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코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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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판씨네마
▲코다. ⓒ판씨네마
  • 영화 ‘코다’ & ‘미라클 벨리에’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창 밖의 여자보다 불쌍한 여자는? 창 틈에 끼인 여자라는 농담이 있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쪽과 저쪽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어설픈 경계에 끼인 존재가 누구보다 힘들다는 것은 어느 시대든 맞는 말이어서 오래된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 ‘코다’의 주인공 루비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제목이 말하다시피 그녀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s), 즉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소녀다.

부모 그리고 오빠까지 모두 농인인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청인인 루비는 들리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 들리지 않는 가족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어부 일을 하는 가족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일부터 잡은 고기들을 경매로 판매하는 일까지 가족 생업의 모든 일에는 그녀의 수어 통역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이루고 싶은 그녀만의 꿈이 생겼다. 바로 노래하는 것.

그러나 노래라는 꿈을 가져보는 것도,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나 진학을 하는 것도 그녀에겐 설렘보다 죄책감이 먼저 든다. 가족은 들을 수도 없는 노래를 꿈으로 가진다는 것, 그리고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마치 가족을 배반하는 것 같고 이기적인 욕심 같아서 그녀는 선뜻 꿈을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기까지의 갈등과 성장을 그린 것이 바로 이 영화 ‘코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elier, 2014)’를 리메이크했다. 원제는 그저 덤덤히 ‘벨리에 가족’인데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미라클’이란 거창한 단어를 굳이 붙였다. 그냥 ‘벨리에 가족’이면 충분할 것을. 장애와 그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유별난 시각을 참 고스란히도 드러내는 제목이다.

 ▲미라클 벨리에. ⓒ영화사 진진
▲미라클 벨리에. ⓒ영화사 진진

‘코다’라는 제목은 그에 비하면 아주 직설적이다. 농인 가족과 청인인 주인공을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명료하게 ‘코다’라고 말해 주는 제목.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농인 가족들은 모두 실제 농인 배우들이 맡았다. 수어를 잘 모르고 보아도 영화 속에서 주고받는 수어들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영화에 현실감을 더한다. 심지어 루비의 엄마 역을 한 사람은 바로 ‘말리 매틀린’. 말리 매틀린이 누군가, 1987년 영화 ‘작은 신의 아이들’로 아카데미 역사상 농인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바로 그녀 아닌가. 말리 매틀린은 이 영화에서 멋지고 유쾌한 농인 엄마의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농인 배우들의 열연으로 전작인 ‘미라클 벨리에’보다 훨씬 생생해졌다.

또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음악이었는데 <라라랜드>, <물랑루즈> 등의 음악을 맡았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와 <스타 이즈 본>, <알라딘> 등의 음악을 맡은 닉 배스터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아서 음악적인 면에서도 전작인 ‘미라클 벨리에’보다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맛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미라클 벨리에’보다 더 선명해진 것은 주인공 루비의 경계인으로서의 힘겨움과 갈등이다. 농인 가족 사이에서 습득한 언어의 방식이 청인들의 그것과 달라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던 학교생활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까지 제목처럼 코다로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지역 수산물 직판조합을 새로 시작한 루비 가족들에게 루비의 수어통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 음대에 진학하겠다는 루비의 꿈은 선뜻 응원받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가족들도 큰 손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 가족과 루비의 이런 갈등을 전작보다 분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루비의 성장과 가족애가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또 루비에게 노래의 꿈을 가지도록 이끈 선생님 미스터 브이에게 전작보다 더해진 색깔은 영화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베르르르르나르도 비야로로로보스! 혀를 잘 굴려 ‘R’자를 발음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미스터 브이라고 부르라”던 까칠한 음악 선생님 미스터 브이는 루비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아낌없이 응원해 준 선생님이다. 다소 밋밋하던 캐릭터에 디테일을 더하고 색을 입혀서 전작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낸 느낌이다.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꿈과 책임감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방황하던 루비가 자신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이끌어주는 멋진 멘토. 그의 연주에 맞추어 오디션에서 루비가 ‘Both Sides Now’를 부르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노랫말처럼 이쪽과 저쪽 두 이면을 모두 볼 수 있게 된 루비의 성장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전작 ‘미라클 벨리에’에서는 미셸 사르두의 ‘비상’을 부르는데 이제 부모님을 떠나 날아오르겠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내 인생은 나의 것’ 같은 선언에 가까운 노래였다. 마지막 이 오디션 장면이 같은 이야기인 두 영화를 다른 주제로 가르는 가장 결정적 장면이 아닐까.

코다인 루비는 이제 두 세계의 경계에 끼인 애매한 존재가 아니라 그야말로 ‘Both Sides’ 양면, 비로소 두 세계의 이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다.

▲코다. ⓒ판씨네마
▲코다. ⓒ판씨네마

루비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내 아기’라고 말하는 루비 엄마에게 루비 아빠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젠 아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언제 그 애가 아기인 적이 있었느냐고…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말을 수어통역 하느라 어른들의 말과 어른들의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 청인인데 수어를 더 많이 쓰고 아이면서도 어른의 말을 통역해야 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혼자만 듣고 삼켜야 하는 루비 안의 어른아이를 안쓰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들리지 않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들리는 사람으로서의 소외감(영화 ‘나는보리’에서 잘 그렸다), 가족과 세상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압박감과 죄책감… 루비가 겪는 코다들의 이런 복잡한 감정들은 코다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 이현화 외)에서도 잘 그려져 있다.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두 세계의 경계에서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코다’라는 말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너무나 잘 설명해 주는 말이어서 ‘코다’라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가 책 속에 나온다. 이 영화 ‘코다’가 우리와는 다른 경계에 사는 이들의 또 다른 세상을 엿보고 공감하게 하는데 작은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코다’라는 말이 아직은 낯선 우리나라. 그럼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려는 열정적인 코다들의 노력으로 코다국제컨퍼런스(CODA International Conference)가 내년 6월 29일부터 7월 2일 인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아울러 이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이 영화를 통해 모아졌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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