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과 질환 시술은 구분해 달라”, 생생청취 현장서 쏟아낸 안면장애인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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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사진 왼쪽) 씨와 최혜영 위원장 ©더인디고
▲김민혜(사진 왼쪽) 씨와 최혜영 위원장 ©더인디고
  • 미용 아닌 살기 위한 치료!… 보험적용 확대 ‘호소’
  • 탈모는 되고, 모반 치료는 안된다?… “박탈감 커”
  • 19일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 제주 간담회 개최… 의료, 소득, 보조기기 등 제도 개선 의견 “봇물”

[더인디고 조성민]

“두 달에 한 번씩 타는 뇌전증 약은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따라 저렴한 편입니다. 하지만 얼굴과 팔 등의 붉은 반점(화염상 모반)을 띠는 ‘스터지-베버 증후군(Sturge Weber Syndrome)’은 희귀 신경질환임에도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탈모 치료제도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와 직간접적인 차별을 받을 수 있음을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안면장애로 인한 치료임에도 미용이라는 이유로 10년째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처지를 생각할 때 ‘박탈감’이 들어요.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치료를 구분해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꼭 부탁드립니다.”

제주에 거주하는 김민혜(86년생) 씨는 주변 친구들은 결혼하고 집 사고 노후 보장으로 적금하지만, 자신은 1년에 교통비 포함 백만 원씩 들어가는 치료비를 대기 위해 적금을 든다며 하소연했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함께하는 장애인위원회(위원장 최혜영 국회의원)가 제주에서 개최한 ‘생생청취’ 간담회에서는 김민혜 씨 등 장애인 당사자 및 단체 관계자들이 저마다 개선해야 할 정책이나 사각지대 문제를 쏟아냈다.

본지는 간담회 이후 김민혜 씨와 이야기를 더 나눴다.

더인디고가 김민혜 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더인디고
▲더인디고가 김민혜 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더인디고

김 씨는 얼굴 전체와 오른쪽 팔에 붉은 반점이 있는 선천성 안면장애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른쪽 안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의안을 끼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으로 따지면 시각장애인 6급이다. 장애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뇌전증 약도 먹고 있다. 신생아 5만 명 중 1~2명에게 발생한다는 스터지-베버 증후군이 한 원인이다.

스터지-베버 증후군은 혈관에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선천적 질환으로 혈관폐색과 그에 따른 저산소증이 뇌의 성장을 저해해 발달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 붉은 반점은 통증은 없지만 성장할수록 두꺼워지거나 울퉁불퉁하게 커진다. 입술이나 코점막까지 번져 저작기능 장애나 호흡 곤란까지 이어져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다. 원인도 밝혀지지 않아 수술로도 해결이 안 된다. 김 씨가 3개월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 혈관종을 제거하는 레이저 시술을 받는 이유다. 10년 동안 제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이유는 관련 질환을 자주 접해 치료 기술이 뛰어난 병원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 증상 완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치료임에도 현재의 급여인정기준은 ‘혈관종, 화염상모반에 색소레이저 시술 시 평생 총 6회 이내만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비용은 한 번 치료할 때마다 약 85만 원, 제주에서 서울까지의 왕래 비용까지 합치면 100만 원 정도가 든다.

▲김민혜 씨가 최근 병원에서 치료받고 지불한 영수증 ©더인디고
▲김민혜 씨가 최근 병원에서 치료받고 지불한 병원비 영수증 ©더인디고

김 씨는 10년 동안 레이저 치료를 하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4천만 원을 쓴 셈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혈관종이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또 얼마의 돈이 더 들어갈지 모른다. 치료비 때문에 적금을 든다는 것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또한 두 달에 한 번씩은 뇌전증 약값으로 6~7만 원이 또 들어가니 김 씨의 소득 상당 부분이 오롯이 의료비, 약값, 그리고 치료를 위한 교통비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된 기간이 불과 2년 정도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 씨는 입사 때마다 안면장애로 인한 차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회사가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콜센터였다. 이때만 해도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큰 힘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동료 직원들의 수군거림에 얼마 버티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후 부모와 주변 분들에게 치료비를 의존하다 최근에서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어떤 기관에서 사무직을 맡게 됐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일까, 인터뷰 기간 그의 모습은 웬만한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폭력에 가깝다”며 “장애는 타고난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그런 그가 이번 대선에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다. 탈모 치료제도 건강보험이 될 수 있다는데, 희귀질환으로 인한 막대한 치료비까지 당연히 확대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병적인 경우라면 탈모도 건강보험이 적용된 지 오래다. 하지만 김 씨는 혈관질환으로 인한 증상 완화가 목적인데도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묶여 있다. 더인디고에서 앞서 취재했던 척수성근위축증 판정을 받았지만 3세 이전의 관련 증후가 발견됐다는 증거가 없어 1회당 1억의 약값을 내는 상황과 같다.

