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실패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한국장총 “장애인정책국 손 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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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6월 25일 ‘2021년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 중증장애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장애인 건강주치의 3단계 시범사업을 9월부터 실시한다고 확정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보건복지부는 6월 25일 ‘2021년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 중증장애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장애인 건강주치의 3단계 시범사업을 9월부터 실시한다고 확정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 인식, 인프라, 대상, 수가 등 장애인·의료진 저조 이유 수두룩
  • 3년 동안 2단계 시범사업에 0.1% 참여
  • 한국장총, 의지도 실력도 부족한 ‘장애인정책국’ 성토
  • “보건 관련 부서에서 장기적으론 전담부서 신설해야”

[더인디고 조성민]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도 그렇다고 개선 의지도 없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당사자를 비롯한 장애계와 의료계의 비판이 거세다.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는 2018년 5월부터 2단계에 걸쳐 시범사업을 실시했지만, 이용자인 장애인뿐 아니라 공급자인 의료진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장애인 이용자는 참여 대상인 중증장애인 984,965명 중 0.1%인 116명에 불과하다. 주치의 활동의사는 참여가능 의사 98,482명 중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88명뿐 이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2차 시범사업 참여자 1146명. 연령별 참여자 현황. 자료=최혜영 의원실
▲장애인 건강주치의 2차 시범사업 참여자 1146명. 연령별 참여자 현황. 자료=최혜영 의원실

최혜영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천, 울산, 세종, 충남, 전북, 전남, 경남 7개 지역은 2차 시범사업 기간 동안 이용자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장애인장체총연맹(한국장총)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복지부는 본사업화를 위한 실적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실적 부족이 아니라 실력 부족”이라며“3년 동안 장애인 이용자도 또 의사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유지하지 못한 것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장애인 건강주치의를 경험해 본 이용자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응급상황에 마음 놓고 연락할 수 있고, 방문 진료도 가능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2019년 발표한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 평가연구’에 따르면 1차 시범사업 이용자의 향후 지속 의향은 97.0%, 주변 장애인에게 추천 의향은 91.1%였다. 하지만 좋은 제도를 만들고도 정작 현장에서는 작동이 안 되는 실정이다.

이에 국민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임종한 집행위원장(인하대 의학대학장)은 한 토론회에서 “지난 2차례의 시범사업은 총체적 실패”라며 “장애인이나 의료인 입장에서도 관심이 없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부담금도 있는 데다 접근성 인프라도 부족하고, 의료인 입장에서는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치의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인적자원과 예산 및 물리적 접근성 등 ‘인프라 강화’와 ▲현 행위별 수가제에서 인두제라는 새로운 지불제도로 전환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하면서 ▲장애인 건강주치의제 통합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준 권익옹호 활동가가 9월 1일 열린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현황과 장애인 당사자 사례발표회’에서 “우리동네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황인준 권익옹호 활동가가 9월 1일 열린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현황과 장애인 당사자 사례발표회’에서 “우리동네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장애인건강 주치의제사업에 참가하고 있거나 이용을 위해 직접 확인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실망감도 크다.

사지마비장애인인 황인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는 지난 1일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현황과 장애인 당사자 사례발표회’에서 “거주지인 성북구의 주치의 등록병원은 모두 3곳이다. 하지만 이들 병원은 접근조차 어렵거나 이용을 위해 사전에 전화를 걸면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식으로 응답했다”며 “결국 강북구에 소재한 병원을 이용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시각장애인인 강완식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학습지원센터 소장 또한 “거주지에서는 도보로 방문 가능한 주치의 병원은 찾을 수가 없어 노원구 소재 4곳의 병원을 확인, 직접 전화나 방문을 했다”면서 “하지만 간호사나 의사 모두 제도 자체를 잘 몰랐고, 또 정작 주치의사업에 안과 전문의가 없어 시력 관리가 절실한 경증장애인은 이용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장애인 단체들의 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장총에 따르면 전국 423명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인지도는 16%에 불과했다. 이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몰라서’였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도 지난 4월부터 전국 89개 주치의 의료기관 조사 결과 70%(62개소)가 시범사업 참여 중단 상태로 장애인이 찾아가면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주치의 의료기관으로 소개돼있어도 응대하는 간호사도, 의사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43%(38개소)였다고 밝혔다.

또 의료기관이 당사자의 내원을 거절하며 제시한 사유는 ‘이용률 저조로 인한 사업 중단’ 혹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잠정 중단’ 등 기관별로 상이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업참여 기관임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요청에 책임 없는 태도를 보이거나 현재 사업을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중단 및 상담거부 기관(그래프 왼쪽)과 사업 인지부재 의료기관(그래프 오른쪽). 자료=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중단 및 상담거부 기관(그래프 왼쪽)과 사업 인지부재 의료기관(그래프 오른쪽). 자료=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에 대해 한국장총은 “시범사업을 진행할 동안 어떤 결과를 보였는지 제대로 된 평가나 의견 수렴도 없이 이달 중 3차 시범사업을 또 시작한다”며 “이미 법적으로 명문화된 제도를 3년 동안 2번이나 실패한 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과 다름없다. 차라리 장애인정책국은 3단계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고 강도 높게 성토했다.

그러면서 “대선 의제로 전 국민 주치의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장애인 건강 문제는 장애에 초점이 아니라 열악한 건강에 방점을 두고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보건 관련 부서에서 담당하길 바란다”며 “장기적으로는 장애인건강권법의 다양한 사업을 담당할 전담부서가 신설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81.1%로 비장애인 47.6% 대비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진료가 필요해도 의료기관에 가지 못한 장애인’이 5명 중 1명꼴로 나타나, 장애인들은 아파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장애 특성에 적합한 시설과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이 부족하여 병원에 가는 것 자체도 부담이다. 장애인 주치의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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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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