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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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사진=픽사베이
▲칠판에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수십 번은 보았을 중학교 수학책일 텐데 오늘은 한 문제가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는 교과서가 틀린 것 같다면서 일단 다음 문제부터 풀어보자며 넘어갔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보고 또 보고 풀어보고 다시 확인하면서 수업 없는 한 시간을 다 보낼 때쯤에야 나의 오류를 깨달았다. 단순한 착각 때문이긴 했지만, 내 무지를 의심하지도 못하고 교과서가 틀렸다고까지 당당하게 말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수학교육 전공한 17년 차 교사라는 혼자만의 자부심이 간단한 실수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함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차라리 처음 배우는 학생이었다면 한 번 시도했던 방법으로 답이 나오지 않았을 때 바로 다른 해법을 택했을 텐데 여러 번 해봤다는 거만함은 쓸데없는 고집만 만들어내고 말았다.

부지런하지 않은 나도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면서 읽은 책과 새로운 경험도 늘려간다.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그와 비례하여 늘어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빛바랜 사진들처럼 내 기억 속의 지식도 잊히고 왜곡되는 시간을 거쳐 흐려지고 달라진다. 몇 년 전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볼 때 새로운 개봉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감명 깊게 읽었던 책도 그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 수학책 내용도 때로는 엉뚱하게 기억하는데 다른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매일매일 흐려지고 잘못된 기억들로 전환된다.

어릴 적 동생들 앞에만 서면 괜스레 우쭐거리던 유치한 골목대장 동네 형이 떠올랐다. “6학년이 되면 얼마나 어려운 게 많은 줄 알아?”, “너희들이 배우는 건 난 3초면 다 풀어낼 수 있지만, 지금 배우는 건 그렇지가 않아!”라고 으스대는 형이 실제로 우리보다 특출나게 잘하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 살고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대단한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들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쓰는 칼럼들마저도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내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것처럼 잘난 체 하려면 알고 있는 것도 다시 한 번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쉬운 문제도 한 번 더 풀어보고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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