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낯섦과 쓸쓸함이 가득한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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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진=전윤선 대표
▲경주 대릉원/사진=전윤선 대표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입추가 지나니 살갗에 와 닿는 아침 공기가 서늘하다. 계절의 경계에서 꽃은 지고 또 피며 제 할 일 다 한다. 하늘은 높고 날씨는 야외 활동하기에 제격이어서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볼 것 같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서긴 코로나가 심각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비대면 무장애 여행지를 찾아 나선다. 딱 요맘때 볼 수 있는 해바라기꽃을 찾아 경주로 떠나본다. 가을은 서라벌 한복판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가을에 자리를 내어주려 해바라기는 바삐 해를 쫓는다. 연꽃과 과꽃, 금계국도 한창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 쏟아진다. 여행의 낯섦과 쓸쓸함이 가득한 경주에서 계절의 경계를 맞는다.

경주는 수학여행의 메카이지만 코로나 직격탄으로 한가하다. 여행지마다 북적대지 않아 다닐만해도 한편으로는 사람이 그리워 여행지가 쓸쓸하다. 먼저 대릉원 후문 쪽으로 가는 길엔 문화재 발굴이 한창이라 둘러본다. 이곳도 많은 능이 있지만 아직 이름도 갖지 못했다. 능과 능 사이를 지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길바닥에 누워 뚫어지게 쳐다보며 제 구역에 낯선 침입자가 들어선 것을 경계한다. 대릉원 후문 쪽 담장에도 근사한 벽화가 사진 찍고 가라고 발길을 붙잡는다. 경주는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곳 전부가 신라의 역사 속으로 빠져든다. 어디든 카메라만 갖다 대면 근사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대릉원에 들어서면 거대한 능 사이로 여러 갈래 산책로가 있다. 작은 연못과 어울리는 커다란 봉분은 배롱나무꽃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능 자체가 작은 오름 같기도 하다.

대릉원을 한 바퀴를 둘러보는 데는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후문으로 들어가 산책하고 정문으로 나오면 첨성대 입구다. 첨성대 쪽으로 가는 길엔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비단벌레 열차를 운행하지만 아쉽게도 휠체어 좌석은 없다.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동력 튼튼한 전동휠체어로 천천히 걸어도 되는 가까운 거리다. 비단벌레 열차를 타면 놓칠 뻔한 풍경을 카메라 속에 담으며 천천히 첨성대로 발길을 옮겼다.

▲첨성대/사진=전윤선 대표
▲첨성대/사진=전윤선 대표

첨성대는 국가 보물이다. 천 년 전 우주에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 관측대 첨성대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 부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 부를 올리고 맨 위에 우물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이다. 첨성대 자체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문화재이어서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천년의 시간을 지나온 첨성대가 신기하다. 첨성대를 한 바퀴 빙 돌면서 천 년 전의 과학을 다시 생각해 본다. 천 년 전에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고 우주를 관찰했을까 생각하니 조상님들의 깊이 있는 과학적 학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상들의 우주관찰력은 지금의 과학으로도 신기할 뿐이다.

첨성대 옆에는 꽃밭이 펼쳐져 있다. 요맘때 꼭 봐야 할 꽃 중에 첨성대와 딱 어울리는 꽃들이다. 사진작가들의 출사 명소로 대표적인 꽃은 해바라기 꽃밭이다. 해바라기 꽃밭을 배경으로 첨성대 사진을 찍으면 아마추어도 근사한 작품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물론 휠체어 사용자도 해바라기 꽃밭에 접근할 수 있다.

▲해바라기 꽃밭/사진=전윤선 대표
▲해바라기 꽃밭/사진=전윤선 대표

해바라기 꽃밭 옆에 해당화와 연꽃, 이름도 생소한 비름 꽃이 만발했다. 넓은 꽃밭에 여행객을 위해 사진 찍을 수 있는 조형물도 있다. 예전 같으면 줄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테지만 지금은 인적이 드물어 액자만 덩그러니 꽃밭을 지키고 있다.

길 건너 금계국 밭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금계국은 코스모스와 똑 닮았지만 색깔은 황금색이다. 황금색 금계국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금전 운이 쏟아진다고 한다. 금계국 꽃밭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온통 황금 물결이 일렁인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바로 옆 경주 계림 숲으로 갔다. 계림이라고 하면 중국의 계림이 생각나지만 경주에도 계림 숲이 있다.

계림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과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한 숲이다.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숲이어서 백여 개의 고목이 우거져 있다. 계림 숲은 경주 김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숲길에는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보행도 편리해 보행약자도 산책하기 좋다. 계림 숲 안에는 경주 내물왕릉이 있어 능 사이로 보일랑 말랑한 첨성대 풍경이 일품이다. 계림 숲과 연결된 경주향교 입구는 계단이어서 안타깝게도 휠체어 사용자는 진입할 수 없다. 발길을 돌려 월정교로 향했다.

▲월정교/사진=전윤선 대표
▲월정교/사진=전윤선 대표

월정교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궁궐 남쪽문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현장에는 교각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오랜 고증을 통해 누교를 복원한 곳이다. 월정교는 궁궐을 지나가는 것 같이 웅장하다. 월정교는 교량의 축조기술 등 신라의 문화적 수준과 품격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남천 위에 세워진 누각다리 월정교는 낮과 밤으로 단청누교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월정교는 낮에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밤에 조명으로 색을 입힌 풍경도 압권이다.

월정교를 등지고 남천을 따라 내려가 다리를 건너면 교촌마을로 진입한다. 교촌마을은 경주 최부자 집이 있는 곳이다. 마을 전체가 조선시대 가옥 형태를 하고 있어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고택에 카페와 식당, 공방이 여행객을 맞는다. 교촌마을에서 꼭 먹어야 하는 교동 김밥 집으로 찾아갔지만 본점이 시내 쪽으로 이사해 문을 닫았다. 고택의 담장을 따라 능소화가 고운 색을 뽐내며 웃고 있다. 유물 단지는 평지여서 휠체어 사용자 등 보행약자 이동이 편리하다.

▲경주 교촌마을 안내도(사진 왼쪽)과 경주향교 표지석(사진 오른쪽)/사진=전윤선 대표
▲경주 교촌마을 안내도(사진 왼쪽)과 경주향교 표지석(사진 오른쪽)/사진=전윤선 대표

어느덧 해는 작은 산과 같은 능 아래로 숨고 있다. 여행객의 발길이 멈춰선 경주엔 쓸쓸함이 곳곳에 배어난다. 이제 경주를 떠날 시간. 코로나가 엄중한 시국에 여행 욕구를 억누르느라 힘겹지만 그럼에도 경주 무장애 여행 글과 사진으로 위로 받길 바래본다.

■가는 길
신경주역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가는 저상버스 이용
무궁화호 경주역
경주 장애인 콜택시 전화 054-777-2811

■ 접근가능한 식당
대릉원 앞 다수

■ 접근 가능한 화장실
대릉원 앞, 대릉원 내
첨성대 앞, 교촌마을 내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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