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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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롤러로 벽에 그린, 레드, 오렌지, 블루 4가지 색을 칠하고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페인트롤러로 벽에 그린, 레드, 오렌지, 블루 4가지 색을 칠하고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부터 보이지 않던 중학생 제자들에게 색깔을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빨강과 노랑이 섞이면 주황이 돼. 주황은 빨강의 느낌도 있고 노랑의 느낌도 있지만, 완벽히 새로운 색이기도 해. 딸기 주스와 바나나 주스를 섞은 걸 상상하면 좀 비슷할 수도 있어.”

“파랑과 노랑이 섞이면 초록이 돼. 피아노 건반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누를 때의 느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비유를 설명했지만, 충분히 이해했다는 녀석들의 대답과 달리 말투는 시원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지 않아도 멀리서 확인할 수도 있고 색깔들이 각각 어떤 느낌을 주는지 굳이 외우지 않아도 돼.” 이런저런 장점들을 이야기하고 나서 혹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신날 것 같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하지 않았다.

“수술까지 해야 한다면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돈까지 많이 든다면 더더욱 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지금도 참 좋은걸요.”

“나라면 전 재산을 주고라도 시력을 찾겠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이 더 신기하다면서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해줘도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겐 보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낼 수 없는 듯했다. 멀리서 볼 수 없지만 가까이 가서 만져보면 되고 색깔을 볼 수 없지만 외우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았다.

“혹시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된다면 다시 들을 수 있기 위해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라는 답변이 들리고, 뒤이어 “전 재산을 다 들여서라도 수술을 해야죠.”라는 말도 들렸다.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에도 비슷한 답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걷는 것과 듣는 것이 없어진다는 상실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불편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난 그제야 자신감을 가지고 설명을 이어갔다.

“보는 것도 바로 그런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시력을 잃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상태 말이야.” 아이들은 조금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보는 것이 왜 그리 좋은지 좀 더 설명해 달라는 요구했다.

난 오래전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부터 인상 깊었던 기억들 그리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던 것까지 볼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묘사하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조금은 달라진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눈이 보이는 것에 투자하는 것은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이라고 솔직히 말을 했다.

난 보이지 않는 삶이 볼 수 있는 삶에 비해 열등하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보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들을 어떻게든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너무도 간절하다. 그것은 원래 있던 시력을 상실하게 된 나의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정말 좋은 것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온전히 공유해 주지 못하는 교사의 안타까움이라는 쪽이 더 정확하다.

의학이 더 발달한다면 모든 시각장애인이 다시 보게 될 수도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 만지고 듣는 것으로 보는 것을 완벽하게 대체하여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쪽이든 난 나의 제자들에게 해 질 녘 붉은 노을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아들을 바라보는 세상 다 가진듯한 어머니의 미소를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내가 가진 소중한 기억들,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온전히 나누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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