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군산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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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시간여행마을. 사진=전윤선 대표
▲군산 시간여행마을. 사진=전윤선 대표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이번 여행은 무궁화호를 타고 가기로 했다. 곧 사라질 장항선 무궁화 열차가 아쉬워 추억 속에 가둔 시간여행을 위해서다. 장항선 구간은 복선 철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2026년이면 고속 열차가 운행된다. 오전 7시 용산역에서 낡고 허름한 무궁화호에 올랐다.

더디게 가는 열차는 시간의 속도도 한 것 늦춰진 것 같다. 열차가 플렛폼을 빠져나갈 때도 덜컹거리며 삐거덕 소리를 낸다, 마치 한평생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한 노인의 몸처럼. 낡고 허름한 무궁화호는 세월의 무게를 안고 달린다. 삐거덕삐거덕 덜커덩 덜커덩 천천히 철길을 따라 시간마을로 달린다. 무궁화호 손님도 열차를 닮아 노인이 많다. 수레를 끌고 탄 할머니는 자동문 버튼을 누르지 못해 몇 번이고 다시 눌러도 자꾸 어긋난다. 할머님께 초록색 버튼을 누르라고 알려줘도 자꾸 안 된다고 성화시다. 노인과 기차는 시곗바늘을 꽉 잡고 세월을 늦추는 것 같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도 기차여행에 낭만을 더하고, 군산까지 3시간 남짓 열차의 풍경이 정겹다.

▲무궁화호 열차. 사진=전윤선 대표
▲무궁화호 열차. 사진=전윤선 대표

군산 시간마을 여행은 몇 번을 해도 새롭다. 열린관광지로 선정된 후 접근성은 높아졌고 문턱은 낮췄다. 시간마을 여행은 일제 강점기 때 시간이 머물러 있다. 군산은 영화 속 시간 여행지로도 사랑받는다.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세트장으로 이용된 초원사진관이 그대로 보전돼 시간여행지로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근대문화유산투어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아리랑 코스부터 둘러봤다. 아리랑 코스는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코스다. 일제강점기 40여 년의 세월과 민족의 고난과 투쟁을 작품 속 장소와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코스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곡물 수탈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당시 전라도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탈하기 좋은 조건이 갖춰진 군산항을 이용했다. 군산항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지만, 그마저도 뜬다리를 이용해 곡물을 아낌없이 수탈한다. 소설 아리랑 속 이야기는 군산항 뜬다리 에서 시작된다.

▲호남관세박물관(전 군산 세관). 사진=전윤선 대표
▲호남관세박물관(전 군산 세관). 사진=전윤선 대표

아픔이 있는 소설 속 장소 중 군산 세관이었던 호남관세 박물관부터 둘러봤다. 호남관세박물관 대한제국(1908년 순종 2년 6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전하는 말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 혹은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는 설이 있다. 군산세관은 부속건물이 여러 곳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 건물만이 남아있다. 군산세관은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휠체어 사용자는 접근할 수 없지만 건물 외관으로도 당시의 아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인문학 창고로 갔다. 인문학 창고도 세관 건물과 나이가 비슷한 건물이다. 인문학 카페는 창고건물을 개조해 여행자에게 쉼을 제공한다.

백 년이 넘은 창고가 카페로 변신해 고풍스러운 분위도 다르게 느껴진다. 인문학 창고는 1908년에 건립되어서 군산세관 압수품 창고로 사용되던 비공개 시설이었다. 2018년부터는 군산세관에 허가를 받아서 지역 캐릭터 거점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문학 창고 정담 카페는 “먹방이” 하우스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먹방이는 1900년대 초 군산 세관사로 부임한 프랑스 사람 “라포트”와 함께 머나먼 조선에 온 “불독개” 이다. 당시 불독을 처음 본 조선 사람들은 생김새가 “돼지코”를 닮아 먹성 좋게 생겼다 해서 “먹방이”라고 불렀다. 그 먹방이가 최근에 다시 소환돼 군산의 캐릭터로 활동 중이다.

