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가을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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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단풍. 사진=안승준 교사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단풍. 사진=안승준 교사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전 국민 집콕의 시간을 뒤로하고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요즘 사람들은 오랫동안 참았던 나들이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

모든 사안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교사의 특성상 조금은 더 자제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우울증이 걸릴 정도로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견디라고 하는 것도 이제는 능사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마침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 가는 단풍과 풍성한 바람 소리 머금은 억새풀은 들로 산으로 공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SNS의 타임라인을 가을의 향기들로 채워간다. 게시물의 글들과 대략적 설명들로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풍경들을 보이지 않는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직접 그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들 수준으로 감흥이 끌어 올려지지는 않는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아는 몇몇 친절한 친구들은 여행의 소리를 녹음하여 보내주기도 하는데 오늘은 ‘낙엽 소리’가 메시지로 도착했다. 잘 들어보라며 꾹꾹 눌러 밟은 ‘사각사각’하는 낙엽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방안을 비로소 가을빛으로 채워준다. 언젠가 함박눈이 내린 겨울엔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엔 양철지붕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메시지를 타고 나에게 공유되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나누고 영상을 공유하면서 즐거워하는 시간에 내겐 예쁜 소리가 전해져왔다.

어떤 이들은 내게 시각장애인의 여행이 무엇이냐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 담아 묻곤 하지만, 보이는 것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 또한 매우 많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도, 때마다 달라지는 바람 소리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가슴 울렁거리는 아름다운 소리다. 꽃향기도, 풀 내음도, 옷깃에 스치는 바스락거림도 내가 여행을 느끼고 행복해하기엔 충분한 소재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물 끓여지는 소리, 밥 짓는 냄새,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마저도 집중해서 깊이 느끼면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이고 그것들은 내가 여행을 즐기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의미들이기도 하다. 난 철썩이는 파도를 보지 못하지만,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짠 내음을 맡으면서 갈매기 소리를 듣는다. 입속으로 향내를 품기는 해산물이나 해초들도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바닷가인지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울긋불긋 화려한 보이는 것들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들은 너무나도 많다.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새로운 콘텐츠에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었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미 존재한 것들이다.

오늘은 냄비에서 끓고 있는 찌개 소리가 유난히 정겹게 들린다. 보는 것들에 익숙한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세상도 생각보다 꽤 아름답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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