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참정권, 자기결정권과 투표조력 사이 묘안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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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참정권, 자기결정권과 투표조력 사이 묘안 없나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투표조력과 자기결정권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픽사베이 사진
  • “투표조력 없이 참정권 보장 없다” 국민청원
  • 투표보조 한정한 공직선거법 157조 개정 필요
  • 자폐당사자 “자기결정권 확보도 함께 논의 돼야”
  • 방안은 사전 선거 정보 충분, 심리 영향 미치지 않는 공적조력인!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20만 발달장애인도 대통령을 뽑고 싶다! 투표보조를 지원하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현재 약 20만 명의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 유권자가 다가오는 20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실질적인 투표권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그 이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가 갑자기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혼자서 투표를 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회의원/지방선거/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투표보조(발달장애인이 지명 가능)를 받아 아무런 문제없이 투표를 해왔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2020년 국회의원선거 및 2021년 재보궐선거 시에 발달장애인에게 투표보조를 허용하지 않아,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2020년부터 뜬금없이 투표관리매뉴얼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투표보조 대상에서 제외하였기 때문이라고 청원인은 주장했다. 특히 지난 2021년 4월 보궐선거 시 전국 1만 4천 3백여 투표소에서 수많은 발달장애인이 현장 투표보조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투표사무원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20만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 지원을 위한 청원이 진행 중에 있다. 이 청원은 2022년 2월 9일까지이다.=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캡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5월 발달장애인이 투표보조원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20진정0257300)했다. 인권위는 중앙선관위에게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 등 적극적인 조치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에 보조원을 배치할 것을 요구하고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공적보조원’을 투표소마다 배치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청원에서는 중앙선관위는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는 답변만 내놓고는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발달장애인 중 혼자서 투표할 수 없는 지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또한 2016년 국회의원선거와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발달장애인에게 투표보조를 허용해 놓고, 이제 와서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당시 선거절차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더인디고와의 전화 통화에서 “2016년과 2018년 선거에서 발달장애인에게 투표보조가 제공된 것은 맞다”면서, “당시 매뉴얼에 발달장애인 중 신체적 장애가 있는 경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신체(지적‧자폐성 장애인 포함)’이라고 표기되어 현장에서 투표보조를 지원한 사례가 꽤 있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현재의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7항은 제6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같은 기표소 안에 2인 이상이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 박은 만큼 잘못된 매뉴얼을 바로잡는 것이지 청원인의 주장처럼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제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투표조력 여부는 “중앙선관위의 결정사항이 아닌 법개정 사항”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투표조력인을 허용하는 것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심대하게 침해할 수도 있는 만큼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자폐 장애가 있는 한 당사자는 “참 어려운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투표 행위는 ‘자기결정권’이 우선 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선거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는 것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사자는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투표조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투표조력을 하는 사람을 당사자의 가족이나 기타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공적조력인으로 두면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한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한정된 투표조력인 조항의 개정이 없이는 합법적 절차에 따른 발달장애인의 투표조력인 지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는 작업 또한 그리 단순하지 않다.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의 의지와 결정에 따른 투표행위, 이 두 권리를 모두 보장받을 수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참정권 실현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한편 오는 20대 대통령 선거에 적용될 중앙선관위의 매뉴얼은 1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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