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깨달음이 있는 휴식

3
217
큰 나무인형이 숲에 누워 있다.
휴식/사진=더인디고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난히 길고 힘든 한 여름이 지나갔다. 처음 듣는 눈의 질환 ‘황반원공’은 수술 후가 괴로웠다. 구멍 난 황반에 주입한 가스가 안착하도록 고개를 숙이고 일상을 살아야 했다.

자폐성 장애 아들 뒷바라지와 집안 살림을 팽개치고 오로지 나만 챙기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했다.

“엄마, 그래도 편히 쉬려면 집에선 불가능해. 서울 집을 떠나야 하니 인천 우리 집에 가요.”

혼자 사는 딸의 말에 나는 눈만 껌벅였고 남편은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럼 병원 가는 날 맞춰서 딱 나흘만 있다 올게.”

나는 남편이 그냥 해 본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 짐을 챙겼다. 진짜 갈 거냐고 재차 묻는 남편의 표정은 근심 걱정이 그득했다. 자신은 가라고 했는데 내가 거부해서 안 간 걸로 하려던 본심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수술로 주 2회 나가던 장애인평생센터에 ‘긴급돌봄’ 신청으로 한 달 간은 주 5회를 나가게 되었다. 아들을 챙겨 보내고 데려오는 일, 자조모임에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귀가하는 일 등, 내가 하던 모든 일은 남편 몫이 되었다.

평소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집에서의 아들 신변처리만 봐주던 남편이었다. 기껏해야 설거지 한 번 하고 칭찬받던 남편이었기에 삼시 세끼 챙기는 일은 분명 머리에 쥐 날 일이었다. 모든 상황이 그려짐에도 미적대다가는 그냥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끝까지 외면했다. 장애아들을 키우면서 때로는 형벌이라고 느꼈던 삶의 순간들을 며칠간의 휴가로나마 보상받고 싶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주어지길 바랐다.

남편은 나를 딸네 집에 데려다주고도 몇 번을 꼭 여기 있어야겠냐고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예스를 외쳤다.

딸이 출근하고 혼자 있는 공간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심심하면 당장 데리러 갈 테니 연락하라는 남편의 문자가 쌓여도 열어보지 않았다.

계속 잠을 자도 끝없이 쏟아지는 ‘죽음보다 깊은 잠’을 양껏 즐겼다. 비록 음질은 좋지 않지만 컴퓨터로 듣는 7080 추억의 노래는 까마득한 그 시절로 나를 인도했다. 노래에 얽힌 과거의 기억들이 수명 다한 전구처럼 깜박거렸다.

노래를 듣다 살짝 잠든 어느 날,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 멜로디와 가사에 눈을 번쩍 떴다.

“한 줌 젖은 바람은 이젠 희미해진 옛 추억, 어느 거리로 날 데리고 가네…

향기로운 우리의 얘기로 흠뻑 젖은 세상…”

미성의 가수가 읊는 노랫말에 빠져들다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추억이 향기롭다니 과연 나의 추억도 그럴까? 눈물이 왈칵 솟았다. 결코 향기 나지 않는 추억이라 생각한 건 자폐아들을 만나 힘겨웠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내가 살아온 날이 비록 험했을지라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 나를 들여다보니 그건 어쩌면 내가 나를 세뇌한 결과라 느껴졌다. 늘 이 정도면 괜찮다고 다독거리며 일부는 속에 담고 일부는 터트리며 살았던 거였다. 정말로 좋았다면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해야 했다. 가족을 건사하고 뒷바라지하는 걸 진심으로 즐기며 살았다면 모든 걸 손 놓고 있는 지금이 초조하고 불안해야 했다. 집에 갈 거라고 남편에게 연락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공간이 편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다 딸이 퇴근하면 함께 수다 떠는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온종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들이 가끔은 참 심심하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드라이브를 자주 했고 경치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함께 하며 살았다. 그것도 아들이 남들 시선 모으는 행동이 줄었을 때야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그냥 있어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맑게 해 준다는 걸 알았다. 아들도 나름의 시간이 무료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들도 자신만의 시간을 ‘멍때리기’도 하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괜찮게 보내는 거라 생각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뭘 하겠냐는 질문에 적어도 예, 아니오를 선택하니 의무적으로 살진 않아서 늘 편안해 보이는 거였다. 내게는 나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아들은 잦은 ‘집콕’이라 다를 수 있겠다고 하니 딸이 말했다.

“하진이도 집에서 뭘 해야 한다는 강박증 없이 그냥 있는 게 좋을 수 있지.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진이가 나랑 비슷한 성격이면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걸 즐기고 있을 걸?”

표현언어가 되지 않는 아들은 스스로 뭔가 하자거나 어딘가 나가자고 하진 않는다. 우리가 권할 때 싫으면 싫다고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면 딸의 말이 일리가 있다.

달달했던 휴식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 아들의 표정이 밝아 살짝 안도할 뻔했다. 남편은 가사노동과 아들 이동 보조에서 해방된 걸 온몸으로 반겼다. 맞벌이 여성들이 얼마나 슈퍼우먼인지 알았다며 집안일의 진가를 재평가하는 눈치였다.

전적으로 자신이 일상을 꾸려 본 남편은 많이 달라졌다. 남자가 손에 먹거리 들고 다니는 걸 부끄러워하던 사람이 본인이 먹고 싶거나 가족이 먹을 음식들을 자주 사다 나른다. 외식보다 집밥이 최고라더니 사 먹는 것도 괜찮다며 나의 가사노동을 줄여주고자 애쓰는 모습이 참 고마운 요즘이다.

그 상황에 놓이지 않고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기만 하고 모든 걸 이해한다는 말은 허언일 수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건 쉽지만 가슴으로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삶을 나의 시선으로만 보고 쉽게 재단하는 건 오만이다. 내가 아들의 삶을 늘 안쓰럽게만 보는 것도 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아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삶이 윤택하도록 보조하고 지원하는 일은 지속되어야 한다. 아들이라서 측은지심으로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길고 힘들었던 시간, 나흘 간의 휴식은 불행의 옷을 입고 내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그 휴식은 우리 가족의 일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차린 기회였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승인
알림
662322721763d@example.com'

3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mos726@hanmail.net'
송지안
2 years ago

그동안
인생을 살아 내느라 수고하셨어요

사람마다 인생 숙제가 다르게 있다는것을 알고 있는데…

아마 조미영선생님께는 아들공부가
있었나 봅니다.

각자 인생숙제 풀기가 어려워서
끝까지 못 살아 내는 사람도 있고
살아 내어서 새 길을 만들어
뒷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이글이 같은 숙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또 전혀 이분야를
모르른 사람들에나 깊은 사고를
하게 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강하고 그 깊은 사랑은
현신이지만 스스로를 챙겨 가야
그 건강으로 온 가족이 끝까지 행복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가족이 되길
바랍니다.

cooksyk@gmail.com'
김서영
2 years ago

투명하고 진솔한 선생님 이야기는 늘 감동스럽고 저자신을 돌아보게하며 공감합니다 요즘 병원 순례하며 저역시 불행의 옷을 입고 실로 오랜만에 저만을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데이^&^

dhchoiini@yahoo.co.kr'
최덕훈
2 years ago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만의 시간이란 글귀를 읽는 순간가슴이 져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