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경력 20년 농인, 수어 없는 ‘택시 자격시험’에 생계 위기… 인권위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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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면허로 택시운전을 하는 청각장애인 이씨는 택시운전자격시험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교통안전공단 등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임시면허로 택시운전을 하는 청각장애인 이씨는 택시운전자격시험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교통안전공단 등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청각장애인에 편의 미제공은 직업의 자유 침해
  • 교통안전공단 “응시자 수 적고 부정행위 때문”
  • 공공기관이 사람 수에 따라 수어 지원?… 시정권고 촉구

[더인디고 조성민]

겉으론 청각장애인들도 택시 운전에 제한이 없어 보이지만, 자격시험에서 수어를 제공하지 않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일 오전 청각장애인 택시 운전사 이모씨를 비롯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공익변호사 단체인 사단법인 두루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택시운전 자격시험에서 수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장관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장추련과 사단법인 두루는 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시운전 자격시험에서 수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촉구했다. 사진=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추련과 사단법인 두루는 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시운전 자격시험에서 수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촉구했다. 사진=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이들은 또 교통안전공단이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보는 청각장애인에게 수어통역과 시험시간 연장, 별도 시험실 제공, 수어 필기시험 마련 및 관련 교육자료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청각장애인은 2010년부터 대형·특수면허를 제외한 모든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1993년 청력 데시벨 기준, 5급과 6급(장애등급제 폐지 이전)의 청각장애인에게만 2종 면허를 허용하다가 이후 17년 만에 1종까지 확대하면서 청각장애인도 택시운전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택시운전 정식면허를 취득하려면 ‘택시운전 자격시험’ 합격 후 법정 필수교육 16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 자격시험 때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이상 운전을 한 사람도 적게는 5회에서 많게는 수십 회까지 응시할 정도다.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에게 문장식 언어로 구성된 시험문제는 그 이해와 풀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기준 운전면허 소지자는 33,190천명으로 전 국민의 64%가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또 한 언론은 이들 중 청각장애인 운전면허 소지자는 2만6천명 이상, 택시 운전자는 고작 20여 명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청각장애인이 정식 면허를 취득하기 전 임시면허로도 택시운전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하지만, 이는 코액터스가 운영하는 ‘고요한 택시’ 등 ‘플랫폼 택시’에 한한다. 실증특례를 인정했지만, 임시면허 발급 후 3개월 내 정식면허를 발급받아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현재 고요한 택시를 운전하는 이씨 또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 통과가 절대적이다.

물론 교통안전공단은 청각장애인 또는 비문해자를 위한 자동차운전면허 학과시험문제 학습 콘텐츠를 개발해 무료 배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각장애인은 PC학과 시험에서 제공되는 수어동영상 및 읽어 주는 시험과정을 사전에 체험해 볼 수 있다. 또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도 음성 전자채점시스템으로 전환됐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내시스템도 개발돼 활용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작년 말에 이어 올해 7월에도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택시운전자격시험에서의 청각장애인 편의제공 관련 민원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단시간 반영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사진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7월 국민신문고에 올린 답변서를 캡처한 것이다.
▲교통안전공단은 작년 말에 이어 올해 7월에도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택시운전자격시험에서의 청각장애인 편의제공 관련 민원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단시간 반영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사진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7월 국민신문고에 올린 답변서를 캡처한 것이다.

하지만, 교통안전공단의 이런 편의지원 정책과는 달리 수어통역은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교통공단은 작년 말에 이어 올해 7월에도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택시운전자격시험에서의 청각장애인 편의제공 관련 민원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단시간 반영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실제 장추련이 이번 진정서 제출 전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통안전공단은 수어필기시험 개발비용에 비해 청각장애인의 수가 적고, 수어통역 제공 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데다 부정행위 발생에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장추련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당한 편의제공은 사람 수에 따라 시혜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단 장애인 단 한 명일지라도 마땅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 권리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교통안전공단은 응시자의 수가 적다고 하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이 수어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떨어질 것이 뻔히 예상되는 시험에 응시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특히, 수어와 관련한 부정행위가 우려된다는 답변은 어느 시험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부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시험에 응시하는 다수의 장애인에게 범죄자 취급하며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씨와 장추련 등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공공기관임에도 택시운전자격시험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교통안전공단과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국토교통부가 청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편의 미제공과 간접차별을 위반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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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dmstj354@naver.com'
이은서
2 years ago

기사에 나온 말처럼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취업을 제한하는 행위이다. 청각장애인 운전면허 소지자와 택시 운전자가 전 국민에 비해 그 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제도를 만들어주고 편의를 지원해주어야 한다. 청각장애인 운전자의 수가 적은 게 시험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면허 시험은 수어를 제공해주는데, 택시운전 자격시험은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택시운전 자격시험에도 수어를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각장애인의 생계가 달린 시험인 만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고, 공정하고 공평한 시험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