나의 걱정들도 무지에 근거한 망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많은 다름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도 약함도 모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잘라내어도 괜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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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현
2 years ago

인간의 활동이 지구적으로 봤을때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다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갖게되는 것.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