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스마트폰이 멈추자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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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옆 추억의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기’ Ⓒ더인디고
▲국립민속박물관 옆 추억의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기’ Ⓒ더인디고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스마트폰이 먹통이라 난감했다. 기계치인 내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겨우 너덧 개 정도인데 손바닥만 한 기기에는 세상이 다 담겨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단순하면서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기기가 유용하다. 그래도 급하면 배워서 사용할 거라고 약정 기간이 끝나면 매번 최신형을 사게 된다. 기능도 좋고 새 물건을 갖는 기쁨도 한몫한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족 할인의 혜택과 딸아이의 발품으로 아주 저렴하게 세 대를 샀다. 그런데 개통이 빨리 되지 않았다. 급할 거 없다며 연락 오길 기다렸다. 제값 주고 산 사람들 먼저 개통해 주느라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일주일이 지났다.

토요일은 당연히 휴무라 생각하고는 새 폰을 집에 놔두고 집안일로 부산에 갔다. 한글날 대체휴일로 사흘간의 연휴는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국도로 빠져봤지만 어딘들 교통정체와 지체는 피할 수 없었다. 오늘 중으로 도착하겠지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고객님과 함께 한 지 1,139일이 되었네요. 지금은 헤어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남편과 나의 폰에서 문자 알람 소리가 이어졌다. 해지에 동의하라는 링크가 떴다. 링크 들어가면 새 폰을 사용해야 될 것 같아 기계치 우리 부부는 문자를 외면하기로 했다. 계속 안내 문자가 오더니 결국 우리가 갖고 있던 폰 두개는 먹통이 되었다. 토요일에 열일하는 통신사가 야속했다.

부산에서 우리 가족에게 맛난 저녁 대접한다고 언니가 기다리고 있는데 도착 시각을 알려 줄 방법이 없었다. 출발하면서 얘긴 했지만 계속 차가 밀리니 그 시간에 도착은 불가능했다.

남편과 교대로 운전할 때 평소의 나는 스마트폰에 집착했다. 무용지물이 된 먹통 전화기를 내려놓고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폰 없던 시절엔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말하다 보니 거의 40년 전 일이 생각났다.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공부한다고 퇴사하고 우리는 직장 아닌 곳에서 가끔 만났다.

그날도 남편은 등록금을 핑계로 내게 연락을 했다. 자기가 해도 되는 일을 굳이 내게 부탁하는 건 내게 관심이 있어서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밥 얻어먹고 싶어 그랬다고 했다. 넘겨짚기 선수인 내가 민망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진 주위의 소음에도 공중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십 원짜리 동전을 하나 더 투입하는 소리마저 경쾌했다.

부정액 수표를 발행해서 남편 학교로 갔다. 남편은 정문에서 기다렸고 나는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 찻값을 아끼려고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먼저 포기하고 내려오는 남편을 만났다. 정문까지 올라가지 않고 구멍가게 앞에서 기다렸던 내가 한심했다. 장소를 착각한 나를 원망하지 않고 내 어깨를 감싸던 남편이 그땐 꽤 괜찮아 보였다.

지인은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동전 빌려 달라고 ‘작업’ 걸어오는 남자와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했다. 그때 거기 있었던 걸 후회한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표정은 밝아 보기 좋았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그렇게 오가는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치고도 인연이 되는 사연이 많았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추억을 더듬다 보면 아날로그 감성이 되살아난다.

여전히 꾸물대는 자동차 안에서 스마트폰 기능이 멈춘 덕에 우리 부부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9년간의 연애와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우리 삶의 반이 넘는 세월을 함께 했다니 놀라웠다.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해님과 달님이 자리를 바꾼 뒤였다. 당직 근무를 마친 딸아이가 집에 있는 새 전화기를 조작해 주었다. 덕분에 인터넷은 가능하게 되어 문자로 소통했다. 하지만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는 오직 우리 가족만이 존재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다가 내려놓으니 세상이 보였다. 사람도 보였다. 살면서 그리 급하게 연락할 일도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다급한 일도 많지 않았다. 왠지 여유로웠다. 눈도 손목도 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스마트폰에 빠진 건 페이스북 탓이다. 별거 아닌 글 하나 올려놓고 타인의 반응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서로 ‘좋아요’ 품앗이하는 듯한 공감임을 알면서도 그 반응을 즐겼다. 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클릭하면서 옷가지와 신발 등 쇼핑에도 열중했다. 싼 게 비지떡인 걸 알면서 안 사면 손해인 듯한 유혹에 빠지곤 했다. 기계의 노예로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노예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흘간 스파트폰을 멀리하고 보니 예전보다는 폰을 덜 보게 되었다. 페북에 하루라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손이 근질거렸다. 쓰려고 들면 잡다하게 쓸 게 많아 더 참을 수 없었다. 말로 하는 수다보다 글로 떠드는 수다에 익숙해졌다. 휴일 하루만이라도 스마트폰 없는 날을 정해 가족끼리 도란도란 얘기하며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계획을 세운다. 비대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해 내 일상이 온라인에 잠식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추운 데서 기다린 탓에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여주던 그때의 남편을 다시 생각한다. 그날 손 전화기가 없었기에 한데서 고생은 했지만, 남편이 화를 참는 사람인 걸 알게 된 셈이었다.

스마트폰이 멈추니 세상을 보는 맛도 있지만, 함께 사는 이의 장점이 떠올라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기기가 보여주는 가공의 인물보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나부터 나서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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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com'
김서영
3 days ago

선생님 글은 늘 기승전 따뜻한 가족사랑
그 온기가 전해져 시나브로 행복해집니다
저도 며칠전 폰화면 블랙아웃으로 비슷한 경험을 해서 백퍼 공감해요
같은 상황이라도 글로 감칠맛나게 풀어주시니 끄덕끄덕 공감하고 깨닫고 배우고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