[관련기사] [기획기사] ‘모(毛)퓰리즘’에 가려진 희귀난치질환자들, 여야 대선후보에 “살려달라” 호소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신체의 필수 기능개선 목적이 아닌 성형수술이나 노화현상으로 인한 탈모나 모반(점) 등은 질환을 갖고 있어도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비급여에 해당된다.

김 씨는 빠른 시일 내에 탈모가 급여대상이 된다에 “기대를 한다”면서도 “자신과 같은 희소질환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어렵겠죠?”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사실 치료비로 고통받는 희귀·난치질환자 80만 명 이외에도 장애의 진행이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꾸준히 치료나 재활 등 정기적 진료를 받는 등록장애인은 262만 명 중 약 76.3%인 200만 명에 이른다. 장애인 10명 중 8명인 셈이다.

▲치료, 재활, 건강관리 목적으로 정기적,지속적 진료를 받고 있는지 여부/출처=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치료, 재활, 건강관리 목적으로 정기적,지속적 진료를 받고 있는지 여부/출처=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또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은 월 15만3천원이며 이 중 의료비가 5만8천500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교통비와 간병비, 보조기기 구입 및 유지 등이 차지한다.

▲19일 민주당 선대위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가 제주지역 장애인 당사자 및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더인디고
▲19일 민주당 선대위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가 제주지역 장애인 당사자 및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더인디고

그래서였을까. 김민혜 씨 말고도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간담회에서는 장애인의 소득보전과 의료비 감면 등 건강보험 확대, 보조기구 품목 및 급여 확대 그리고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강화 방안 등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혈액투석을 받는 신장장애인은 의료비뿐 아니라 국내 장기기증에 대한 문제도 언급했다. 장기기증을 약속하고 막상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를 기증하려 해도 유족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불가능해 고인의 뜻이 무시되고 대기자는 목숨을 위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관련 장기이식법은 21대 국회에서도 개정 발의가 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함께하는 장애인위원회 강인철 제주지역 위원장은 “보조기구는 품목과 급여 확대는 당연하지만, 이 결정 권한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갖고 있기 때문에 건보재정 등을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쉽게 늘리질 못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관련 기관을 국립재활원 등 장애 관련 기관으로 이전해 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활동지원의 경우에도 “차등수가제 혹은 최중증장애인 1명당 활동지원사 2명이 지원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 판단 기준도 모호하다”면서 “사회서비스원 등 공적 역할을 법적으로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 전국 생생청취 장애단체 전국간담회 일정표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 전국 생생청취 장애단체 전국간담회 일정표

최혜영 위원장은 “장애인의 소득보장이나 의료비 문제는 항상 가장 큰 이슈”라고 전제한 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선대위 차원에서도 연금 확대나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 보전 등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서둘러 정리하려고 한다”면서 “제주를 비롯해 대구, 경북, 충남, 전북 등 전국을 다니며 ‘생생청취’ 간담회를 해보면 장애인들의 바람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이번 공약 개발 과정뿐 아니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인수위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서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만약 여러 의제로 인해 채택이 안되더라도 2년 넘는 저의 국회의원 임기 동안 의정활동을 통해 최선을 다해 해결해 보겠다”고 강조했다.

▲최혜영 위원장이 간담회 이후 김민혜 씨를 별도로 만나고 있다.©더인디고
▲최혜영 위원장이 간담회 이후 김민혜 씨를 별도로 만나고 있다.©더인디고

또한, 이날 간담회에 함께 한 안진환 함께하는장애인위원회 조직본부장도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를 기반으로 해야 체감도도 높아지고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면서 “생생청취 간담회를 통해 수집된 의견들은 반드시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 위원장은 간담회 이후에도 김민혜 씨를 별도로 만나 그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청취했다. 또한 김 씨가 겪으며 생각했던 개선 방안 등을 함께 검토하며, 방안을 찾겠다고 답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승인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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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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