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인자한 외국 아저씨를 만나다

0
98
▲사진 왼쪽부터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안승준 교사 / 사진=안승준 교사
▲사진 왼쪽부터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안승준 교사 / 사진=안승준 교사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친구의 주선으로 교황대사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가톨릭 신자에게 대주교님을 뵙는다는 건 흡사 예언자를 만나는 것에 비길만큼의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러 번 마음을 다잡고 기도를 했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떤 말로 나의 기분상태를 정확히 전달할까를 고민하면서 도착한 대사관 입구엔 대사님께서 친히 마중을 나와 계셨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어표현을 담아 인사를 드리고 그의 팔을 잡고 관내로 들어섰다. 떨리는 맘으로 한 발짝씩 떼어놓는데 대사님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주변의 경치와 사물들을 설명해주셨다. 새의 조각상 모양도 리모컨으로 열리는 자동문의 구조도 키우고 있는 물고기들에 대해서도 외가에 놀러 온 손주를 대하듯 인자한 모습으로 설명해 주셨다.

금붕어에 사료를 줄 기회를 주시고 아이스크림을 손수 내어주시고 서툰 영어로 가벼운 농담이 오가면서 나의 긴장도 어느새 풀어져 있었다. 교황님 문양이 새겨진 묵주를 선물 받을 때 문득 여기가 바티칸 대사관이고 내 앞에 있는 분은 교황대사님이라는 것을 불현듯 느꼈을 뿐 어느 틈인가 난 인자한 동네 아저씨와 편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눈이 보였다면 대사님의 사제복이나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과 그림들로 내가 뵙고 있는 분과 그 장소의 권위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겨졌겠지만, 난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내게 들리는 건 모든 권위를 내려놓은 푸근한 외국 아저씨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행사나 모임을 다니다 보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을 만나곤 한다. 국회의원도 만나고 장관님도 뵙고 대기업의 회장님과 마주치기도 한다. 자리에 함께한 다른 분들은 그분들의 차림이나 배지 같은 것들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권위를 느끼고 과도하게 낮은 자세로 예의를 표하지만 내게 그런 것은 때때로 어려운 일이 된다. 난 어떤 분의 가슴에 금배지가 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그 옆에 계신 분의 수트가 CEO가 아니면 입을 수 없을 만큼의 고가라는 것도 자신의 눈으로는 알 수 없다.

주변의 사람들이 첫 만남에서 소개를 덧붙여 주기는 하지만 한 번의 설명으로 그들의 목소리에서 특별한 권위가 있다는 것을 내 머릿속에 각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깍듯한 예의와는 완벽히 결이 다른 태도로 그분들을 대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제복이나 값비싼 옷들에 우리가 꼭 특별한 예의를 갖출 이유는 없다. 몇 가지 소품이나 의상을 떼어내면 그들이나 우리나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일 뿐이다. 어른으로서 혹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높은 인품으로 존경하고 높이는 거야 자연스럽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로 우러러볼 필요까지는 없다. 어쩌면 보이지 않기에 편히 대할 수 있는 나의 태도가 그 어른들에 대한 가장 적당한 선의 예의일 수 있다.

“나 이런 사람인데 말이야…”
“내가 입은 이게 얼마 짜리인줄 알아?”라며 자신을 높이고 싶은 욕구들에 굳이 우리가 동조해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이 드는 어른에게 경의를 표하면 되고 권의의식 아닌 권위가 있는 분들에게 예를 표하면 된다.

오늘 만난 대사님은 꼭 한 번 다시 뵙고 싶을 만큼 인자하고 멋진 분이셨다. 이것은 그의 옷이나 위치에 대한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들에서 내가 느낀 진실한 존경의 마음이다. 무엇을 입고 있든 어디에 있든 존경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저절로 같은 예의를 표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승인
알림
660699d27ffa7@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