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여러분,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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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식당을 들어서고 있다. Ⓒ더인디고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식당을 들어서고 있다. Ⓒ더인디고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더인디고 편집장

당신은 단독주택에 사시나요? 아니면 연립 또는 아파트? 그리고 보험종류는 어떻게 되나요? 보호1종이나 보호2종? 아, 의사소통은 가능한가요? 당신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고 저희가 정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할 것을 서약’한 후 심사를 통과하면 당신은 ‘특별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아,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네요. 당신은 정말 장애인입니까?

우리나라 행정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시에서 장애인콜택시 이용자 심사 신청서 내용을 풀어써 본 내용이다. 그러니까 대중교통수단인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민감할 수도 있는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거다. 택시를 타기 위해 당사자의 거주형태 정보가 왜 필요하며, 보험종류를 알아야 할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세종도시교통공사는 주저 없이 묻고 서명을 요구한다. 아마 일반 시민들에게 당신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생일과 나이, 거주형태, 보험종류 따위를 알아야 하며, 그 내용을 근거로 이용자격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나선다면 시민들은 당장에라도 거리로 뛰쳐나가 정권퇴진을 요구할 것이다. 국가 인프라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심사를 해 이용 자격 여부를 따지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권을 통제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런 사례도 있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지인은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식당에서 쫓겨났다. 식당 관계자는 ‘사람이 지나가야 하니까 비키라’고 함부로 짜증을 부리고 이의를 제기하자 급기야 ‘시비 걸려면’ 나가라고 했단다. 또 어떤 분은 ‘휠체어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출입을 제지받기도 했단다. 일상에서 이런 예는 비일비재하다. 식당에서는 물론이고 편의점, 약국, 커피숍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장애인의 모든 활동은 ‘비장애인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통제받거나 거부당하기 일쑤다. 노골적인 배제가 아니더라도 짜증 섞인 눈총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서비스의 비용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불하지만 그 비용에 포함되어 있을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이 낮고, 질 낮은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이의제기는 괜한 시비가 되거나 억지 쓰기라며 도리어 공격받기 일쑤다.

이렇듯 장애인 당사자의 일상은 늘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하다. 통제나 거절, 분리, 배제에 어지간히 익숙해 있더라도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차별은 늘 당황스럽다. 대중교통인 ‘특별’한 택시를 이용하려해도 자신의 개인정보를 모조리 제공하고 심사를 받아야 하며, 식당을 방문할 때에도 음식의 맛을 가늠해보는 식도락의 여유 대신에 입장을 거부당하지나 않을까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장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도움이 혹시 과도한 요구가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참 번거로운 삶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와 제90조는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서 장애인 보조견의 출입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했을 때에는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입장을 거부당했을 때에는 어떠한 조치도 없다. 거부당한 장애인 스스로 권리구제를 위한 절차 즉,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하거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에 대한 민사소송을 해야 하고 입장을 거부당한 수십, 수백의 장애인 당사자들은 입장 거부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해 개별적으로 법적 절차 밟아야만 한다. 식당 출입을 위해 드는 비용이나 시간, 번거로운 절차 등 ‘과도한 부담’이고 ‘현저히 곤란한 사정’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저 수모를 견딜 수밖에 없고 가해자들은 당당하게 ‘차별’한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주장해온 유엔이 2021년 자기들이 개최하는 행사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영국에서 주최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여하고 있는 이스라엘 에너지부 장관인 알하라르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근위축장애를 갖고 있는 알하라르 장관은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주최 측의 불허로 참석을 포기했다. 이튿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사과를 받아냈지만 한 나라의 대표인 사람조차 휠체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분리와 배제가 손쉽게 벌어진다. 장애학의 발상지로 알고 있는 영국에서조차 장애인을 배제하는 일이 벌어지니 실망스럽고 어이없지만 뾰족한 해결방법도 마땅치 않을 듯하다. 장애인을 거부하면 100만원이고 1,000만원이고 과태료를 물린다고 하면 돈이 무서워서라도 노골적인 입장거부는 사라지겠지만, 가뜩이나 전염병으로 인한 모임 통제로 매출이 줄어든 업자들의 원망과 혐오가 장애인에게 쏟아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난감하고 슬픈 일이다.

택시는 ‘특별’하지 않는 택시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고, 식당이든 어디든 쫓겨나지 않고 지불한 비용만큼 정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묘안이 떠오를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주하는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거울에 비친 내게 오늘 하루도 무탈하기를 바라며 인사하는 일 뿐이다.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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