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친절한 마스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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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사진=유튜브
▲심야식당. 사진=네이버
  •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시리즈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요즘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따뜻한 우유 대신 꺼내 보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시리즈가 바로 나만의 불면 치료제. 영화 시리즈뿐만 아니라 모든 시즌의 드라마 ‘심야식당’을 섭렵했으니 내 불면의 시간이 길었나 보다.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7시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돈지루 정식, 메뉴는 이것뿐이다. 손님이 마음대로 주문하는 경우 가능한 한 만들어 주는 게 내 영업 방침이다. 손님이 오냐고? 생각보다 꽤 많다.”

동경의 밤거리를 따라 나지막이 읊조리듯 노래가 흐르고 마스터라 불리는 주인공(고바야시 카오루)의 이 내레이션으로 매번 반복되는 이 오프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른해지니 그야말로 불면엔 이만한 특효가 없다.

잠이 오는 건 재미없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다! 칼질을 하고 튀기고 볶는 요리의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은 마치 ASMR의 효과가 느껴진달까.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심야식당에 온 사람들이 마스터의 음식을 마주하고 느끼는 그 노곤함과 안도감이 내게까지 전해지는 그 느슨한 힐링이 무엇보다 좋다.

무엇보다 마스터의 음식은 그저 뱃속의 허기만을 달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소중한 기억을 일깨우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마스터의 소울푸드를 먹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공감받고 위로받으며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그 잔잔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토닥토닥’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려주는 듯한 안온한 느낌에 어느새 눈꺼풀이 반쯤 내려앉곤 한다.

‘심야식당’의 가장 큰 미덕은 늘 ‘딱 그만큼의 적정함’을 지키는 데 있다. 메뉴에 없어도 재료만 있다면 가능한 한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이 식당의 방침에서부터 벌써 그 ‘적정함’이 잘 드러난다. 손님이 원하는 건 다 만들어 주겠다는 빈말 대신 준비된 재료 내에서라면 뭐든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상호 간 적정한 무게중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마다 다른 취향, 음식마다 다른 맛있는 온도, 그리고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사람 간 간격…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심야식당은 하루 동안 지친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하면서도 위로받는 공간이 된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노련하게 조율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 마스터.

▲심야식당. 사진=유튜브
▲심야식당. 사진=유튜브

그는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딱 그만큼의 적정한 거리와 온도를 놀라울 정도로 잘 조절할 줄 안다. 과잉한 친절과 배려, 지나치게 다가서는 친밀함이 얼마나 큰 내상을 입히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선의로 그런 건데, 도와주려고, 더 친하자고 그런 건데… 불편한 친절을 거절한 댓가는 대개 미안함 대신 이런 항변일 때가 많다. 상처받은 쪽이 오히려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그 미묘한 경계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많은 장애인들이 너무나 자주 이런 미묘한 경계의 지점에서 상처받곤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뒤에서 덜컥 휠체어를 미는 손길에 놀라 괜찮다고 사양했다가 “아니 내가 다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이런 항변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심지어 내게 너무 친절했던 어떤 사람은 내 목발이 얼마나 무겁겠냐며 들어주겠다고 번쩍 들고 앞서 가버리는 바람에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받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선의만 강조해 베풀어지는 친절과 배려는 무례함이나 다를 바가 없다. 때로 많은 장애인들에게 그런 무례한 친절과 배려는 차별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작은 턱을 없애는 대신 ‘언제든 업어 올려 주겠다. 휠체어를 들어 주겠다’ 너무나 친절한 얼굴로 말하는 사람들, 또 접근 불가한 많은 장벽 앞에서 배려하듯 ‘말씀만 하시면 다 저희가 갖다 드릴게요’ 말만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장애인에겐 친절과 배려의 얼굴을 한 차별일 뿐이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라면 아마 빈말을 앞세우는 대신 말없이 주변을 살핀 다음 적당한 도구를 가져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도록 대처할 것이다. 그리고 쿨하게 묻겠지. 뭐 먹을래? 뭐 필요해?… 이게 바로 내가 바라는 친절이다!

친절과 배려는 딱 필요한 만큼일 때만 온전한 그것일 수 있다.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딱 그만큼일 때만이 친절이 되고 배려가 된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를 보며 나도 딱 그만큼만 적정한 친절을 누리고 싶다. 작은 턱 앞에서 내가 받아야 할 적정한 친절은 ‘업어 주겠다’ ‘휠체어를 들어 주겠다’가 아니라 ‘미안하다 앞으로 이 턱을 없애 주겠다!’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차별적 상황에서 세상 착한 얼굴로 상황을 모면하는 말들 대신 ‘앞으로 바꾸겠다!’는 성의 있는 변화의 약속이 바로 진정한 친절이다.

세상 사람들도 나도 딱 마스터만큼만 친절했으면 좋겠다. 과유불급! 과해서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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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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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72@naver.com'
이은미
2 years ago

이 글이 와장창 좋아서 페이스북에 올리신 링크에도 최고예요를 안 누르고 있었어요. 다시 읽고 댓글을 달고 싶어서요.ㅎㅎㅎ 바쁜 일 한 개 마치자마자 후다닥 달려와서 다시 읽는 행복함을 맘껏 누리고 있답니다. 이 기분 좋음을 아시려나요~? 그죠. 적정한 친절, 뭐든 적정해야 주고받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마음 편하죠. “작은 턱 앞에서 내가 받아야 할 적정한 친절은 ‘업어 주겠다’ ‘휠체어를 들어 주겠다’가 아니라 ‘미안하다 앞으로 이 턱을 없애 주겠다!’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차별적 상황에서 세상 착한 얼굴로 상황을 모면하는 말들 대신 ‘앞으로 바꾸겠다!’는 성의 있는 변화의 약속이 바로 진정한 친절이다.” ‘턱을 없애주겠다, 앞으로 바꾸겠다!’ 이 약속이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적정한 행동이며, 그… 더보기 »

Admin
조성민
2 years ago
Reply to  이은미

글도 좋지만 댓글 느낌도 와장창 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