카페에는 커다란 TV도 시청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군산 세관과 관련된 내용과 군산의 근대역사에 대해 촬영한 영상이 TV를 통해 지속해서 방송된다. 방송 내용은 자꾸 봐도 새롭고 다시 보고 싶어진다. 한참을 TV 시청을 하고, 바로 옆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근대역사의 중심도시, 군산에 자리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의 근대문화 및 해양문화를 주제로 특화박물관이자 지역박물관으로서 방문객들이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군산 축구선서 ‘채금석’. 사진=전윤선 대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군산 축구선수 ‘채금석’. 사진=전윤선 대표

층마다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지만, 눈에 띈 전시는 3층, 항일투사가 된 축구소년 “오토바이 채금석” 전시다. 채금석은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오토바이라는 별명으로 전국적인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한 군산의 축구선수다. 1925년 당시 축구 명문이었던 서울 경신 학교에 진학해 전국 조선 축구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하는 등 경신 학교를 국내 최강의 축구팀으로 성장시키는데 공헌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참가로 학업은 멈춰야 했지만, 경성축구단 소속 공격수로 경성 평양 축구 대항전 등 대도시 대항전에 참가해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1934년 조선 대표선수로 선발돼 일본과 중국 원정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고 베를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우승했으나 조선인이란 이유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후 고향 군산으로 돌아온 채금석은 지역 축구인들을 지도하며 54세까지 전북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채금석은 한평생 축구 인생을 살며 한국축구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축구영웅이다.

▲초원사진관. 사진=전윤선 대표
▲초원사진관. 사진=전윤선 대표

역사관은 둘러보고 길 건너 초원 사진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초원 사진관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이 된 장소다. 초원사진관에서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초원 사진관엔 한석규와 심은하 배우의 젊은 시절이 그대로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세월이 가도 영화 속 장소를 따라 여행 할 수 있는 군산은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지이다. 사진관 앞엔 주인공이 타던 오토바이와 티코 승용차가 전시돼 있다.

군산 시간여행은 근대역사와 추억의 영화 속으로 안내한다. 초원 사진에서 조금 더 가면 일본식 가옥이 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일본 야쿠자 두목 히로스가 살던 집이다. 히로스 가옥 대문 앞은 계단이어서 휠체어 사용자는 집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도 잘 정돈된 조경과 말끔한 가옥이 근사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아주 아쉽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멋진 여행지라도 접근할 수 없으면 별로인 여행지이고 소문난 맛집이어도 접근할 수 없으면 맛없는 집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장소인 근대 쉼터로 이동했다. 근대 쉼터는 군산 여행에 필요한 정보들이 그림과 함께 전시돼 있고 문화공연도 관람 할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은 멈췄지만, 공연장 벽화는 쉼터의 핵심 볼거리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군산사람 그림이 새로운 명화로 담벼락을 가득 메웠다.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 작가 “카스파르다비트프리드리히” 작품 속 주인공이 군산 사람으로 채워져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에두아르마네”가 그린 풀밭 위에 점심식사 주인공은 서양 사람이 아닌 군산 사람이 그림 속 주인공이다. 쉼터에 예술이 공존하는 프로젝트는 군산 여행을 풍성하게 한다.

▲동국사 대웅전. 사진=전윤선 대표
▲동국사 대웅전. 사진=전윤선 대표

쉼터에 한숨 돌리고 동국사로 이동했다. 동국사는 1909년 초 일본인 노승이 군산에 포교당을 차린 것이 뿌리이다. 당시 군산에 사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절을 성장시켰고 일본인 부자들로부터 시주받은 거금과 땅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일본 사찰이 전국에 500여 곳이 있었다고 한다. 동국사는 광복 이후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찰이어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사찰건물 중 유일하게 사찰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건축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돼 아픈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픈 역사도 역사이다.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사찰은 평지에 조성돼 있어 접근성은 괜찮지만, 마당에 파쇄석을 깔아 사찰 곳곳을 둘러보기에 매우 번거롭다.

동국사 길은 예술로 가득하다. 골목 초입부터 근대 역사와 예술의 혼합이 조화롭다. 갤러리 여인숙과 카페 明月은 동국사 가는 길에 둘러봐야 할 곳이다. 카페 명월은 접근성이 좋아 동국사 길 가는데 꼭 들렀던 곳이다. 그런 카페 명월이 코로나로 문을 닫아 카페 앞에서 아쉬운 마음을 한참을 서성였다. 여행은 시간을 마음대로 옮겨 다니는 타임머신 같다. 군산 시간마을 여행은 과거로 데려다주는 추억소환 여행지이다.

▲군산특별교통수단. 사진=전윤선 대표
▲군산특별교통수단. 사진=전윤선 대표

가는 길

무궁화호 3호 칸 장애인 좌석
군산역에서 시내 방향 저상버스 다수
전북광역이동지원센터 즉시콜 이용 전화 063-227-0002

접근 가능한 식당

군산역사박물관 옆
-아리랑 식당 전화 063-442-1207
-이성당 제과점 전화 063-445-2772

▲접근 가능한 화장실
근대역사박물관, 아리랑 식당 근처 외 다수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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